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또다시 슬픔에 빠졌다. 10월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전 국민의 마음에 상흔을 남겼다. 본지는 트라우마 심리학의 전문가인 안현의 교수(심리학과)를 만나 이번 참사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영향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안현의 교수는 한국심리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재난심리위원장을 역임했다. 김수현 기자
안현의 교수는 한국심리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재난심리위원장을 역임했다. 김수현 기자

 

이번 이태원 참사와 같이 일상 공간에서 발생한 재난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원래 모든 재난은 예측할 수 없어요. 재난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합니다. 이런 참사를 겪고 나면 우리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지고 사회가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런데 이번 참사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욱 큰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인 것이죠.

 

생존자들은 참사의 현장 속에서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기도 하는데요, 이런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이런 현상을 생존자 죄책감이라고 부르는데 생존자 죄책감은 거의 모든 사람의 유전자에 있어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구성원이 다치거나 나쁜 일을 당하면 공동체 또한 영향을 받습니다. 죄책감은 대부분의 사람이 느끼는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인 거죠. 그러나 그때 상황을 회상하며 자책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살아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만약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 감정에 집중하지 말고 (본인이) 그만큼 타인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은 희생자들에게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을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포스트잇으로 남겼다. 이자빈 사진기자
시민들은 희생자들에게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을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포스트잇으로 남겼다. 이자빈 사진기자

 

일각에서는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이라며 희생자들을 탓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희생자와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희생자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삶에 대한 통제감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세상은 예측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재난은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때 사람들의 뇌 속에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납니다. 통제감을 느끼기 위해서 자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데 재난의 원인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당장 규명할 수는 없어요. 사건을 분석해보고 후에 정부나 지자체에서 제도를 보완해야 하는 거지 이태원에 간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SNS를 통해 급속히 유포된 이태원 참사 현장의 영상이나 사진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참사와 관련된 영상이나 사진이 퍼지며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조차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사진을 보는 행위는 당시 현장에 나를 노출해서 트라우마 경험을 만듭니다. 그러니 절대로 공유하거나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나면 뇌가 혼란에 빠지고 과거의 트라우마나 경험들이 촉발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멀리하세요.

 

참사 이후 사건의 잔상이 남는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뇌는 한번 보거나 접한 것을 저장하기 때문에 기억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합니다. 안 좋은 잔상은 없애려고 할수록 떠오를 수밖에 없어요. ‘얼룩말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얼룩말이 바로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잊으려 하기보다는 힘들 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따뜻한 기억들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게 도움이 돼요. 또 본인을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나쁜 기억을 덮을 수 있는 따뜻한 것들을 계속 찾으세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헌화가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바닥에 가득 놓여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헌화가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바닥에 가득 놓여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참사 경험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조언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생활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기상 시간을 정하고, 밥을 챙겨 먹고, 수업에 출석하며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는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삶의 구조화’라고 부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 자신과 주변을 잘 챙기고 돌봐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친구들끼리 서로의 안부도 꾸준히 물어보세요. 너무 힘들면 상담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사회와 국가는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국가는 비난과 처벌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책임 소재를 문책하기보다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삶을 살아내는 것과 슬픔을 공유하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사회가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우리 학생들이 가장 걱정이 됩니다. 학교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으니 이용하길 바랍니다. 사람은 서로를 보살피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이화 커뮤니티 안에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교직원, 상담자들이 제 역할을 하고, 특히 학생들끼리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합니다. 혹시 주변에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용기 낼 수 있도록 함께 상담실을 찾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럴 때일수록 나 자신이 얼마나 강인한 존재인지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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