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의 세 주인공을 중심,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 "다모"는, "생이별한 오누이",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란 다소 신파적, 식상한 구도에도 불구, 대단한 반향을 낳았다.

그것은 흑과 백. 소위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뚜렷한 양자대립이 존재하면서도 그 선과 악의 경계가 상황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 나아가 추구하는 삶의 행태는 달라도 그들이 위하는 대상, 그 "무엇"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대사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최첨단의 사회, 비록 드라마 허구적 세계의 배경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즈음의 먼 과거로 비하될지도 모르나, 몇 백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감동의 물결은, 앞서의 그 "무엇". 바로 백성을 위한 소외계층 주인공들의 피땀이 이미 그 태생을 넘었기에 가능했다.

더욱이 민주주의의 절정에 이르렀다는 오늘, 역으로 더 "부조리해진 사회"에서 우리는"시민"을 위한 정치에 강한 갈증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판"은 그야말로 "정치놀음"이다.

하루는 고사하고 시시각각 변모하는 인심이, 이미 "소신"이란 말로 감당하기 힘든 약육강식의 밀림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세(勢)"를 불려야 살아남는다는 암묵적 질서가 경쟁세력에 대한 비방 아니면 폭로로 거듭되니, 그야말로 "공약"(公約)은 간데 없고 "공약"(空約)만 난무한다.

노 대통령 집권, 근 6개월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거대 야당이 "행정부 장관 퇴임" 수를 띄운 것도 실상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일개 지방 군수출신의 인사가 하루아침에 국가대사를 관장하는 부서의 "영수"가 되었다는 사실. 깜짝쇼냐 아니냐의 등용 배경부터 참으로 말이 많았다.

나름대로는 개방행정을 펼치겠다며 "행정의 인터넷 공개"를 도입한 김 장관. 그러나 자잘한 "소풍비 공개" 따위의 너무 여과없는 노출은 조회수 하루 두 건에도 못 미치는 "웃음거리"만 낳았을 뿐이다.

성과 없는 행정 전산화에 대한 야당의 질책에, 때마다 고성으로 대응한 점도 야권 "최, 홍"세력의 심사를 불편하게 했으리라는 추측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노 정권. 대 언론정책부터 시작, 값 모르고 뛰는 부동산 경기, 서투른 외교정책, 몇 십년을 추진해 온 간척사업의 백지화에 이어 심지어 전공분야라던 노사관계까지 뒤틀린 단계에서,이젠 "시간"문제가 아닌,"능력"문제가 운운되고 있다.

이쯤에서 여권 내부에서도 잘라낼 것은 잘라내 불만 세력을 잠재우고, 야권도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듯 하다.

노 대통령이 초기엔 방어와 감싸주기로 일관했지만 짐짓 해임안 처리 수용으로 돌아선 이유, 김 장관의 부족한 실무능력도 한 원인이거니와 자신의 분신 하나를 스스로 제거함으로써 살 방도를 모색했다는 가정이 유력하다.

첩첩산중, 진퇴양난의 형국에서 "길"을 트기 위한 분전,그 노력이 눈물겨울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 야 막론하고 해임안 처리과정에 끝없이 "국민"을 개입시켰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식의, 때마다의 상황에 기가막힌 쿵짝을 맞추는 "국민의 뜻"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리저리 춤추고 있다.

보다 중대한 사안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국회에서 장관 해임처리 하나에 목숨을 거는 이유, 보나마나 내년 "총선"을 앞둔 "세력다툼"이 분명하되, 그 진의를 숨긴 채 국민이란 단어를 도용하는 작태가 뻔뻔하기까지 하니, 국민이 없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앙꼬 없는 붕어빵"과 무엇이 다르랴.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하루를 반성하며 내일을 꿈꾸는 인간. 길고 숨찬 경쟁의 끝에서 명상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가깝지만 잊기 쉬운 나만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사람이 "정신의 핵" 이 없으면 살 수 없듯, 가슴에 품고 최상으로 생각해야 할 우리만의 "근본"은 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한 "나무의 뿌리"처럼 항상 깊고 흔들림이 없는 "근본"이라야 한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욕정과 탐욕의 세월을 거친 키에르케고르, "바로된 생"을 위해 노상 "죽음"을 맞서는 각오로 버텼다던 도스도예프스키, 모든 사물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만물탐구의 진리를 추구했던 사르트르 등, 이 위대한 철학자들의 일생은 "불변하는 가치, 근본된 정신의 핵"을 위한 끝없는 분투였다.

이 치열한 반성의 정신이 결핍된 분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윗분"들이 만고불변의 국가 최고의 근본인 국민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치열하게 반성하시라 목메어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프냐? "우리"도 아프다.

경제가 울고, 민심이 울고, 나라의 미래가 우는 지금. 무엇 하나 성한 곳없는 상처투성이 국가에서 오직 "정치"만이 과열된 이상징후를 보인다.

"김두관 행자부 장관의 해임처리" 자체가 문제겠는가. 쓱쓱 굴러가도 시원찮을 국가 발전이, 그 원동력인 정치가 병들었으니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모두 성할 리 없다.

사실 그 톱니 바퀴 하나를 갈아치운다고 대수겠는가. "근본적 치유 없이는 병도 낫지 않는 법". 국민을,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국민"을 우롱하며 썩어간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실업 청년 수가 역대 최고라는 한심지경에서 나랏님들의 각성을 바라는 우리의 바람, 지도자들의 변신 없이는 그야말로 "다모"식의 "아프다"만을 연발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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