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중앙동아리 영화패 누에 출처=이대학보DB
본교 중앙동아리 영화패 누에 출처=이대학보DB

2022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여성 창작자가 참여한 작품에 가산점을 주는 ‘성평등 지수 제도’가 차별이라는 진정을 기각했다. 인권위는 “현존하는 차별 개선을 위한 특정한 집단의 잠정적 우대에 해당하기에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중심이 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성평등 지수 제도(여성 가산점 제도)는 영화 지원 사업에서 여성이 창작자인 경우 3점, 여성 서사 시나리오일 경우 2점의 가산점을 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17년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영화산업 내 성평등 환경 조성의 필요성이 강조되며 2021년 등장했다.

영진위가 제도 시행을 발표한 후 ‘영진위 성평등 지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20년 12월22일 제기됐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2017) 등을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양성평등 주간에 진행된 영화 행사인 ‘벡델데이 2021-벡델 심포지엄’ 토론회에서 “성평등 지수 제도는 훌륭한 여성 창작자들을 특혜 입은 사람들로 일반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실에서 발표한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국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순위권에 들었던 남성 작가 4명이 성평등 지수 반영 후 순위권에서 밀려나 700만원의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관련 내용이 알려지자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인 ‘기승전결 작가그룹’에서는 역차별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주변화된 여성 창작자들

출처=조혜영,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 2020.
출처=조혜영,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 2020.

실제 영화 제작 현장은 어떨까. 영진위 조혜영 연구원의 ‘한국 영화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연극영화학과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은 57.6%지만 순제작비 30억 이상 상업영화 감독 중 여성 비율은 4.1%다. 자본이 적게 투입되는 초기 경력 쌓기 단계와 소규모 작품의 경우 여성의 진입이 비교적 용이한 반면 예산과 관련해 자원이 집중되는 단계 또는 영역에서는 남성 감독의 독과점이 두드러진다.

1990년대 초부터 ‘봄날은 간다’(2001), ‘지구를 지켜라!’(2003), ‘역도산’(2004)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한 여성영화인모임 김선아 대표는 “예산과 스텝이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남성 스텝이 많은 현장을 지휘하기 위해 당연히 남성 감독이 적합하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여성 감독의 리더십은 남성 감독에 비해 쉽게 폄하돼요. 이런 고정관념은 여성 창작자가 제작한 영화를 독립영화나 특정 장르 중심으로 제한합니다. 여성 영화가 가지는 서사의 다양성을 상업영화까지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상업영화 감독 성비의 불균형을 언급하며 영화계 내 유리천장의 존재도 강조했다. 실제로 ‘벡델데이 2022-벡델리안과의 만남: Again, 양성평등에 한 발 더 가까이’ 토크 행사에서 정서경 작가는 “헤드 스텝들이 남성인 경우가 많다”며 “현장에선 여성 스텝이 절반 정도지만 기업에서 주최하는 영화계 고위직 모임에서는 여성 창작자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더욱이 감독 중심 시스템인 영화 현장은 방송계보다 대우가 열악하다는 인식이 있어 많은 작가가 방송계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여성 작가가 힘이 있는 방송계처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상업영화에서도 서사 창작 능력을 갖춘 여성 감독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본교 중앙동아리 영화패 누에 부원인 고수민(불문·20)씨도 영화 산업 내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영화 아카데미에 입문하는 여성은 많으나 현장에 오래 남아 있는 여성은 소수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계 내 구조적 성차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평등 지수가 주는 메시지

성평등 지수와 같은 적극적 우대정책에는 항상 역차별 이슈가 따라붙는다. 문화사회연구소 김성윤 연구원은 “역차별 정서가 안타까운 현상임은 분명하지만, 불평등 문제를 사회공학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반작용”이라고 말했다.

부산대 김영 교수(사회학과)는 “성평등 지수 제도와 같은 적극적 우대 정책은 영화계 성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고 한국 영화의 다양성 확보와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평등한 영화계가 되기 위해서 결정권을 가진 집단의 성비 시정이 시급하다”며 정기적인 조사를 통한 여성 영화인의 실태 파악과 구체적인 정책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평등 지수는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한 제도다. 김 대표는 “여성에게 1점, 2점 더 주는 것을 공정과 불공정의 시선으로 나누기보다 여성과 남성의 서사가 다양하게 공존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창작자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화감독 지망생 ㄱ(커미·21)씨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는 “성평등 지수를 통해 사회가 어떤 부분을 고려하고 원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며 “여성 서사의 여부가 가산점 요소에 있는 것은 영화계의 성적으로 평등한 변화를 촉구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씨는 여성이 만들고,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늘어나 영화계 입문을 꿈꾸는 여성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제도로 고질적인 남성 중심 영화 산업 내의 유리천장이 단번에 깨지진 않겠죠. 미래엔 여성 창작자가 만들거나 여성 서사를 다룬 영화가 ‘여성 영화’가 아닌 수많은 영화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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