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상징, 무지개에 포용적 태도가 드러난다 <strong> 강동주 기자
퀴어의 상징, 무지개에 포용적 태도가 드러난다. 강동주 기자

"교통사고가 났는데, 응급실에 가면 주민번호로 성별이 밝혀지니까 병원에 안가는 친구도 있었어요. 성전환 수술을 했는데 성별 정정은 되지 않은 상태라 외적으로 보이는 성별과 신분증의 성별이 다르니까요. 사고가 나도, 아파도, 건강검진을 받아야 할 때도 그냥 병원에 안가는거죠."

◆아웃팅이 두렵고 혐오 발언이 지겨워서 병원을 찾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의료 선진국’ 한국에서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바로 성소수자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포함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을 가진 이들은 여전히 병원을 찾는 게 쉽지 않다. 모두가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며 이성애자일 것이라는 추측을 전제로 진료하는 병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병원에서는 진료 전 간단한 문진조차도 이들에게는 큰 산처럼 느껴진다.

 

평등하게 진료받을 권리 

성소수자 의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의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승현 이사장은 “접근성의 문제는 의료 서비스에서 배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는 일차적으로 아웃팅의 문제 때문에 병원 방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간단한 진료를 받으려고 해도 본인이 맺는 관계의 특수성과 신체적 특징 등을 설명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트랜스젠더의 경우 이러한 아웃팅의 우려가 더욱 크다. 성별정정이 되지 않았을 때엔 외적 성별과 주민등록상의 성별이 다르고, 성별정정 이후에도 정확한 진료를 받으려면 본인의 수술 이력과 신체적 특성, 호르몬 주사 여부 등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성소수자들에게는 퀴어프렌들리한 병원이 절실하다. 병원에 대한 정보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찾는다. 커뮤니티는 병원에 대한 정보 공유를 비롯해, 퀴어 당사자들이 질문과 논의를 자유롭게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애초에 공유되는 정보가 적을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의 폐쇄성 때문에 내부에서 잘못된 정보가 확산돼도 이를 바로잡아줄 전문가가 없다. 커뮤니티 안에서 퀴어 당사자들은 왜곡된 정보를 접하고, 본인에게 필요한 조치에 대해 오해하기도 한다. 

2018년, 성소수자 의료 정보 부족과 커뮤니티의 폐쇄성으로 인해 생기는 정보 왜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웹사이트 ‘성소수자알권리보장지원 노스웨스트 호’가 등장했다. 노스웨스트 호는 성소수자들이 의료적, 제도적 도움을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제보를 기반으로 퀴어프렌들리한 병원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다. 

퀴어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적절한 진료와 상담을 진행하며, 환자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그대로 수용하는 병원을 리스트업해 공유한다. 퀴어에 무지하거나 의료인의 자질이 부족하다 판단되는 경우 리스트에서 삭제한다. 

노스웨스트 호는 “모든 병원은 환자에게 균등한 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결국 모든 병원이 퀴어프렌들리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퀴어프렌들리라는 개념 자체가 당연한 것이 돼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의 의료 접근성이 낮음을 지적하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승현 이사장  <strong> 박성빈 사진기자
성소수자의 의료 접근성이 낮음을 지적하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승현 이사장 박성빈 사진기자
                        살림의원의 추혜인 원장 제공=추혜인 원장
                        살림의원의 추혜인 원장 제공=추혜인 원장

 

퀴어를 위한 의료 가이드가 필요하다

정보 부족의 문제는 성소수자만의 일이 아니다. 이들을 진료해야 하는 의사도 성소수자 진료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는 각각 모두 필요한 의료적 검진과 조치가 다르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각각 감염 위험성이 높은 원인균의 종류가 달라 추천되는 예방접종이 다르다. 트랜스젠더가 성전환을 위해 호르몬을 투약하는 경우, 만성질환 확률이 높아져 관련 검사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트랜스여성의 경우엔 성별 정정이 되지 않았어도 호르몬 투여를 했다면 유선이 자라 유방암 검사가 요구되는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성소수자에게는 특수한 의료 가이드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정신과 진료 외에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성소수자를 진료하려는 병원도 국내 연구나 가이드라인이 없어 어려움을 마주할 때가 많다. 이런 정보의 부족은 성소수자 의료의 사각지대를 더욱 크게 만든다.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살림의원’은 ‘차별이 없어야 진짜 건강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운영되고 있다. 살림의원은 장애인과 성폭력 피해 여성 등 의료 약자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사람들을 차별없이 진료한다. 

수많은 성소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살림의원 추혜인 원장은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의료 자료가 특히 부족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국에는 트랜스젠더 호르몬 주사 투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그는 외국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처방한다. 호르몬주사는 개인의 신체적 요건에 따라 투여 양, 주기 등의 격차가 크기에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2017년 60세 남성이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주사 투여를 요청하며 찾아왔을 땐, 이에 대한 연구 자료가 부족해 거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나를 정의하는 단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며 “부작용이 있어서 당장 죽는다 해도 나는 여자로 죽고 싶다”고 부탁하는 환자를 이길 수 없었다. 추 원장은 양을 조절해가며 호르몬 투약을 시작했고, 5년이 지난 현재도 환자는 살림의원에서 호르몬을 투여받고 있다.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향해 

2021년 서울대 윤현배 교수(의학과)는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의료 정규 과목을 개설했다. 의대 본과 2학년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수업은 그다음 학기 여러 학년으로 확대됐다. 본과 4학년의 요구로 또 수업이 개설되기도 했고, 다른 학교에도 성소수자 의료 과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윤 교수의 요청으로 수업 제작을 도왔던 추 원장은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성소수자 특수성을 자세히 다루는 수업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8월 그는 성소수자의료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차별 없는 병원’을 집필했다. 성소수자 의료에 대한 기초 지식, 문진 방법, 임상 정보 등을 제공하는 책이다. 추 원장은 성소수자 의료 교육에 대한 수요는 있지만, 교육을 제공할 교수자는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 “‘차별 없는 병원’이 나름의 교과서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소수자 의료 교육에 대한 수요는 있지만 모두에게 수업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에 그 간극을 채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현 이사장, 추혜인 원장 포함 11인이 공동집필한 책 '차별 없는 병원' 출처=휴머니스트
             이승현 이사장, 추혜인 원장 포함 11인이 공동집필한 책 '차별 없는 병원' 출처=휴머니스트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해도 통계가 먼저 필요해요.” 개인들의 노력으로 성소수자 의료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만, 확산을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인구 통계는 전무하다. 인구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적 필요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재 성소수자를 위한 호르몬, 성전환 수술 등의 의료행위는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건강보험에 편입을 위해서도 세부적인 통계가 필요하다. 추 원장은 “주변 동료 의사들은 성소수자의 수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며 “통계가 마련될 경우 성소수자의 존재를 깨닫고 관련 연구와 의료 행위를 위한 노력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인들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추 원장은 모두가 평등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의 확산을 위해서는 “이성애 중심주의와 모두가 시스젠더일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국내 최초 성소수자 의료 정규 강의가 시작되기 전날, 트랜스젠더 여성 군인이었던 변희수 하사가 자살했다. 변 하사는 남군으로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군으로 계속 복무할 것을 요청했으나 강제전역당한 후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소송중이었다. 

추 원장은 당시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많이 교육하려고 노력할 걸 후회했다. 그는 “이제라도 성소수자 의료 교육의 수요가 많다는 게 파악됐고, 이를 위해 많은 의료인들이 노력하고 있다”며 분명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에 찬 말을 전했다. 

 

◆아웃팅: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 

◆시스젠더: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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