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6일(화) 이대학보 712호, 3면에는 『신문에게 보내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신방과 4학년 송경희씨가 작성한 기사가 실려있다.

신문의 날(4월7일)을 맞이해 당시 사회에서 우리 신문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신문인은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대학인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이 란을 마련했다고 한다.

신문의 날은 한국 최초의 순한글 된 민간신문이며 독립협회 기관지인 <독립신문>으로 서재필·윤치호가 1896년 4월 7일에 창간했고, 195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결성되면서 <독립신문> 창간 61년을 기해 신문의 날로 제정됐다.

당시 필자였던 송경희씨는 일본 외무성의 비밀자금을 얻어 국내에서 <한성신보>와 <인천경성격주상보>라는 일인지를 국내에서 발간하고 있었지만,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등의 격동기에 국민의 권리 옹호·보도와 논평의 공정과 성실·신문으로서의 독립성 등을 내세우며 창간되었던 <독립신문>의 역사적 의의를 중시하였다.

이어서 1982년 당시 정세와 관련하여 모든 사람의 권리 옹호와 모든 사람들의 신문으로, 신문 자체의 독립성에 대한 의의를 내세우며 신문경영주들이 자사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희생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신문이 ‘사회의 거울’이듯이, 대학신문이 ‘대학의 거울’임을 내세우며 전대학인의 신문이어야 한다고 했다.

독자로부터 이해와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학교행정에 학생들의 의견이 폭넓게 반영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대학신문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과 문화창달과 전승의 담당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학교 역사의 기록보존과 학생들의 창작활동을 촉매하고, 고발정신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대학신문의 역할을 당부했다.

그리고 미래의 의미를 되새기는 진실을 촉구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당시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꿈꾸는 역사와 살아 숨쉬어야 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열망으로 신문의 사회적 소중함을 일깨우는 송경희씨 나름대로 신문에 대한, 대학신문에 대한 독자의 사랑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독자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신문인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를 하였고 ‘언론의 자유’를 외칠 수 있는 기반이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의 이대학보는 그런 사랑 속에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84년 4월 2일 이대학보 763호, 7면에는 『학부는 한 부씩만』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을 때도 있었다.

당시 학보사 기자들이 정문이나 후문, 학보 옆에 서서 “한 장만 가져가세요! 2장을 가지면 뒤에 오는 사람은 볼 수가 없어요”라고 외칠 때가 있었다.

학생들은 우리 학보를 보내서 자랑하고 싶기도 했으며 때로는 대학의 진실한 목소리들을 서로 나누기 위해 학보를 두세 장씩 가져다 친구며 친지, 지방에 계시던 부모님께 부쳐주느라 학교에 늦게 오는 사람은 학보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매체와 빠른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옛 시절에 신문 글자 하나 하나와 행간 한 줄 한 줄에 감춰진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독자들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이대학보는 1954년에 창간하여 올해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난 간 일에 대하여 그 업적을 평가하고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난날 고난의 역사에서 보이지 않게 학보를 사랑하며 함께 싸웠던 많은 이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평범한 독자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이 가장 필요하다.

다양한 소통의 場으로 신뢰와 사랑을 얻고 있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신문의 날’을 맞이하여 되새겨 볼 일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