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시사 평론가들이 지금 혼란스럽다고 한다.

신문들이 그렇게 문자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3·12 탄핵정국이 위법적·폭력적이라고 한다.

텔레비전이 그렇게 영상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1년이 야단스럽다고 한다.

걸러지지 않은 말들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상황은 모두 김대중·김영삼 정권으로부터의 결과라고 한다.

?반독재의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혼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의 지난 1년을 혼란으로 규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혼란스럽다고 한다면 그 잣대는 무엇일까?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하 박·전·노) 정권의 ‘법과 질서’일까? 이는 어떤 평론가도 부인할 것이다.

박·전·노 시대가 언론매체 공간에 그려 넣은 ‘안전성’일까? 이것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전·노 정권 때 많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었던 ‘위협감의 부재’일까? 이것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32년 간의 박·전·노 정권 시절에는 안보·경제·직장 등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살았다.

이 위협감의 부재는 정치나 역사가 추구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구성됐는가에 대해서는 필수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런 ‘위협감의 부재’ 기준에 따라 ‘혼란’으로 평가하는 것은 개인 의식에서만 의미를 찾는 데카르트 류의 의미론이라 할 것이다.

3·12 탄핵정국은 과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무원 중립 선거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이 야당의 표적이었다.

국회는 세세한 절차에 하자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법에 따른 표결을 했다.

그러나 탄핵 이후 야당은 여론의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다수결 절차를 따르면서도 탄핵 사유의 투명성에서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야당은 박·전·노 정권 시기나 일제 강점기의 ‘힘의 논리’로 밀어붙였다.

총선 전략으로서의 탄핵은 무리였다.

안정의 대들보로 보였던 힘의 정치는 이제 매력적이기 어렵다.

그러나 일부 정치가들의 무리한 언행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성숙한 참여를 통해 3·12 탄핵정국은 한국 사회의 발전 과정이 됐다.

다양한 현상들을 역사적 맥락 안에서 구조화해 보는 의미로서의 ‘과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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