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서 지핀 여공파업의 불씨
지붕에서 지핀 여공파업의 불씨
  • 안선영
  • 승인 200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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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노동운동가 강주룡
1931년 5월29일, 높이 12m의 지붕 위에 한 여인이 앉아 있다.

그는 동이 트길 기다려 산책하는 백여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장주의 만행을 호소한다.

9시간 반만에 경찰에 의해 끌어내려진 지붕 위의 여장부는 당시 평원고무공장 여공이었던 강주룡(1901∼1932)이다.

1901년 평북 강계에서 태어난 그는 서간도에서 살다가 스무살에 결혼했으나 2년 남짓만에 병으로 남편을 잃었다.

그는 그 뒤 귀국해 평양의 고무공장에서 여공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그러나 당시 공장주들은 1929년 세계공황 이후 ‘산업합리화’를 내세워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들을 혹사시켰고, 참다 못한 평양 노동자들은 1930년 총파업을 벌였다.

강주룡이 다니던 평원고무공장에서도 회사측의 일방적인 임금삭감 통보에 1931년 5월28일 강주룡과 14명의 여공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이에 회사측이 경찰을 동원해 이들을 강제로 해산·해고시키자 강주룡은 목숨을 끊어서라도 사람들에게 공장주의 횡포를 알리고자 을밀대 지붕 위에 오른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이 사건을 ‘고공농성’·‘평양의 히로인’·‘여류투사 강여사’ 등으로 대서특필했다.

이 사건으로 구류를 살게 된 강주룡은 5월30일부터 78시간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처분에 항의했고, 복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여공들과 함께 새 직공의 출근을 저지하고 자동차에 돌을 던지는 등 투쟁을 본격화했다.

해고와 구금을 반복하며 파업단의 대표로 활약하던 그는 1932년 6월 투옥 중 신병으로 보석 출감된 뒤 신경쇠약 등을 겪다가 8월13일 평양 빈민굴에서 3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회변혁을 꿈꾼 여성지도자들의 대부분이 엘리트 출신이거나 사회운동가 남편의 영향을 받은데 비해 강주룡은 순수한 노동자 출신 운동가다.

오늘날 그는 공장 생활을 통해 실질적인 투쟁을 이끈 한국 최초의 여성노동운동가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