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장에서 국가화합의 장으로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forum)이란 일본, 미국, 동남아시아국가 등 18개 환태평양 국가로 구성된 경제협렵체계를 일컫는다.

유럽연합(EU)등의 경제블록화에 대항하기 위해 1989년 11월 호주의 캔바라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지역 12개국이 참가한 각료회담이 그 효시이다.

이후 클린튼 미 대통령의 제안으로 각료회담은 정상회담으로 격상되어 93년 11월에 최초의 APEC정상회담이 미국 시애틀에서 열렸다.

금년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오사카에서 열린 제 7차 회의는 규모면에서 18개국 정부의 고위급이 모인 최대의 국제회의였다.

미국이 APEC강화를 제창한 배경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아시아지역에 동아시아경제권을 중심으로 지역통합의 움직임이 확산하자, 미국이 여기서 배제당할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세계인구의 약 4할, 세계 총GDP의 약 5할, 총무역의 약 4할을 차지하는 APEC은 누구도 놓치기 싫은 시장이며, 이 시장을 둘러싼 선진국들의 각축전은 지속될 것이다.

당초 완만한 지역협력체로 출발한 APEC은 바야흐로 제도화되어 중추신경적 기능까지 갖춘 복잡한 조직으로 변모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APEC이 경제기구의 영역을 넘어 정치기구의 성격까지 띠고 있다는 점이다.

금번 오사카 APEC 각료회담의 목적은 인도네시아 제 2차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보고르 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지침(action agenda)응 확정하는데 있었다.

보고르 선언의 골자는 “선진국은 2010년까지, 개도국은 2020년까지 역내 투자 및 무역 자유화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행동지침에 의하면, APEC은 96년 중 행동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에 의거 96년 11월까지 자유화일정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으며, 각국이 제출한 일정에 따라 회원국은 오는 97년부터 자유화조치를 하나씩 시행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사카 각료회의에서는 행동지침의 일반원칙이 정해졌는데, 그 요체는 자유화대상에 예외가 없다는 포괄성을 인정하되, 형평성·무차별성 및 유연성등도 아울러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번 원칙 설정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농업부문 자유화에 유연성의 원칙을 채택한 데 있다.

즉 한국, 대만 , 일본처럼 쌀문제를 가진 나라는 포괄성 원칙을 인정하지만, 나라별로 특수한 상황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여, 결국 각국의 발전수준과 상황의 다양성을 고려해 자유화를 신축성 있게 추진하자는 안이 채택되었다.

특히 금번 회의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보고르 선언이 미국의 주도로 진행되면서 획일적, 강압 적인 가운데 전면 자유화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반면, 이번에 채택된 행동지침은 서두르지 않고, 강제적이 아닌, 자주적 자유화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행동지침의 채택배경은 미국의 일방적 주도에 대한 아시아국가의 강한 불만과 동남아시아국가의 경제성장에 따른 자신감 확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APEC에서 지속적 고도성장으로 자신감을 지닌 ASEAN회원국의 발언권 증대현상에서 기인한다.

향후, 미국의 주도권 재장악 노력과 결속력과 발언권이 증대해 가는 동남아 각국간의 대립구조가 96년의 마닐라회의에서 첨예화될 소지가 크다.

또 하나의 특징은 동남아에 다국적 기업을 상당수 보유하게 된 일본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동남아 각국 정부관료를 상대로 연수를 제공하는 등 미국으로부터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일본늬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과거의 투자·무역에 관한 논점처리에서 벗어나 아시아 국가간의 화합의 장으로 에너지 문제까지 논의하는 등 대화의 폭도 넓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APEC이유럽연합(EU) 또는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와 같은 차별적인 경제블럭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창설 초기부터 계속되어 왔다.

이것은 APEC회원국가가 지역적으로 밀집되어 있지 않고, 타경제블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차별적인 경제블럭을 형성한다면, 역외국가들 특히 유럽국가가 우르과이 라운드와 같은 전세계적 협상을 요구할 것이며, 이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APEC은 규모면에서 최대급 회의인만큼 ASEAN국가 중심의 소규묘 조직을 갖춘 경우에 비해 정치적인 면은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APEC내에서의 교역자유화는 대외무역량 중 70%를 APEC 회원국과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PEC이 차별적인 경제블럭을 형성하지 못할 경우 우리가 APEC내의 무역자유화 요구(특히 농업부문)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무런 보장없이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97년 1월부터 착수될 자유화 조치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전제하에 APEC과 같은 다자간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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