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동산 지난 가을, 나는 오랫만에 학교엘 갔었다.

새로 지었다는 박물관에 들러보고 깜작 놀랐다.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멋진 박물관에 학생이 없다? 전시물품을 보러온게 아니라 단풍든 나뭇잎이 시나브로지는 이층 로비에서 자판기 커피라도 마시며 분위기를 즐기는 그런 학생이 단 한명도 없다니? 휴강때나 공강이 생기면 달려가던 30년 전 박물관이 떠올랐다.

후문의 문리대에서 동쪽 언덕의 미술대학 있는 곳까지는 그렇게 멀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다니곤 했다.

남모르는 옹달샘 하나를 발견하고 목마를 때마나 그 곳으로 달려가 목을 축이듯 고미술품에 대한 갈증을 풀곤했다.

그리운 곳이 또 있다.

마음이 곤궁해지거나 사람의 일로 염증이 날때면 오드리 햅번이 ‘녹색의 정원’을 찾아가듯 학교 뒷산의 숲으로 스며들곤 하였다.

지금은 그 곳을 ‘팔복동산’이라 부른다던가. 이 숲에는 여고생 때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뽑혀 모두들 나를 찾는 줄도 모르고, 비에 젖으며 시골학생의 열등감에 떨었던 추억도 있다.

그 때 숲이 내게 귀뜸해주었다.

‘반짝이고 싶거든 내 안에서 빛을 모아라’라고. 도서관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다.

봄에는 아카시아꽃 향기, 여름에는 짙푸른 갈매빛 살랑거림, 가을에는 도토리나 알밤을 입안 가득 물어나르는 양볼통통한 다람쥐를. 책에는 없는, 교수님들에게서는 배우지 못하는 자연의 경이와 섭리를 나는 숲에서 배웠다.

깨어진 첫사람의 속내를 털어놓아도 소문 내지않고 말없이 덮어주는 이런 곳을 지금 나의 후배들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싱그러운 숲이 소박맞고 있다니. 내 후배들은 어디를 헤매고 있단 말인가. 궁금했다.

학교앞 옷가게를 전전하고 다방에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 저 아이들이 모두 내 후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비록 어리지만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날을 준비하는데 게으르지 않으며, 자유분방해보이나 인생을 요행수가 아니라 땀방을에 거는 건강인들이라고 나는 믿고 자랑하고 싶다.

박물관 벌써 95년 가을이 넘어가고 있다.

대학생활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드는 이 즈음 모든게 아쉽기만 하지만, 그 중 작년에 우연한 기회로 가게된 ‘발안발굴’이 가장 소중하고 자랑스런 추억이다.

사학과를 다닌다지만 박물관에 가도, 좋다는 것만 들여다 보고 올 뿐인데, 직접 내가 흙 속에서 꺼낸 작은 항아리 조각을 보고 온 후에는 진정 내가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학기 ‘박물관 근로’를 신청했다.

우리학교에서 제일 최근에 지어진 건물, 그래서 화장실이 좋은 건물, 등하교길에 지나치던 그 박물관에서 나는 많은 것을 찾아냈다.

우선 우리가 흔히 ‘마징가 건물’이라고 부르는 이 박물관은 조감도에서 보면, 마징가 모양이 아니라 ‘배꽃’모양이라는 것, 우리학교 박물관의 백자는 아주 유명해 타지에서도 이것을 보려고 사람들이 온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기만 한 이곳은 사실 해마다 개교 기념일에 맞추어 특별전을 준비하고, 항상 아침 10시부터 오후4시까지는 문을 열어놓고 방문객을 기다린다.

잘은 모르지만 소장품도 국내 박물관중 손으로 꼽힌다고 한다.

특히 백자에 있어서는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부터 조선시대 백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소장하고 있다.

근로 시간에 박물관에 있어보면, 학생들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관계기관이나 소문을 통해 듣고 오는 경우가 더 많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휴관인 줄도 모르고 그 앞을 서성이는 일본인 교환학생들을 본 적이 있다.

