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4일 나는 광화문의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의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전시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사진에 있는 이 여성들의 나체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여성의 신체를 가학적으로 표현했다고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그의 작품을 보고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젊은 페미니스트 작가들에 의해 안티-아라키 작품전이 3월2일(일)까지 홍대 앞에 있는 카페에서 열린다고 해서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바로 접었다.

과연 이 두 전시회에 차이가 존재할까? 그 사진전시 역시 여성의 눈이라는 특정한 시각을 갖고서 예술 작품 안에 있는 대상으로 여성을 바라본 것 아닌가. 결국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이나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이나 생각과 표현 방법의 차이이지 두 가지 모두 여성을 예술의 소재로 삼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사회의 전반적인 시각이 남성중심적이었고 여성은 약자의 입장에서 남성중심적인 활동에 유희거리였을 뿐이었다는 점에서, 가학적으로 그려진 여성의 나체 사진이 사회에 깊게 자리잡은 잘못된 시각에 거름을 주는 행위라는 우려 때문에 반대 시위를 열고 있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하지만 전시회를 이해하는 데 한가지 주목을 해야 할 점이 바로 이 전시회의 주제이다.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라는 주제는 서울과 도쿄가 작가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지는가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갖고 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 속에 여성의 나체는 결국 작가 자신이, 혹은 동양 문화권 남성 전체가 갖고 있던 권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모습, 즉 세상에 적응하려 스스로 감추고 있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남성에서 인간으로 자유로워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가 표현한 가학적인 상황의 표현이 여성을 누르는 사회의 관념들이라면, 거기에 여성은 순수한 나체의 모습으로 나선다.

여성과 남성이 결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사진을 찍는 이와 찍히는 이로 공존하면서 그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서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속해있거나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의 모습에서 정면을 바라본다.

또한 그러한 역할은 정해져 있다고도, 혹은 아니라고도 확정할 수는 없다.

이런 면에서 안티-아라키 사진전시는 선을 긋기 어려운 예술과 도덕이라는 두 범주를 ‘여성의 시각’이라는 이름에서 자의적으로 심판하려는 용감한 의미를 갖고 있다.

‘안티-’를 붙일만큼 예술은 좁지 않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