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는 나라와 나라간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여성과 남성의 정신적·육체적 경계도 뚜렷하지 않은 혼돈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이른바 지구화가 진행된 현 사회적 상황에서 젠더(gender)는 계급(class)·인종(race)과 함께 인간을 포함한 사회 및 학문 체계를 전체적으로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젠더는 섹스(sex)·섹슈얼리티(sexuality)와 함께 성을 정의하는 말이다.

섹스가 생물학적 구분으로서의 성이라면 젠더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점차 형성돼 가는 여성성 및 남성성을 뜻한다.

그리고 섹슈얼리티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성적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을 신체와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으로 아직 이 개념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다.

이 중 특히 젠더는 성 담론이 자유로워진 최근 문화적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열쇠로써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개방화되면서 전에 없던 ‘동성애 및 트랜스 젠더’문제, ‘성과 가족’문제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자 기존에 우리 사회가 공유했던 여성·남성다움은 해체되고, 젠더 연구에서는 이 현상을 사회 구조적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있다.

또한 젠더 연구는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지구화된 현 상황 하에서도 그간의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다시 고찰하고 있다.

지난 12일(목) 우리 학교에서 열린 젠더 연구 심포지엄에서 독일 훔볼트대 잉에 슈테판 교수(독어독문학 전공)가 발표한 ‘남성이 여성에 물의 요정 이미지를 씌워 여성을 신비화시키고 있다’는 가설이 동양 문화권에서도 확인되는 경우가 그 구체적 사례다.

‘한 인간이 여성·남성이 되는 과정을 권력 구조 안에서 살펴보는 것’을 의미하는 젠더 연구는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에서부터 공유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권력 구조란 일반적 의미의 권력이 아닌 일상 생활에서 집단과 개인간, 개인과 개인간 작용하는 미세한 힘이 빚어낸 현재 사회 구조 전반을 의미한다.

젠더 연구는 이 구조 속에서 한 인간이 언제 어떻게 여성·남성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살피면서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형성된 구조에 도전한다.

이 연구가 있기 전 여성은 항상 ‘남성 주도적인 억압 구조 내에서 약자인 존재’로 모든 여성이 동일하게 전제되는데 그쳐왔다.

그러나 젠더 연구가 진행되면서 모든 여성이 약자인 것은 아니며 여성 내부에도 차이와 갈등이 많이 관찰됐다.

지난 심포지엄에서 김은실 교수(여성학 전공)가 발표한 “기지촌 여성 내부에서도 필리핀 여성과 한국 여성이 서로 다른 위계 질서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례가 그것이다.

이같은 젠더 연구에 대해 우리 학교 한국여성연구원 김애령 연구원은 “여성학이 여성을 중심으로 했다면, 젠더 연구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그 권력 관계를 바라본다”며 “이는 젠더가 하나의 ‘관점’으로 작용해 기존의 것을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젠더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러한 젠더 연구는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의 불평등한 위치를 자각하고 더 나아가 왜 이러한 위치에 여성들이 놓이게 됐는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성과물이다.

한국여성연구원 김영옥 연구원은 “초창기 여성학이 여성운동적 측면에서 실천적 의제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각각의 현상보다 ‘구조’적 차원에서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러나 구조에만 치중하는 젠더 연구는 자칫 일상 생활에서 여성들이 부딪치는 문제 해결에 소홀할 수 있다”며 “전체 구조와 현실적 의제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운동과 여성학, 젠더 연구가 만난다”고 이들의 관계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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