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라흐헤스트' 넘버 작곡한 문혜성, 정혜지 동문
이상과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의 삶과 사랑에 초점맞춰
CJ문화재단 공모전 당선작, 11월13일까지 드림아트센터 공연

 

드림아트센터 2관 '라흐헤스트' 무대 제공=홍컴퍼니
드림아트센터 2관 '라흐헤스트' 무대 제공=홍컴퍼니

‘라흐헤스트’는 두 천재 예술가 이상과 김환기의 아내로 알려진 김향안의 사랑과 예술을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2020년 5월 CJ 문화재단 스테이지업 창작뮤지컬 공모작으로 당선된 ‘라흐헤스트’는 2년 반의 준비 과정을 거쳐 9월6일부터 11월13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공연된다.

김향안(1916~2004)의 본래 이름은 변동림이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1936년 이상과 결혼했으나 3개월 만에 동경으로 떠난 이상이 사망한 후 1944년 서양화가 김환기와 재혼한다. 이후 그는 김환기의 ◆아호였던 ‘향안’으로 이름을 바꾼다. 김향안은 수필가이자 화가로서 ‘파리’, ‘우리끼리의 얘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등의 작품을 남겼다. 불어로 ‘예술은 남다’라는 뜻의 극 제목 ‘라흐헤스트’도 김향안의 수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극 중 동림은 이상과 사랑에 빠져 그를 따라 가방 하나 들고 집을 나선다. 모두가 이상의 작품을 비웃어도 묵묵히 이상의 예술 세계를 존중하는 그는 ‘날개’의 결말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향안은 환기에게도 뮤즈 그 이상의 존재였다. 향안은 환기의 그림을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혼자 파리에 가서 아뜰리에를 마련하고 그가 죽은 후에는 ‘환기 미술관’을 설립해 작품들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했다.

극은 향안이 생의 마지막 순간 그동안의 기억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환기와의 시간은 이별에서 만남인 역순으로, 이상과의 시간은 만남에서 이별인 순행으로 교차 구성된다. 독특한 구조로 인해 실제 동일인물인 항안과 동림은 다른 배역으로 등장해 서로에게 말을 건네며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응원과 위로를 주고받는다. 본지는 창작진 가운데 뮤지컬 작곡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딘 문혜성(작곡·14년졸), 정혜지(작곡·13년졸)씨를 만났다.

 

첫 만남부터 공동작곡까지

두 작곡가의 첫 만남은 2009년, 학과 오리엔테이션 날 버스에서 이뤄졌다. 문씨는 정씨가 다른 동기와 함께 다가와 ‘우리랑 같이 놀래?’라고 말을 건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두 사람은 09학번 동기로, 졸업 후에도 ‘그날들’, ‘형제는 용감했다’ 등 다수의 뮤지컬 작품에서 음악 조감독으로 일하며 호흡을 맞춰왔다. 

문혜성, 정혜지씨(왼쪽부터) 제공=정혜지씨
문혜성, 정혜지씨(왼쪽부터) 제공=정혜지씨

문씨는 중학교 3학년, ‘싱잉인더레인’(Singing In The Rain)을 본 후 처음으로 뮤지컬 작곡가의 꿈을 꾸게 됐다. “음악으로 진행되는 드라마가 신선한 충격이었고 흥미로웠죠.” 정씨의 경우 대학교 4학년 시절 뮤지컬 조감독으로 일하던 문씨를 통해 뮤지컬에 발을 들였다. 문씨의 권유로 참여한 뮤지컬 특강에서 본인이 작곡한 곡이 다수 학생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 계기였다. 

이상과 김환기라는 두 예술가의 아내로서가 아닌 진취적인 여성 김향안에 매력을 느낀 문씨는 2019년 겨울, 정씨에게 작품 공모전 참여를 제안했다. 당시 제작한 작품 ‘라흐헤스트’는 30대1의 경쟁률을 뚫고 CJ 문화재단 창작 뮤지컬 공모전에 당선됐다. 정씨는 처음, 문씨는 두번째 공모전 참여였다. 

창작 뮤지컬에서 공동작곡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귀에 꽂히는 멜로디라인을 구상하는 정씨의 음악적 능력과 감정을 풍부하게 만드는 문씨의 곡 해석 능력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문씨는 “혜지 작곡가의 곡을 처음 듣자마자 ‘와! 너무 좋다’는 감탄이 나왔다”고 말했다. 정씨는 “저는 가사를 받고 곡을 쓰는데 언니는 가사가 없어도 장면을 잘 해석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말줄임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동림은

그걸 꼭 알아주는 것 같아.

극 중 대사처럼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두 사람은 작품 준비과정에서 마음이 통한 적이 많았다. 연습 중 유독 잘 불렀다고 생각한 배우의 노래를 듣고 동시에 서로를 툭 치다 놀라기도 했다. 작곡 과정에서 간혹 의견이 충돌할 때도 두 사람은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조율해나갔다. 서로의 의견을 부담 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상처를 덜 받게 하기보다는 작품을 우선으로 고려했는데 크게 부딪힌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넘버를 작곡하며

“향안, 그 이름을 내게 줘요.”

극 중에서 동림은 환기에게 그의 아호 ‘향안’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이상과의 이별을 동림에게 남기고, 향안이란 인물로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 하지만 향안과 동림을 분리해 그려내는 방식이 낯설게 느껴질 우려도 있다. 실제로는 동일 인물이나 아예 다른 인물처럼 듀엣을 하거나 대화하는 장면도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두 작곡가는 인물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림은 더 발랄하고 당찬, 향안은 따뜻하고 성숙한 느낌으로 표현했다. 문씨는 “두 캐릭터의 성격 차이뿐만 아니라 나이대를 고려해 동림은 조금 더 높은, 향안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음역대로 넘버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만큼 작곡에서의 고충도 있었다. 두 사람은 예술가들의 업적에 흠을 내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환기 미술관에 여러 차례 방문하고 이상의 시와 김향안의 수필을 여러 권 읽는 등 인물을 자세히 연구했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작품 준비를 위해 읽던 이상의 ‘날개’에서 정씨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정씨는 어두운 예술가의 모습이 아닌 동림을 통해 날아오르는 이상을 표현하고자 해당 구절을 반복해 읽으며 희망찬 분위기의 ‘너로 인하여’라는 곡을 작곡했다. 

6일 두 작곡가는 전 스태프들과 함께 첫 공연을 관람했다. 문씨는 “아직까지도 데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신경 써서 관람하기를 바라는 부분도 언급했다. 정씨는 “동림과 향안의 마음에 이입한다면 글과 음악의 감동이 몇 배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는 극의 메시지처럼 두 사람이 되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모습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정씨는 ‘믿고 듣는 작곡가’, 문씨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른 시일 내에 관객들을 다시 만나고자 여러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고, 세월이 가도 작품은 남더라고요. 우리의 작품을 가을이 시작되던 그즈음의 향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아호: 문인이나 예술가 따위의 호나 별호를 높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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