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학 이념과 개인의 신념

채플 수업이 시행되는 본교 대강당의 전경 박성빈 사진기자
채플 수업이 시행되는 본교 대강당의 전경 박성빈 사진기자

7월1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대학의 대체 과목 없는 채플 수강 강요는 종교 자유 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학생이 ◆종립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어떤 종교 교육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 표시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본교는 매주 한 번씩 8학기 채플 이수를 졸업 요건으로 설정해, 학생들은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졸업이 불가하다. 채플은 기독교 계열의 대학 등에서 실시되는 예배를 말한다. 본교에서는 1888년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며 기독교적 건학 이념을 구현하는 통로로 운영되고 있다. 채플은 학교 설립 취지 및 정체성과 연관돼 기독교 학교의 상징적이고 핵심적인 교육과정으로 꼽히며, 단순한 예배를 넘어서 교내·외 소식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채플은 사립 대학 자치권으로 보장된 권리

본교의 채플 운영은 종립 대학 종교 교육의 자유에 근거한다. 이는 교육기본법 제6조교육기본법 제12조 3항, 고등교육법 제6조시행령 4조에서 보장된다. 법령상 종립 대학은 학칙에 종교 교육을 명시할 경우 이를 실시할 권리를 가지며, 학생은 해당 교육에 대한 ◆수인의무를 가진다. 국공립 학교와 달리 사립학교의 경우 종교 교육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제31조 4항은 대학 교육의 자치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 조항을 토대로 1998년 대법원은 일정 학기 대학 예배 참석을 졸업 요건으로 한 숭실대 학칙이 ◆위헌무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권태상 교수(법학과)에 따르면 이는 “학생들의 예배 참석을 하지 않을 자유가 인정된다 해도, 대학이 졸업 요건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리도 헌법상으로 인정돼 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채플을 포함한 종교 교육을 졸업 요건으로 정하는 것이 헌법상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판결에는 “사립대학은 종교 교육 및 선전을 위해 학생들의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일정한 내용의 종교 교육을 받을 것을 졸업요건으로 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본교 채플 운영 방식은 대법원이 헌법에 부합하는 종교 교육의 범위로 제시한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는 수준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교수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 종립 대학에서 행해지는 채플은 학생의 개종을 강요하기보다는 문화 공연이나 교양 강좌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 인성교육의 성격이 강하다. 많은 학교가 기독교적 건학 이념을 실현하되 학생 종교의 자유를 그나마 보장할 수 있는 채플 구성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교 또한 종교성에 매몰되지 않고 무용 채플, 선배 채플, 졸업 채플 등 다양한 채플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이성청 교수(종교학과)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종교 교육의 범위를 너무 느슨하게 정의했다”고 말했다. 판결에서 “종교 교육”은 신앙과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예배까지 포함하지만, 기독교 역사 등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종교 교육과 포교가 목적인 예배는 본질적으로 매우 다른 활동이라는 것이다. 서명삼 교수(기독교학과) 역시 종파 교육인 예배와 학문적 종교 교육을 구분해야 하며, 인권위의 권고문에서 이런 구분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종교 교육의 권리가 개인 신앙 자유 침해해선 안돼

