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

잿빛 어둠이 걷히고 말간 하늘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진정 봄이 오고 있나 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이렇게 막을 내리네요. 영영 한적할 것만 같던 캠퍼스도 요즘 제법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어디서든 충만한 순간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이번 1633호를 준비하면서도 참 많은 교내외의 사건들을 접했는데요. 그 중 이화인으로서, 나아가 지성인으로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고(故)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었습니다. 2017년 췌장암 발병 이후에도 항암치료 대신 지적 탐구에 몰두해오신 만큼 고인의 부고 소식은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고인은 살아 생애 눈부신 업적을 바삐 쌓아올리는 와중에도 이화의 강단에 큰 애정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전 분야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강의를 진행하셨고, 배움을 갈망하던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광활한 지식의 광야를 탐험할 수 있었지요. 그의 제자분은 그를 “최첨단 안테나”에 빗대시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진정, 위대한 스승이자 교육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대학보 구성원들은 더욱 고민했습니다. 부고 소식만을 간략히 짧은 기사로 알리기에 그 분의 의미는 너무 거대하고도 찬란했기 때문입니다. 고인께서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전달‘만’ 하는 것이 충분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마음 한 켠에 묵직한 돌덩이가 놓인 기분이었달까요.

그러나 동시에 두려움도 존재했습니다. 걸출의 이야기를 감히 담아낼 수 있을까, 양질의 기사로 정리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지는 않았기에 마감 일정에 맞게 기사를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도전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결론은 “해야 한다”로 귀결됐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수 있는데까지 해야 한다” 겠네요.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을까요. 선생님의 생애를, 그 분의 이야기를 심도 있는 기획기사로 담아보자는 제안이 채택됐고 취재는 신속히, 침착히 진행됐습니다. 기자는 이화의 구성원과 기록물을 통해 그의 자취를 좇았고, 점차 입체적인 인물상을 그려나갔습니다. 점점 그 분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지요.

결국 주변인들의 언어를 빌려 인물을 소개하고 그려내는 ‘프로파일링 기사’ 형식으로 선생님의 글이 완성됐습니다. 프로파일링 기사는 시간 소요가 크고 조속한 진행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이대학보에서 쉬이 시도하지 못했던 형식의 기사인데요. 매번 도전의식을 느껴왔던 취재 방식을 시도해보고 좋은 결과물까지 얻어낼 수 있어 벅찼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도와 노력이 동원됐습니다. 이대학보에서의 생활을 마친 선임 기자님들도 의기투합해 객원기자로 참여하며 기사를 이끌어 주셨어요. 이례적으로 선임기자와 활동기자가 TF를 꾸려 기획 기사를 제작한 것입니다. 약 이틀의 시간 동안 TF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취재를 진행했는데, 이화역사관부터 개인 인터뷰까지 고인의 흔적을 찾고 또 찾아 정리했습니다. 단순히 고인의 업적을 나열하는 대신 인간 ‘이어령’으로서의 형상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마치 그 분의 강의실에 들어온 듯, 그 분의 수업에 참여한 듯 생생히 느끼실 수 있게끔 현장감 있는 기사를 쓰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 고인의 삶을, 촉망받던 지성인의 모습을, 고뇌하던 지식인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또렷이 느끼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간결하고도 명확한 문장을 통해 단숨에 기사를 읽어 내려가실 수 있을 겁니다. 글을 읽는 시간만큼은 고인을 먼 인물이 아닌 그리운 옛 선생님으로 느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4면의 메인기사를 읽으신 후에는 5면의 박스 기사를 통해 더 날것의 언어로도 그 분을 느껴보시면 어떨까요.

이대학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고인을 다시금 떠올리고 추억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원대한 발전에 도모하신 고(故) 이어령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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