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지난 3월 22일, 모 인터넷 신문에 "한 장 사진 속에 미국의 오만함이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기록 사진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기사에 실린 사진이다.

“부산 1951년 6월.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이기붕이 미국 측 인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오른쪽부터 무초 주한 미국대사, 이기붕의 아내 박마리아, 콜트 장군 순으로 앉아 있다.

방문 밖에는 당시 이화여대생들이 신발을 신은 미국 인사들 앞에서 양말차림으로 팝송을 부르는 모습이 이채롭다.

....” 위의 기사에서 조금 벗어나, 사진 속에 노래하고 있는 여학생들한테로 눈을 돌리자면, 이 한 장의 기록사진 속에는 당시 사회 속에 여성들, 특히 당시 엘리트 여성이었던 이대생들이 주는 이미지와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혹은 남성의) 시선이 여실히 담겨 있다.

조신한 모습의 저들은 소규모의 청중을 향하여 나란히 서서 하얀 양말을 곱게 신고 노래를 부른다.

. 마치 곁에 두면 보기 좋은 하나의 볼거리와도 같이, 노래나 부르며 자신들의 기분을 맞춰주고 수발을 들어주라고 불러둔 기생들과 같이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는 저 학생들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사진 속의 장면을 단지 우연한 어느 한 때의 행사성 자리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깊게 보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라는 이름의 사회 병폐의 직접적인 한 단면이다.

그것들은 언제나 사람들 마음 속에 기생하여 자라나면서도 단지 날마다의 일상 속에서 시시각각 그 엄청난 변장술로 겉모습을 바꾸어 가기 때문에 더욱 교묘하고 위험하다.

지금 시대가 어떤 때인데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이런 낡아빠진 사진 한 장을 갖고 골치 아프게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느냐고 할는지도 모르겠지만 냉철히 바라보았을 때 위 사진 속 장면은 현재에도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과 똑같은 한 사람으로 태어나 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심하게는 위 사진과 같은, 혹은 그와 비슷하지만 정도의 차이를 달리하는 갖가지 일상 속의 차별들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때때로 우리 여성들은 위 사진처럼 그저 남자들이 즐기기 위해 모인 이 자리에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불려가 한쪽에서 노래나 불러야 하는 신세가 되어야 하는 수도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이대생이므로 여기서 더욱이 한가지 더 의문이 드는 것은, 왜 하필이면 이 사진 속 사람들은 많고 많은 당대의 여자들 중에 이화여자대학생들을 불러다가 문지방에 세워두고 노래를 시켰을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 때 이화여자대학교라는 그 이름이 이 평범해 보이는 학생들에게 주는 이미지가 무엇이 길래, 이화여자대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 하길래 이런 자리에 난데없이 저들이 불려가 있느냐는 말이다.

혹시나 저 여학생들이 성악과라면 또 모를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웬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거기에는 분명히 복잡하고도 단순한 남자들의 어떤 심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화의 이미지가 저렇게까지 저급하게 사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자와 이대생들에 관한 대부분의 것은 사회 전체에 걸쳐 깊숙이 퍼져 있는 사람들의 욕망이며 사회가 심어 놓은 이미지일 뿐이다.

그리고 이때의 욕망과 이미지는 둘 다 실체가 없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와 상관없이 떠도는 텅 빈 껍데기와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실체와 현상들 뒤에는 언제나 외부로부터 그것들을 바라보는 이미지가 생겨나게 마련이지만, 이 경우에 진실을 왜곡하고 압도해 버리는 이런 이미지들은 당연히 없어져야 마땅하다.

하물며 우리 자신들부터가 그런 이미지 속에 안주한다거나 새로운 어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꾸며낼 필요는 전혀 없으며, 그건 우리들 스스로도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오히려 이화라는 이름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또,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은, 그 쓸데없는 환영과 싸워 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고 개개인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저 불합리한 차별과 우리들 각자를 억압하고 있는 이미지의 씨앗들이 어떻게 하면 깨끗이 거두어 질 수 있을지...지금도 여전히 밖에서 이화를 바라보고 있는 눈은 저 사진에서 만큼이나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거대한 세상을 향해 조금씩 달라지는 시각으로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키워간다는 그 자체가 웬지 사람들 사이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싸움이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찌 보면 아예 처음부터 차별을 목격한(당한) 한쪽 편은 소리내어 당당히 맞설 기회조차 가질 수 없이 묻혀버리게끔 설정된 무언의 범죄 극 같기도 하다.

물론 위 사진 속 사람들은 앉아 있는 자들이나, 서 있는 자들이나 다들 별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 불려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저 여학생들이 가엾고, 개 중에 더러는 혹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기꺼이 그 부름에 응했을까봐, 혹은 불만에 가득 찼을지 모르는 어느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진심을 말하는 대신에 어쩔 수없이 웃으며 반갑게 노래를 불러야만 했었다는 사실에, 시대의 벽을 훌쩍 넘어 솟아나는 나의 애통함을 그들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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