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MCCLXXXI 이는 아라비아 숫자 3281을 로마자로 표기한 것이다.

M은 1000·C는 100·L은 50·X는 10 그리고 마지막 I는 숫자1을 뜻한다.

이를 식으로 계산하면 1000 + 1000 + 1000 + 100 + 100 + 50 +10+10+10+1=3281이 된다.

만일 모든 나라에서 공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숫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대신 이 로마자만 남는다면 아마 인간이 활동하는 모든 분야에 큰 혼란이 오게 될 것이다.

우리 학교 이영하 교수(수학교육 전공)는 “숫자가 없다면 인간 생활의 절반 이상이 동물적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 간에 논리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므로 인류 문명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의 개념을 상징하는 기호로써 아라비아 숫자가 가진 우수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숫자가 없다면 “비가 올 확률은 20%입니다”라는 당장 내일의 일기예보 조차 간단하게 표현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와 ‘숫자’의 개념을 엄밀히 구분하는 것이다.

숫자는 수를 표현하는 ‘기호’이고 수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기호는 무수히 다양할 수 있다.

앞에서 예를 든 로마자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의례적으로 사용하는 正(바를 정) 역시 5를 가리키는 하나의 숫자다.

인간은 이런 다양한 형태의 기호 중에서 십진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됐다.

결국 십진법을 토대로하는 아라비아 숫자가 편리함을 최대 무기로 다른 표기 체계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았다.

숫자로 표현되는 추상적인 수개념이란 일상적으로 종이 세장·개 세 마리·사람 세명이 있다고 할 때 그 안의 공통적인 패턴 3을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이 개념은 인류의 삶이 더 이상 사물과 사물을 1:1로 대응하기 힘들만큼 복잡해진 뒤 등장하게 됐다.

서울대 대학원 전재호(철학 전공 박사과정)씨는 “개념으로써의 수의 발견은 ‘수학의 시작’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숫자가 기호적인 편리함을 갖는다면 수는 인간 정신의 획기적인 진보를 가져왔다는 의미다.

16세기 데카르트와 갈릴레이 등에 의해 현대과학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사물의 성질을 가장 쉽게 포괄하는 개념을 학문의 근간에 두게 됐고, 그 개념이 바로 ‘수’였다.

더욱이 오늘날 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측정에 있다.

학문 연구의 방법이 사물의 성질을 연구하는 정성적인 것에서 모든 것을 양으로 환원하는 정량적 분석으로 변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손은 5라는 수를 나타낸다.

좀 더 자세히 보면 특정한 수의 털과 특정한 개수의 주름을 찾을 수 있다.

또 손가락의 길이는 밀리미터(mm) 단위의 특정한 수이며 손의 내부를 측정하면 온도·혈류의 속도 등 더 많은 수를 얻는다.

이러한 수를 통한 정량적 연구는 학문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이에 대해 우리학교 안창림 교수(물리학 전공)는 “숫자는 수학의 언어”라고 정의하며 “숫자가 알파벳이라면 수학은 그 언어의 문법이요, 그리고 우주 자연의 현상들은 그것을 다루는 문학 작품”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숫자라는 언어로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해내는 것을 보면 그의 능력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히 들어와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오늘날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사는 인류는 이 후의 발전으로 도약하기에 앞서 숨은 ‘공로자’ 숫자를 위한 ‘감사패’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