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용고시에 수석 합격한 김소리씨와 그의 아버지 김상표씨(왼쪽)가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2022년 임용고시에 수석 합격한 김소리씨와 그의 아버지 김상표씨(왼쪽)가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이주연 사진기자

김소리(특교·22년졸)씨는 두 개의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고요한 세상과 소리가 있는 세상. 두 세상을 넘나드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코다’(CODA)이기 때문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김씨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언어는 수어였다. ‘우유 주세요’라는 말을 손말로 먼저 배운 그는 손짓을 익힌 후에야 입말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입과 귀가 돼주던 김씨는 고등학생 때 진로를 고민하던 중 그동안 부모님께 해온 모든 일이 특수교육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트에서 계산하고 음식을 배달시키는 일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까지 책임지는 것은 김씨와 동생의 몫이었다. 점차 김씨는 일상 속 다양한 용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부모님께 직접 가르쳐드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엄마가 너무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인데 혼자 가시지를 못하니까 동생이 학교를 결석하고 병원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이후에는 부모님께 집에서 병원까지 가는 방법을 A4용지에 꽉꽉 채워 써서 설명해 드리고 스스로 갔다 오실 수 있도록 여러 번 연습시켰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특수교육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특수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김씨는 대학 진학 후 유아특수교육을 세부 전공으로 택했다. 처음에는 초등특수교육을 지망했던 김씨. 그러나 1학년 2학기 때 참여한 유치원 자원봉사를 계기로 유아특수교육에 대한 애정이 싹텄다.

“항상 구석에서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해주던 아이가 있었는데, 제가 일부러 장난도 걸고 놀아줬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활짝 웃으며 반응하고 친구들한테도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더라고요. 이때 유아들은 조금만 지원해줘도 많은 발달을 이룬다는 것을 느꼈고 이 기억이 잊히지 않아 유아특수교육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김씨를 가르친 박지연 교수(특수교육과)는 “김씨가 학부 시절 수업 내용의 큰 맥락뿐 아니라 세부 사항까지 꼼꼼하게 공부하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성실한 배움의 과정은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졌다. 김씨는 2022학년도 공립 교원임용시험 유아특수교육 수석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김씨였지만 그에게도 임용시험 준비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지치는 날도 많았다. 그는 그럴 때마다 교수님과 가족의 응원 덕분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특히 김씨는 “부모님께서는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 계속 옆에서 ‘힘내’, ‘인내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며 “덕분에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어 감사했다”고 전했다.

수석 합격의 비결을 묻자 김씨는 “듣기, 말하기, 쓰기를 모두 활용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시험 범위를 인출표로 작성한 후 내용을 녹음해서 이동할 때, 잠자리에 들 때 반복해서 들었다”고 말했다. 암기를 위해 두꺼운 노트를 사서 인출표 내용을 모두 옮겨 적기도 했다.

그는 피드백 과정을 강조했다. 김씨는 1차 시험을 앞두고 스터디원들과 답안 피드백을 진행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또 그는 “수업 실연과 면접이 있는 2차 시험의 경우에도 영상을 찍어 스스로 피드백해보거나 실제 현장에 있는 교사로부터 피드백을 받아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임용시험을 목전에 두고 편찮으신 어머니를 간호하며 공부해야 했기에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입장이었다. 박교수는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고 힘든 수험 생활을 잘 마친 김씨에게 축하와 격려를 전했다. "장애를 가진 유아들에게 신나고 유익한 수업을 하고, 유아의 부모님들을 잘 지원하는 특수교사로 현장을 빛내줄 김소리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지치지 않고 기쁘게 이 역할을 감당하도록 기도할게요."

2022년 3월 김씨는 서울신정유치원에서 교사로서의 첫 발걸음을 뗐다. 그는 특수교육 대상자인 유아가 비장애인 유아들이 있는 학급 내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담당하는 아이가 비장애인 유아들과 동일한 일과에 참여하고 원활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직 초보 교사이기에 실수도 하며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에게는 교정에서의 생활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특히 담당하고 있는 아이와 긍정적인 ◆라포가 형성됐을 때 김씨는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학부모님과 한 번 연락을 한 적이 있는데 아이가 집에 가서 ‘김소리 선생님 좋아’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주시더라고요. 이렇게 아이가 유치원에서 느낀 기쁨을 집에 가서도 표현해준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 아이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요소로 ‘독립심’을 꼽았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어요. 적절한 교육이 독립적인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청각장애인 부모님과 생활하며 직접 실감했기에 특수교육에서 독립심을 기르는 것이 강조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소리씨 인터뷰 중 김상표씨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터뷰 내용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후 김상표씨와의 인터뷰는 김상표씨의 수화를 김소리씨가 통역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진은 김상표씨와 김소리씨가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김소리씨 인터뷰 중 김상표씨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터뷰 내용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후 김상표씨와의 인터뷰는 김상표씨의 수화를 김소리씨가 통역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진은 김상표씨와 김소리씨가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주연 사진기자

김씨의 아버지인 김상표(55·남·서울 강서구)씨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한 딸에게 수어로 고마움을 표했다. “엄마, 아빠가 소통이 잘 안 되는 청각장애인이다 보니 학교에서의 생활이나 공부를 많이 챙겨주지 못했는데, 그 모든 걸 알아서 해온 딸이 기특합니다. 엄마, 아빠를 이해했듯이 장애를 가진 더 많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교육할 것 같아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김상표씨는 김소리씨에게 엄지와 검지, 새끼손가락을 펼쳐 “사랑한다”고 말했다. 김소리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배웠다. 그는 “가슴에 새긴 믿음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교사가 되기 위해 앞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결심을 다졌다.

 

◆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 청각 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를 지칭하는 말이다.

◆ 라포: 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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