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와 대학문화-①문화정책과 지역문화운동

6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 물질적 필요는 어느정도 충족됐지만, 불행히도 경제우선적 존재방식은 획일화·거대화·관리화된 사회를 만들어내고 공해를 가져오게 했다.

80년대 이후부터는 이에 대한 반성과 맞물리면서 물질 이상으로 마음의 여유와 개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가시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경제나 문화를 대항적으로 설정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이제까지 경제 편중적 사고가 우리로 하여금 문화를 있으나마나한 것, 사적인 것, 장식적인 것으로 여기게끔 만든 것을 반성하고 문화를 시민생활에서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잘 살아보세’라는 외침이 단순한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 좀더 전인적인 성숙을 뜻할 수 있도록 문화를 ‘목표’로 삼고 경제를 이런한 목표의 달성을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다.

자유시간의 증대 등 현대사회로 들어와 다소간 생활의 여유가 생겨나면서, 문화 퇴폐현상과 함께 미미하나마 취미와 학습활동 등 생활의 충실,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문화활동에 대한 여러가지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문화란 이와 같은 욕구를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몸담고 살아가는 지역의 일종의 운동적 성격을 띠고 있다.

문화시대를 명실상부하게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경제·문화의 여러 영역에 걸쳐, 이제까지의 중앙집권체제로부터 지방을 중시하는 분권체제로의 전환이 불가결하다.

서울의 경우에도 광역자치단체로서의 서울특별시와 기초자치단체로서의 각 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동네에 이르기까지 지역적 특성을 주민들의 직접적인 필요와 조화시키면서 살려나가야 한다.

또한 이제까지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이고 대국민홍보사업적인 성격을 가진 문화정책을 시민이 행정시책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입장보다는 서로 도와가며 활동하는 능동적인 입장에서 각자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화인식과 실천적인 문화논의를 촉진시켜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행정적인 문화정책의 역할은 이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정도로 제한되어야 바람직하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행정은 시민주체의 ‘종합행정’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같은 맥락에서 문화행정의 영역도 이제까지처럼 예술을 중심으로 한 좁은 의미의 문화개념을 떠나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체의 노력을 진작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생활문화’라는 영역을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로 의식주 생활과 연관되지만, 오늘날 이 영역 역시 그것이 본래 충족시켜왔던 1차적 필요의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해가면서 질적인 향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영역확장과 함께 우리는 지역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간의 교류를 목표로 삼는 ‘과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들의 취미나 교양을 높여주려는 활동들도 결코 지역문화와 별개의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역문화의 진흥은 오히려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 하나보다 훨씬 더 지역 전반의 민주적 발전과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그 활동내용들 역시 공동체성을 신장한다는 공동목표아래 조정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교류촉진을 위해서는 해당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인력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전문성 못지 않게 사람들과 기꺼이 ‘더불어’일하고자 하는 품성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활동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심층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이른바 문화촉매운동요원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그와 같은 인력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될때, 그는 주어진 여건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고, 여건자체도 적극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를 매개로 한 인적교류는 또한 국경을 넘어서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수준으로까지 진행되어야 한다.

경제협력과 문화관광, 그리고 민박을 포함한 시민이 주체가 되어 만든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나라의 지역 주민들이 중앙정부를 거치지 않고도 좀더 빈번하게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정부가 내세우는 세계화는 의외의 부분에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문화행정이 이처럼 지역성과 개성을 중시한다면, 공평성과 효율성을 존중하는 행정의 원칙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몇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이 때 우리는 이제까지의 행정이경제효율을 강력하게 추구해 오면서, 획일적인 지침을 강요함으로써 그 전개가 날로 둔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지역성과 미관성, 개인의 개성과 창조성, 더 나아가 시민감각을 중시하는 태도를 행정시책속에 짜 넣어가는 문화행정만이 ‘행정의 문화화’를 추진할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이다.

지역과 인간의 특성을 고르게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그 지역과 개인에게 가장 큰 효과를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이와 같이 이해되는 행정이야 말로 공평성과 효율성을 가장 높은 정도로 보장해주지 않을까? 기계적, 고정적인 공평성과 효율성은 결국 양자 모두를 제대로 획득할 수 없을 뿐더러 종합성마저 잃고 만다.

종합성을 확보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른바 제3섹터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지역개발과 도시형성의 주체로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기업의 공동출자 등에 의해 설립된 사업체를 지칭하는데, 문화활동을 넓혀가기 위해서도 이와 비슷한 방법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문화재단과 문화기금 등의 제3섹터를 구상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제3섹터가 퇴직공무원 등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그 본래 취지가 가려질 염려도 없지 않다.

그렇기에 행정쪽에서는 세계적인 문화정책의 대강, 즉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한편, 문화적 투자는 일반경비지출과는 달리 수익성을 위한 경제행위가 아님을 언제나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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