2021년 5월2022년 7월, 인권위는 대학 채플 수업이 학생 개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채플 수업을 대체할 수 있는 과목을 마련하는 등 학생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존중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인권위 권고가 “충돌하는 두 권리를 조화시키고자 낸 중재안”이라며, 개별 사립 종립 대학들이 가진 전통을 인정하나 그것이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의 권고는 종파 교육을 완전히 폐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비신앙 학생을 위한 선택지를 추가하라는 것이다. 개인의 종교적 자유와 소속 집단 종교 교육의 자유 중 어느 하나가 더 우선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총연합과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는 이러한 권고에 대응해 7월26일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인권위 권고는 종교계 사립대학의 자율성 및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기독교 대학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사립학교의 종교 교육 권한을 제한함으로써 기독교 대학의 건학 이념 구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여지가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 내에서도 입장은 다양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박경양 목사는 채플 대체 과목을 개설하거나 대체 과제를 부여하라는 인권위 권고에 동의했다. 그는 “종립대학에는 종교 교육을 통해 건학 이념을 실현할 권리가 있지만, 해당 권리가 학생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앙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지닌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권위는 해당 권고의 이유로 “신입생 모집 요강에 채플 수업이 필수이며 이수하지 못할 경우 졸업하지 못한다는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다. 또한 “학생들이 입학 전에 채플 이수가 의무임을 알고 있었더라도 대학을 선택할 때 이는 대단히 유의미한 조건이 아니라는 점”도 헤아렸다. 인권위는 “학교가 특정 과를 제외하면 종파교육과 직접 연관이 없는 일반학과로 구성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학생이 종립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어떤 종교교육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표시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성청 교수 역시 “비신앙인도 신앙적 차별 없이 평등하게 입학을 허용하는 사립학교에서 특정 신앙 프로그램을 졸업 의무 사항으로 강제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대학 구조상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그중에서도 30% 이상이 종립대학이다. 또한 학생들의 대학 선택에는 대학 서열화에 따른 타의적 요소가 다분히 작용해, 개인의 대학 선택이 온전히 자발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표 강사 최승후 씨는 “실제로 대학을 선택할 때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종교재단의 대학이 아니면 종교 교육 여부를 세세히 살피지는 않는다”며 “종교에 따라 대학 선택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매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소통과 이해가 필요하다 

채플이 의무인 학교는 채플의 목적이 종교 전파가 아니라 기독교적 소양과 사회가 요구하는 지성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 효과는 미미하다. 본교 채플 역시 “이화인이 건학이념인 기독교 정신을 계승하고 내면화해 성숙한 인격과 윤리 의식을 갖춘 지도자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함”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성청 교수에 따르면 자기 결정 이론과 실험에 근거했을 때, 강제로 요구된 프로그램은 긍정적 결과를 끌어낼 수 없다. 이진구 교수 또한 “강요된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라는 경구를 들며 자발성이 결여된 종교 교육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불신 같은 역효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지가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본교의 종교 교육은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설문에 참여한 학생 403명 중 62.3%가 ‘종교 교육이 교양 함양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교양 함양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학생은 전체의 15.4%에 불과했다. 나머지 22.3%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나아가 기독교에 대한 인식에도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며, 이 교수의 분석처럼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종교 교육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는지 묻는 질문에도 ‘변화 없음’이라는 답변이 67.5%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답변이 23.1%,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답변이 9.4% 수집됐다. 매주 채플을 수강함에도 60% 이상의 학생은 교육적 측면에서 변화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학생들이 환영하지도, 능동적으로 참여하지도 않는 채플이 이들에게 과연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을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채플에 반감을 가지지 않게 하려면 학교가 본교의 기독교 정신과 채플을 통해 무엇을 이뤄내고 싶은 것인지를 밝혀 학생들에게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학교의 채플 강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이성청 교수는 “학생과 학교의 입장 차이를 줄이려면 대화와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며 기독교 교육 방식에 대한 안내를 분명히 하지 않는 대학의 자세를 꼬집었다. 그는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이를 학생에게 투명히 밝혀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며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안내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함승수 교수도 “상호 간의 이해가 중요하다”며 “학교는 학생들이 보다 거부감 없이 종교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연한 교육을 해야 하고, 학생은 학교의 가치관을 보다 전향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적 성질을 강조하기보다는 “지금처럼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채플을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며 종교적 내용을 거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한 재구성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본지는 해당 기사를 준비하며 교목실의 입장을 듣고자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응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종립 대학: 종교 단체에서 설립해 경영하는 대학

◆수인의무: 타인이나 국가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때,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인내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위헌무효: 헌법에 위반되어 법률로서 효력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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