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54주기를 맞아 제주 전역에서는 위령제·문화행사 등이 한창이다.

이러한 행사는 3월28일(목)부터 13일(토)까지 대대적인 규모로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난 5일(금) 지리산 외공양민학살 대책위원회에서 ‘피학살지 보전을 위한 땅 한 평 사기 운동’의 성과를 모아 식목행사를 했고, 7일(일)에는 경남 산청유족회의 위령제가 있었으며, 오는 13일(토)에는 강화 옥계 갯벌 학살 사건의 위령제가 예정돼 있음은 알지 못한다.

특별법이 제정된 제주 4.3사건과 거창 신원면 사건 그리고 AP통신과 BBC 등 외국 언론의 보도로 널리 알려진 충북 영동 노근리 사건 이외에도 미군에 의한 학살 사건이 국방부에 접수된 것만 61건이고 한국 군경과 지역 치안대 등의 우익단체에 의한 학살을 포함하면 약 100여 건이 넘는다는 것을,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최소 50만명에서 최대 300만명까지 추정되는 민간인이 희생됐음을 알지 못한다.

민간인학살 사건의 유족들은 전쟁 기간 중 미군과 한국군에 의해 죽었으니 분명 빨갱이일 것이라는 편견 앞에 소리내어 울지조차 못한 통한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나 미군은 피난민 속에 인민군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피난대열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으며 국군은 인민 치하에서 부역했다는 혐의로 정당한 법적 절차도 없이 부역혐의자의 가족들에게 보복학살을 자행했다.

이것은 명백한 국가범죄, 전쟁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은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긴장 상황에서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되는 것이 됐다.

그간 한국전쟁이 이데올로기 공격의 도구로 이용되면서 민간인학살 문제 또한 좌익 혹은 인민군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들만 확대, 왜곡돼 선전됐기 때문이다.

또한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이 돼 80년대 초까지 연좌제에 묶여 실질적인 피해를 당했기에 더 큰 피해를 당하지 않고자 했던 이들에게 남은 건 침묵을 선택하는 것 뿐이었다.

이렇듯 침묵과 왜곡의 50년 세월이 흘러가면서 민간인학살을 포함, 한국전쟁과 관련한 문제는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커다란 난점을 안게 됐다.

2000년 5월14일 단 하루 동안 150구의 유골이 발굴된 외공리 학살 사건은 유골과 함께 발굴된 가재도구와 교복 단추 등과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이들이 민간인이었다는 것만 확인됐을 뿐 군용트럭을 앞세운 10여대의 버스를 타고 온 이들이 어디에서 무슨 이유로 끌려와 학살됐는지는 전혀 밝혀지고 있지 않다.

피해자의 신원조차 파악되지 않는 상황,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극구 부인하는 상황, 한국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기밀문서가 공개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진상에 대한 접근은 참으로 요원한 일인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진상을 조사하고 억울한 이들의 명예를 회복해주지 않는다면 자식들에게조차 이러한 사실을 숨겨온 피해자, 유족들은 더욱 철저하게 숨어버리게 될 것이고 한반도의 긴장상황에서 자칫 이러한 역사는 또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다.

4.3사건이나 거창 신원면 사건 등의 개별 사건으로 접근해서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발생했던 무수한 민간인학살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

정부는 미(美)문서보관소에서 관련 증거자료를 발굴해 오는 등의 지난한 노력을 통해 이미 사실 확인이 된 몇몇 사건으로 이 문제를 축소하고자 한다.

이런 시도를 저지하고자 하는 각계의 노력을 모아 ‘민간인학살 관련 전국통합특별법’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나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이는 민간인학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첫 삽을 뜨는 일일 뿐이다.

전쟁 중에 시작된 학살의 국가폭력은 부도덕한 정권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돼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억압에서 벗어나 인권이 존중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을 돌아봐야 하며 그 안의 엄청난 국가폭력에 주목해야 한다.

50년 간 한을 가슴에 묻었던 피해자, 유족들이 고령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권력의 폭력을 엄단하고 예방하는 것은 이제 젊은 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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