기부받은 레이스 원단으로 김분정씨가 만든 곱창머리끈과 스커트.  박성빈 사진기자
기부받은 레이스 원단으로 김분정씨가 만든 곱창머리끈과 스커트. 박성빈 사진기자

본교에서 마을버스로 10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부모 여성가장들을 돕는 작은 가게가 있다. 이 공간의 이름은 ‘봄비살롱’.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봄비’의 첫 글자와 개별 사업을 통한 경제적 자립을 상징하는 ‘비즈니스’의 첫글자를 합친 이름이다. 봄비살롱은 싱글맘들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전문적 지원을 하기 위해 2020년 6월 오픈했다. 봄비살롱의 모토는 ‘가치에 가치를 더하다’로, 싱글맘들의 자립과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 이곳에서는 버려지는 자투리 원단이 싱글맘들의 손을 거쳐 공예품으로 재탄생한다.

현재는 약 30명의 싱글맘이 봄비살롱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관심 영역에 맞게 뜨개질, 아로마, 재봉 등의 업무를 나누어 담당하며 자립을 준비한다. 완전한 자립은 봄비살롱의 궁극적인 목표다. 육아를 병행하면서 전일제 근무가 어렵다면 공방으로 출근하거나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다.

봄비살롱 근무자의 활동을 관리하는 이은민 간사는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 싱글맘들에게 실질적인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밤낮으로 고민한다. 여러 취약계층 중 특히 싱글맘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부모 가장의 현실적 어려움에 주목했다”고 답했다. ‘한 사람을 살리면 한 가정이 살고 가정이 살면 그 지역이 산다’는 말의 힘을 굳게 믿는 그는 자연스럽게 싱글맘을 돕는 과정에 참여하게 됐다.

본지는 봄비살롱 1기로 2020년 10월 자립에 성공한 ㄱ씨(46·여·경기도 북부)와 뒤이어 성공적인 자립을 위해 날갯짓을 시작하는 두 명의 싱글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곳

“잡은 물고기를 건네는 것이 아닌 직접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셨죠.” 지인의 소개로 4년 전 봄비살롱과 인연을 맺게 된 한부모 여성가장 ㄱ씨는 가게에서 연계해준 강의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2020년 10월, 자그마한 개인공방을 차렸다. 현재 ㄱ씨는 아로마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클래스도 운영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ㄱ씨는 원래 공연 관련 일을 했으나 아이를 출산하며 일을 그만두게 됐다. 평소 관심 분야인 아로마테라피 강사를 꿈꾸며 자격증도 땄지만 짧은 경력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쟁쟁한 경력을 가진 사람도 많은데 왜 나를 써주겠냐고 생각했죠.” 무력감에 빠진 ㄱ씨는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된 봄비살롱에 찾아갔다.

“강사 일을 너무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ㄱ씨의 열정과 재능을 알아본 봄비살롱은 강사로서의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시작했다. 아이템 선정부터, 강의 자료 피드백과 수업 시연 과정까지 수업 준비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봄비살롱과 함께했다. 약 30명의 수강생 앞에서 진행한 첫 강의에서 ㄱ씨는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능숙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강사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ㄱ씨는 경제적 자립을 원하는 후발주자 엄마들을 돕는 멘토가 되길 바란다. 봄비살롱에서 지원받은 만큼 또 다른 싱글맘을 자발적으로 돕는 선순환에 앞장서기 위해서다. ㄱ씨는 “기관과 함께 더 넓은 차원에서 엄마들을 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계획을 짜는 중”이라고 밝혔다.

 

독립을 준비하는 싱글맘들

봄B살롱을 통해 자립을 시작한 싱글맘 김분정씨(앞쪽)와 이은경씨. 박성빈 사진기자
봄B살롱을 통해 자립을 시작한 싱글맘 김분정씨(앞쪽)와 이은경씨. 박성빈 사진기자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해 강사로도 수년간 활동했던 김분정씨(43·여·서울 성북구)는 육아를 홀로 병행하며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으니 업무시간이 정해진 정규직은 불가능해요. 아르바이트 구인에서는 경력이 있어도 나이 제한 때문에 안 된다고 하고요.” 가진 재능을 발휘할 곳이 없음에 한탄하던 김씨는 싱글맘들의 생활 커뮤니티에서 봄비살롱 모집 글을 발견했고 올해 1월 봄비살롱과 인연을 맺었다.

봄비살롱의 엄마들은 기부받은 원단을 활용해 테이블보, 손수건, 앞치마 등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제작해 납품하고 있다. 특히 김씨는 본인의 주력 분야인 레이스 공예를, 또 다른 싱글맘 이은경(39·여·서울 은평구)씨는 가방을 중심으로 상품을 제작한다. 김씨는 “공방에서 제작되는 상품들은 모두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기부를 통해 얻은 한정된 원단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환경적 가치 실현을 위해 플라스틱 단추 같은 자재 사용을 최소화한다. 제작 후 남은 원단이 없도록 디자인을 효율화하는 방안도 계속해서 연구 중이다. 이씨는 “원단을 재사용한다는 의미를 지키면서도 디자인이 너무 투박해 보이지 않도록 열심히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공방에서 엄마들은 서로를 도우며 자립에 한 발짝 가까워지고 있다. 재봉 실력이 능숙한 김씨는 다른 엄마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앞장서 도우며 고장난 재봉기계까지 손수 고친다. 이씨는 “김 선생님은 초보 엄마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신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김씨 역시 다른 엄마들이 기획한 상품을 옆에서 지켜보며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탄할 때가 많다.

 

엄마들을 위한 배려와 응원

육아로 인한 돌발상황을 고려해주는 기업의 배려는 육아와 경제활동을 홀로 수행해야하는 싱글맘들에게 큰 힘이 됐다. 아이가 코로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급히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가야 하는 상황에도 대체 근무자를 재빨리 섭외해주거나 직원이 대신 근무를 해주며 엄마들의 사정을 배려했다. 이씨는 “일반적인 직장이면 진작에 잘렸거나 따돌림을 당했을 것”이라며 싱글맘의 일상을 먼저 고려해주는 시스템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심리적으로 많은 응원을 보내준 봄비살롱을 통해 노동의 건강한 기쁨을 느끼게됐다. 그는 이전까지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본인의 실력에 확신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봄비살롱은 “일을 잘하는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엄마들이 이 일을 해주길 원해서 맡겼다”고 말하며 응원을 보냈다. 이씨는 이제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상품을 제작하며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따로 자격증이 없어 실력을 증명하기 어려운 재봉 일이지만 김씨에게는 “꾸준히 노력해서 언젠가 나만의 공방을 차려 일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봄비살롱은 앞으로 각 분야의 엄마들이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대학과의 활발한 협업을 병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올해 연세대학교에서는 싱글맘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코딩 교육을 진행했고, 교육받은 엄마들이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에게 다시 코딩을 가르쳐주는 활동을 기획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학생들이 먼저 협업을 제안해 함께 애견슬링백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간사는 “새로운 꿈을 꾸며 희망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엄마들을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