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에 의한 정치수배자 실태

남과 북의 지도자가 만나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도 그들에게 이 사회는 창살없는 감옥이다.

오늘도 이 거리를 헤메이고,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없는 이들, 우리는 그들을 정치수배자라 부른다.

- ‘국가보안법 관련 정치수배 전면해제를 위한 대책위’홈페이지(free2000.jinbo.net) 중에서 - 지난 8일(목) 저녁 7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농성단’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국가보안법 완전철폐, 양심수 전면 석방, 정치수배 전면해제’를 주장하며 1월 18일부터 시작된 무기한 감옥 농성도 벌써 22일째. 천막농성을 시작했던 작년 5월부터는 거의 300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지금 이들은 모의 감옥을 설치해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일일감옥체험을 할 수 있게 하고 거리 선전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현재 최장기 수배자인 정치수배 해재 농성단장 진재영씨. 9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된 후 8년 째 정치수배중이다.

얼마 전에는 그의 어머님이 청와대에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김대중 대통령께 올립니다’라는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정치수배자가 그렇듯 그도 국가보안법 제 7조 ‘찬양·고무 혐의 및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 위반혐의’로 쫓기는 몸이 됐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 학내에 분향소를 차린 것이 문제가 됐죠. 아무리 원수래도 죽음 앞에서는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인간사 아닙니까.” 가진 돈이라곤 달랑 50원이 전부여서 지하철조차 탈 수 없을 때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기막혀 ‘그냥, 잡혀가 버릴까’라는 생각도 했다는 진씨. 지금껏 자신을 기다린 애인은 직장까지 찾아오는 형사들 때문에 몇 번이고 일자리를 옮겨야 했고 결국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명절이 그의 가족들에게는 더 슬픈 날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현재 국가보안법에 의한 정치수배자는 223명(94∼2000년)에 이른다.

한총련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된 97년 이후, 전국 각 대학에서는 매년 상당수의 정치수배자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대학의 총학생회 간부나 단대학생회장 등으로 선출되면 한총련 대의원 자격이 주어지는데 한총련 소속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이적단체 가입협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사무처장 김기창씨는 “학생회는 전적으로 학생들의 자주적 조직”이라며 “학생들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간부를 무조건 정치수배자로 모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고무·찬양·선전’등의 모호한 개념은 양심세력을 탄압하는 데 악용됐다는 점을 들어 “보안법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법적 장치”라고 했다.

제정 이래 53년 간 ‘정권안보법’으로 국민의 사상·양심, 표현의 자유를 구속했던 국가보안법. 그 속에 포함된 인권침해적 요소나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은 계속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국가보안법 개·폐정을 둘러싼 논란이 어느 때 보다 뜨거운 요즘도 여전히 수많은 청년들은 체포의 위협속에 젊음을 유배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아까운 열정과 꿈을 펼칠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이현실 기자 rulurala@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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