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의 [나의 세기]를 읽고

9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의 [나의 세기]를 읽고 1999년은 독일인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안겨준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괴테 탄생 250주년,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축하하던 중에 귄터 그라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하인리히 뵐 등에 이어 그라스는 독일에 아홉번째 노벨 문학상을 안겨주었다.

1927년에 태어나 2차대전시 전쟁에 참가해 미군의 포로가 되기도 한 그ㅏ스의 가장 큰 특징은 기발하고 독창적인 문학장품 창작과 정치적 참여가 그에게서 똑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기발함은 그의 대표작으로 "악동소설" 혹은 "예술가 소설"로 분류되곤 하는 [양철북](1959)에서 잘 드러난다.

올해 7월 72세라는 고령의9실제 그는 너무나 젊어서 이 말을 쓴 것이 매우 어색하다) 그라스가 출간한 [나의 세기]는 10월에 그가 수상한 노벨상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이 작품 또한 작가의 시대사와의 치열한 대결의 소산으로, 그의 전 작품에 내정된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있는 그라스 문학의 결산이다.

이미 30여개국에서 번역되었거나 번역중인 이 작품을 1900년에서 1999년까지 100년을 매년 한가지씩 100개의 이야기로 구성돼있다.

그라스는 이 세기를 마감하면서 총 결산을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원래 소설을 기획했으나 하나의 이야기로 묶기엔 이 세기가 너무나도 모순으로 가득 찬 파란만장한 시기였기에 의도를 바꿨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는 한 젊은 역사학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자신은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스케치와 수채화로 그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조각가이자 화가이기도 한 그라스가 그림을 먼저 그려 놓고 그 옆에 텍스트를 쓰는 아주 독특한 복합장르의 성격을 띠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글을 쓸때에도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순차적으로 썼으며 따라서 이 역사의 흐름이 창작과정에도 반영됐다는 점이다.

그라스의 작품은 작가의 분신 혹은 창조물로 볼 수 있는 화자들이 등장해 각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작소설 형태를 띠고 있다.

군인, 시인, 교수, 사업가 기자, 가정주부, 성직자, 소시민 등 다양한 성격, 계층의 화자들은 역사의 가해자나 피해자, 혹은 동조자들로서 그들 나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라스가 소시민적인 개인의 시각에서 글을 서술하는 것은 그가 역사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을 용남하고자 하지 않듯이 또한 역사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따라서 엄청난 과제를 독자에게 부여한다.

순수하고 서정적인 회상 장면이 있는가 하면, 알레고리와 아이러니, 해학, 풍자 등이 교차되는 등 각 장의 의도가 반드시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며 곳곳에 숨어있는 역설을 읽어내는 것도 독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소설 속 등장하는 주제도 다채로와서 정치, 사회적 사건, 문학, 스포츠, 음악, 학술 등 인간 삶의 온갖 부문이 쟁점화돼 비판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 전쟁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첫장은 1900년 의화단 사건 시 중국에 파명된 독일 병사가 빌헬름 2세의 파병연설을 회상하는데에서 시작된다.

이 병사는 천안문 광장에서 처형되는 변발한 중국인들 이야기를 하며 "그러나 나는 약혼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런 소름끼치는 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쓰지 않고 1900년을 축하하는 중국식 계란과 찐만두 얘기만 했다"고 보고한다.

여기서 독자는 끔직한 살육장면을 상상하면서도 동시에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로테스크한 역사를 그로테스크하게 들려주는 내용과 형식의 일치랄까. 그리고 마지막 장은 103살 생일 잔치를 맞는 작가의 어머니의 목소리로 되어 있다.

여기서 그라스는 이미 58살에 죽은 어머니를 되살려 자기 가족사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가족사에도 나치 시절 전쟁중에 죽은 외삼촌들의 이야기가 끼어 있다.

한 외삼촌은 그림을, 한 외삼촌은 시를 썼으며 그라스의 글과 그림 재능은 그들을 닮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끝 구절은 어머니의 기원으로 되어 있다.

"제발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요...저 아래쪽에서 그리고 온 세상에서 말이에요..."비록 그라스 자신은 정치적 투쟁은 평범한 시민과 마찬가지로 길거리에서 하고 작가로서 창작을 할 때는 언어와 문학성만을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서는 그의 노벨상을 "참여문학의 승리"라고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70년대말 독일 유학시절 나는 괴팅엔 대학에서 강의 시간에 귄터 그라스의 낭송을 듣고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모습돠 목소리고 티비에서와 너무 똑같아서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당시 내게 그는 하인리히 뵐과 더불어 독일의 용기와 양심의 대명사여씩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인간 그라스"는 독일의 보수세력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이다.

그는 막강해질 독일을 염려해 민족통일을 반대했는가 하면 통독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그치지 않는다.

정치.종교적 박해를 받는 작가들을 위해 국제적 연대 운동을 펼쳐 김지하, 황석영씨 등을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인 바 있으며 쿠르드인들의 망명권을 거부하는 독일정부를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발언으로 온 독일을 찬반논쟁으로 들끊게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용기와 민족을 초월하는 세계시민성이 그를 국제적인 작가로 만드는 동시에 독일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특해 20세기 독일역사의 "공번자"임을 천명하는 그가 자신을 시지푸스에 비교하는 것은 괄목할 만하다.

그는 현대판 시지푸스는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매일같이 바위를 굴리며 산을 올라가고, 신에게 제발 내 며리를 빼앗아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고 말한다.

그라스에게 있어 그의 바위가 상징하는 것은 독일과 금세기의 역사이다.

[양철북]을 쓴 이래로 모든 소설들이 그랬듯 [나의 세기]또한 그가 바위를 굴리는 과정에서 얻은 또 하나의 산물일 뿐이리라. 그리고 그가 현대인들에게 각자 자신의 시지푸스의 바위를 사랑하리라고 외치는 것은 역사를 망각해선 안된다는 호소이리라. 얼마전 어떻게 2000년을 맞을 것인가하는 질문에 그라스는 친구들과 아이들과 함께 맞을거랴고 답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춤을 추며 새 천년으로 미끄러져 가고 싶다고. 여기서 우리도 어떻게 2000년을 맞을 것인가 자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책으로 벽을 메우고 우리 작가들의 진솔한 한마디에 온 국민이 들끊는 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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