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모든 사회적 화두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관련 분야에서 시작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이다.

최근 정부와 주류 언론은 음란, 자살, 폭탄 그리고 병역거부 등 일명 ‘반사회 사이트’와의 성전(?)을 강조하며 역설적으로 인터넷의 잠재된 위험성을 폭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 정보통신부는 얼마 전 ‘통신질서확립법’ 시행령을 통해 법안 통과 과정에서 누락됐던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부활시켰고, 지난주에는 아예 각종 안티사이트에 대해 집중수사를 하겠다며 ‘오바’하고 있다.

인터넷이 사회의 건전한(?) 도덕과 규범, 그리고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걱정이 태산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일관된 사고 체계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인터넷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온갖 매스미디어에 현란하게 공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둘러싼 최근 동향은 하나의 시선으로 접근하면 매우 일관성 있는 흐름이기도 하다.

바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한 (국가권력과 자본으로 대변되는) 지배권력의 흡수과정이자 재구조화과정’이라는 시각 말이다.

왜냐하면 지난 국회를 중심으로 추진된 각종 디지털 관련 법안들의 밀어부치기식 입법화, 이를 기반으로 한 규제·단속 중심의 정책 및 공권력 집행, 자본의 이해를 중심에 둔 유료화 정책에 대한 정부지원,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정부와 언론의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총체적 인과성과 개연성을 갖고 급작스럽고 은밀하게 그러나 강력히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인터넷을 둘러싼 지배권력의 재구조화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청소년보호법’, ‘청소년보호위원회’라는 국가장치와 ‘청소년보호’라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이들은 궁극적으로 청소년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인권·문화권 등의 보장과 진흥에 관심을 두기보다, 그들의 문화적 욕망을 억압·통제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즉 청소년 보호를 비롯한 각종 정책은 일제시대의 ‘훈육과 육성’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사회로부터 대상화(타자화)되어 격리,감시당하며 통제된다.

실제 청소년문제와 성적 표현물의 문제만이 자연스럽게 등치되는 어이없는 효과가 파생된다.

또한 청소년보호법과 그 이데올로기는 우리 삶과 사회 전체를 철저히 성인과 청소년(미성년)의 세계로 분리, 매우 작위적이고 새로운 대립관계로 구조화한다.

미성년과 성인, 학생과 교사, 자녀와 부모, 청소년과 일반시민 등의 이분법을 통해 주체의 문화적 욕망과는 무관한 상호적대적 충돌에 의한 사회적 고립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배계급의 직접적 개입과 통제없이도 피지배계급 내의 갈등을 자생적으로 생산,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즉 청소년 보호와 음란성이라는 지배권력의 ‘구별짓기’는 순수 이데올로기와 계몽주의의 포장을 통해 청소년들에게는 사회로부터의 통제와 권리박탈을 느끼게하고, 성인에게는 새로운 감시와 통제의 논리를 스스로 훈육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는 최근 인터넷에 대한 지배권력의 재구조화 과정에 있어 강력한 무기로 선택됐다.

인터넷에 대한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의 적용은 다시 다양한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인터넷 성인방송국을 비롯한 반사회사이트에 대한 마녀사냥에서 잘 드러나듯, 지배권력은 현실의 모순과 역설을 희미하게 하고 뿌리깊은 청소년 문제의 모든 원인을 인터넷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보다 “자살사이트가 죽음을 불렀다”고, “얼마나 위험한 사회인가”가 아닌 “폭탄사이트가 살인을 부추긴다”고, “자본주의의 성상품화가 심각하다”보다는 “인터넷성인방송국이 음란하다”고 사실을 숨기고 비약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통해 현실에 대한 지배권력의 책임과 모순을 자연스럽게 은폐하는 정치적 탈출구를 사회적으로 형성한다.

이제 청소년보호에는 눈꼽만큼도 관심 없던 자들이,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자들이, 청소년 보호라는 어설픈 잣대로 개인과 사회의 욕망을 검열하고 규제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더욱이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는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는 통신질서확립법에서 좌절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 대표되는 ‘관(官)중심 내용등급제’완성을 위한 포석에 불과하다.

인터넷내용등급제 그리고 이를 위해 왜곡, 확산되고 있는 지배권력의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는 청소년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대한 지배구조로 작동 중인 하나의 거대한 공리계이다.

따라서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에 대한 싸움은 개인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다.

비록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청소년보호법 위반 또는 음란범이라는 쪽팔린 죄명으로 잡혀간다 할지라도….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