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공동체의 양심, 시민불복종 시민운동에 정치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월10일(월) 경제정의실현을 위한 시민연대가 164명의 국회의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한 후 24일(월) 3백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총선시민연대가 66명의 공천반대 인사를 발표하면서 우리 나라 정치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예고학 있다.

시민단체들의 부적격 정치인 낙천·낙선운동이 단숨에 "시민 불복종" 반열에 오른 것이다.

시민불복종이란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화를 가져 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라 정의된다.

따라서 시민불복종문제는 어느 정도 정의로운 국가 내에서 그 체제의 합법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문제제기 하에서만 생겨난다.

즉 불복종운동은 "모든 권력은 시민의 소리로부터 온다"는 근대 민주주의의 근보사상에 뿌리를 두는 것이다.

이런 시민불복종 개념은 요즘 들어 불거진 논의가 아니라 몇 백년 전부터 우리와 함께 해왔다.

1849년 미국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세금이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부도덕한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는 재원으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다.

이로인해 감옥에 수감돼 있는 동안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와 한계를 깊이 성찰한 그는 「시민의 불복종」이란 책을 통해 이 사회에 시민불복종 개념을 확산시켰다.

이 글에서 그는 가정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면서 정부는 개인이 허용한 부분 이외에는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영향을 받은 간디는 영국의 인도 지배에 대해 저항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외에 1940년대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한 미국의 시민운동, 1980년대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전세계적 반대운동이 시민불복종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시민불복종운동의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보여진다.

요즘 낙선운동으로 인한 정치 개혁 열기와 가장 비슷했던 6·10항쟁은 당시 군사독재시대에 직선제 선거를 가능케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초석을 마련했다.

또한 최근의 가장 성공적인 불복종 사례로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참여한 KBS-TV시청료 거부 운동이 있다.

이로 인해 방송법 제정, 한국방송공사법 개정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는 이라크 공격반대, 유전자변형농산물 개발 반대 등 불복종운동의 사례가 최근까지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민불복종운동은 인간은 천부인권을 갖고 태어나기에 표현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자연법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정당치 못한 기존 제도에 대해 거부의사를 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에 한국정치 연구회 연구원 오현철씨는 "시민불복종운동은 인류의 민주주의를 확대해 온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시민불복종의 예에 비춰볼 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낙선운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선거관리위원회는 낙선운동이 선거법 58·59조와 87조(낙선운동금지, 사전선거운동금지, 노동조합이외 사회단체의 선거참여 금지)를 의도적으로 위반했기에 엄연한 불법운동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현행 선거법이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고 국민의 정치행위의 방향을 근원적으로 왜곡한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즉 시민단체들은 이 운동은 불법일지라도 계속 전개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이에 오현철씨는 "낙선운동은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현재의 부도덕한 입법부에 대해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권"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기숙 교수(국제대학원 국제학과)는 "시민 불복종운동은 법을 어기는 것에 대해선 그 법적 응징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기에 법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라며 "그 법에 대해선 불복종하지만 법정신만은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시민운동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법체제에 대항하는 이러한 운동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도 있다.

김문혁 교수(법학 전공)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비민주적 정치조직 하에서 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기에 시민들 스스로의 개혁도 필요하다"며 시민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그 방법을 모색해야지 실정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면서까지 운동을 펼치다가 개인에 의해 다수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등 더 큰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시민불복종이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논리다.

물론 이러한 시민불복종운동이 남발될 경우 사회적 불신과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이에 조기숙 교수는 "시민운동은 제도화된 민주국가에서 기존체제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전폭적 지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정당성을 인정받는 운동만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에 시민불복종운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시민들의 몫으로 남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존의 체제나 제도에 대항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작업은 도처에서 반발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낡은 제도에 대한 절망과 그 개혁에 대한 기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우리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

그 방법이 기존의 제도에 불합리한 대응일지라도 말이다.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법에 대한 존경심 보다는 먼저 정의에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던 소로우의 말을 다시 한번 새겨 볼 때다.

이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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