먼저 유명한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그 나라 문화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을 보며 나는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잠깐 한국에 들리는 외국인들보다 우리것에 대해 더 무관심한 한국인, 학교 안에 버젓한 박물관을 두고도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리는 우리. 그냥 앉아서 죽이는 시간과 공강 시간, 하교길에 잠깐 박물관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공간에 한 번 들어와 봄이 어떨까. 우리의 작은 관심으로 박물관은 ‘숨을 멈추어 버린 박재된 물건들의 집합소’라는 이미지를 벗고, 우리와 함께 숨쉬는 열린 공간으로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이라는 장소는 한정되고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뻗어가는 공간이다.

그것은 고여있는 곳이 아니라 지나치고 변화하는 곳이며, 목적지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계속 변화하고 바뀌는 표정있는 공간이다.

계절에 따라 사회에 따라 사상에 따라 길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화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이화의 길은 이화인들의 표정이 나타나는 공간이다.

각 길마다 각기 다른 이화의 생각들이 배어 있지만, 그 어느 장소보다 ‘이화인의 길’이라고 부를만한 장소가 바로 ‘휴웃길’이다.

이화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우선 교정 바깥고 안쪽을 이어주는 공간으로서 외부 사회와 연관을 가지는 공간이다.

위치적으로 휴웃길은 이화의 중심교정에 들어가려 할때 만나게 되는 세갈래 길 중의 하나이다.

즉 학원 내부와 외부를 연결시켜주는 공간이다.

이는 사상적으로도 그러하다.

수많은 대자보들, 기획물들, 플랜카드들이 이화의 생각과 사상을 뿜어내고 있다.

학원은 근본적으로 가지는 ‘학습’기능으로 인해 사회, 역사적 상황들로부터 무관하려는 매너리즘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런 우려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 곳이 이곳이다.

위치적 연경 역할에서 연결점으로 훌륭히 전화되어 살아있는 이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에 대한 이화인들의 생각 그리고 그 대안들이 사회와 이화의 관계를 집약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여지도 준다.

‘사람들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차들이 들어올 여지가 없이 이화를 찾느 사람들만 들어가는 곳이다.

번접함없이 뛰고, 걷고, 잠시 멈취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인간적인 면이 깊은 ‘생각들’과 결부되어 ‘살아있는 길’로 만들어진다.

또한 교정의 입구인 교문에서부터 교정내부로 죽 뻗어 이어진 길이 아니라 이화광장을 한걸음 거친 길이기에, ‘생각’들이 보여주는 적극성과 영향력은 덜하지만 오히려 상업적인 사회상에서 더욱 자유로와 보인다.

학원 강좌, 토플 수강등의 선전물들이 판을 치기에는 광장에서 정화된 너무나 순수한 공간이다.

그리고 좀 더 덧붙이자면 이길은 이화 중심부로 향해 있으면 적당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본관과 기숙사, 학생관 등 이화의 중심부를 향하고 있고, 그런 이유로 어디로든 통해갈 수 있는 확장된 길이다.

그렇지만 중심축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거대한 모양새가 아니다.

적당히 넓고 적당히 길며 적당히 완만하다.

숨이 벅차거나 위압감에 눌릴 필요가 없는 길이다.

그래서 많은 이화인들이 아끼는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완만하지만 사회적 긴장과 사상이 살아넘치고 자본의 지저분함에 이용당하지 않는 순수함을 지닌 휴웃길. 그러나 최근 이곳에 상업적 선전물들이 많이 붙여지고, 사회로 열린 생각들이 이화인 자신들에게 무시당하는 등 휴웃길이 조금씩 오염되고 있다.

휴웃길의 오염은 이화의 오염을 그리고 이화의 표정이 우울하게 변해감을 보여준다.

휴웃길의 의미를 살려내고, 적극적으로 살아있는 이화의 모습이 휴웃길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발전적으로 전개되어야 하겠다.

작지만 큰 이곳이 이화의 사회적 언어들로 가득 넘쳐나고 그것이 이화 전체로 파급되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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