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계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의‘동북공정(東北工程)’프로젝트다.

동북공정의 목적은 중국의 동북지역, 즉 과거 만주지역과 현재의 북한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9일(월) 고려대 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 최광식 교수(한국사학 전공)를 만나 동북공정에 대한 학계의 의견과 대응을 들어봤다.

­동북공정의 주요 내용은 =중국은 이전에도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평양 천도 전의 고구려사는 중국사, 평양 천도 후의 고구려사는 한국사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터무니 없는 말이다.

그러나 동북공정에서는 평양천도 이후의 고구려사까지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또 과거에는 일부 학자들만이 이런 주장을 했던데 반해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해석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라며 내세우는 근거는 크게 5개다.

첫째는 자국 역사에 등장하는 고이족·고양씨가 고주몽의 선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이족은 산동지방의 부족으로, 고구려 영토 쪽으로 이동했다는 증거가 없다.

고양씨는?기원전 2천 5백 년 등장하는 전설상의 인물이라 역사적인 인물로 보기 어렵고 고구려 건국 시기인 기원전 37년과는 2천여 년이나 차이가 난다.

?둘째로 당시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을 바쳤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조공 책봉은 종주국과 복속국의 관계를 규정짓는 것이 아닌 일종의 외교적 형식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학계의 공인된 의견이다.

셋째로 수·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나라 간 전쟁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권의 ‘통일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해 멸망했다.

또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국경선으로 천리장성을 세웠다.

중앙정권과 지방정권 사이에는 그런 강고한 성이 들어설 수 없다.

넷째로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의 유민들이 대부분 당나라로 끌려가 한반도에서 고구려의 혈연적 계승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민들은 그 지역에 그대로 남아 발해를 건국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와 고려가 계승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고구려의 왕족은 고씨, 고려의 왕족은 왕씨라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이 논리대로라면 성이 같은 왕조가 거의 없는 중국의 고대 국가들이야 말로 계승성이 없다.

또한 고구려와 고려 사이에 250년의 시간적 격차가 있다는 점을 드는데 역사적 계승성은 시간이 아닌 계승 의식의 유무에 따른 문제다.

가령 후백제의 경우 백제가 멸망한 지 200여 년 후 건국됐지만 백제를 계승했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후백제’로 칭했다.

­고구려를 우리나라 역사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를 보면 고구려는 「동이전」에 기록돼 있다.

중국은 자국의 역사는 「본기」에 서술하고 주변국의 역사는 「동이전」·「서융전」·「남만전」·「북적전」등의 외편에 서술했다.

이미 중국 스스로 자국이 아니라고 규정했다는 증거다.

또한 「동이전」에는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예의 무천 등 제천제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관념으로는 황제가 있는데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고구려가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역사와 풍습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다.

마지막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있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고려시대부터 고구려·백제·신라는 우리 역사에 속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에서 2001년 발간된 교과서에도 고구려는 한국사임을 인정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므로 그 이전의 사서에는 제대로 표기된 것이다.

­중국이 2002년 갑작스럽게 동북공정을 추진한 이유는 =2001년 북한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기구)에 평양의 고구려 고분 벽화의 등재를 신청했다.

이것이 승인되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유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관리 소홀·접근의 어려움 등을 트집잡아 보류시키고 바로 자국의 유적을 유네스코에 올렸다.

올 6월에 유네스코 총회가 열린다.

중국은 여기서 자국의 유적이 정식 등재되도록 힘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처 방안은 =평양성·장안성 등의 유적을 지원해 ‘역사도시 평양’이 등재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껏 이념 대립으로 고구려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위해서는 남북공조가 필요하다.

고구려사에 대한 책을 번역·출간하는 활동도 중요하다.

네티즌들의 홍보 활동도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최광식 교수는 “몽고족·여진족·만주족 등은 모두 족속만 남고 나라는 상실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독자적인 국가를 유지해 왔다”며 “국민 스스로 주체성과 자부심을 갖는 것이 우리 역사를 지키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고구려 연구센터’의 위원회 모임이 있다며 또다시 바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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