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재 건축학 교수
임석재 건축학 교수

국내 손꼽히는 건축사학자.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후 미국 미시간대에서 석사,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본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전공인 건축사와 건축이론을 토대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활발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펼치며 약 60권의 단독 저서를 썼다. 『임석재의 서양건축사』(전 5권), 『예(禮)로 지은 경복궁』,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극장의 역사』, 『피라미드의 문』 등이 대표적이다. 케이무크(K-MOOC)에서 강의 중인 ‘건축으로 읽는 사회문화사’는 2020년 최우수강좌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디어 중독시대다. 정보는 토막 나서 유통되고 가상세계가 현실을 압도한다. 일상은 팝콘 튀듯 잘게 쪼개져서 숨 막히게 돌아간다. 나의 본성과 본 모습은 상실되고 미디어가 던지는 허상에 인생을 건다. 상황과 시대와 문명과 역사에 대한 난독증이 사회를 지배한다. 줄임말과 욕설과 분노의 저주가 뒤범벅되어 뇌를 망가트린다. 책 쓰기는 이런 중독증에 대한 좋은 대안 치료가 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거시적 차원부터 좁혀 들어가 보자.

첫째, 책 쓰기는 사고력을 총집합시키는 과정이다. 실존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힘’을 주창했던 데카르트가 현대에 들어와서 공격을 받는 것은 철학자들의 문제라 치부할 수 있다면, 인간이라는 종의 존재 조건 가운데 ‘사고력’이 앞쪽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때로는 땅의 내 신발 끝을 보고 걸으며 집중적으로, 때로는 먼 하늘의 구름을 세며 책의 주제와 플롯을 ‘사고’하는 것만으로도 도파민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여러 단계로 행복감을 주는데 ‘인지-학습-기억’의 ‘사고력 3종 세트’도 그 핵심을 이룬다. 이를 바탕으로 ‘의욕-칭찬-보상’의 기쁨 3종 세트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 ‘무슨 주제로 책을 쓸까, 그 구성을 어떻게 짤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도파민 효과를 조금이라도 맛보게 된다면 미디어에 함몰되어 찾던 보상 효과를 거뜬히 대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좁혀 들어가면 자료를 다루는 능력에서 신천지가 열릴 것이다. 자료를 모으는 단계부터 곧바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커다란 항아리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그리고 그 속을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 채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파편 정보에 파묻혀 그와 똑같이 조각나 버린 뇌 구조와 세계관이 열어 젖혀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종류건, 어떤 크기건 나름 ‘우주’라고 이름 붙일만한 세계가 떠오르고 그려지고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셋째,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이분법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자료를 모으는 일과 분석하는 일은 거시적 종합화와 미시적 세밀함이라는 상반되는 기능을 요구한다. 둘은 책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조합은 이런 이분법을 하나로 합해내는 과정이다. 엄두도 나지 않다가 한두 번 그럴듯하게 성공도 해보다가 다시 포기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친 끝에 드디어 플롯에 맞춰 무엇이라도 조그맣게 조합해 낸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피드백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친다. 이분법을 격파하는 과정이다. 현대문명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이분법의 갈등으로 몰아넣고 분노를 상품화해서 수익모델을 모의한다. 미디어는 그 행동대장이 되어 분노 마케팅에서 신기술을 창조해낸다. 책을 쓰는 과정은 이런 이분법의 요소들을 화투장 섞듯 셔플(shuffle)해서 잘게 쪼개는 과정이다. 이를 큰 항아리에 모아 뒤집고 흔들어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넷째, 보너스가 얻어진다. 책을 쓰는 터널을 지나다 보면 경박한 수다가 줄어들고 자꾸 옷깃을 돌아보게 된다. 헛발질 한 번이면 책 쓰기 진도가 두 발 뒤로 간다는 엄혹한 진리를 체화한다. 분 단위로 행동거지 점검에 들어간다. 일상이 소중함을 넘어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한두 해, 쌓이다 보면 나이도 먹어가고 어느새 인생을 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미디어에 중독되어 병들고 허덕이는 세상에 대해, 처음에는 비판의 분노를 쏟아내다 어느새 아픔을 공감하는 반열에 오른다. 어느 날, 넘어가는 석양을 보며 문득, ‘인생은 성스러운 순례 같은 것’이라는 얘기를 딸에게 해주러 총총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써라, 무엇이든.

일단 써라. ‘저지르고 보자’에 책 쓰기만큼 합당한 것도 없을 것이다.

소설가나 저술가만 쓰는 것이 아니다. 고전 명작만 책 쓰기의 자격을 갖는 것이 아니다. 자격증이나 국가고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 큰 그림을 그리자. ‘글쓰기’를 너머 ‘책 쓰기’로 나아가라. ‘읽기’ 너머에 ‘글쓰기’가 있을 것인데 이마저 넘어보자. 보통 글쓰기의 표준으로 거론되는 일기를 보자. 날짜순으로 하루마다 쓰는 것이 ‘일기’라면 여러 개를 모아서 무언가를 ‘작당 모의’를 하는 것은 ‘일기책’이 된다. ‘일기’조차 점점 멀어지는 시대에 역발상으로 거꾸로 가보자. ‘일기’ 너머 ‘일기책’을 짜보자. 고르기와 모으기라는 첫발부터 나의 중뇌가 활성화되고 여기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디어에서 한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조합의 단계로 넘어가면 큰 그림을 그리고 플롯을 짜는 짜릿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때부터 나의 우뇌가 활발하게 살아난다. 극단적 편집증에 지쳐있던 나의 좌뇌는 짝을 얻어 균형을 찾고 안정화된다. 미디어 화면에서 눈을 떼고 심호흡을 하며 일상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게 될 것이다. 나의 눈은 방 안을, 나아가 집안을, 다시 나아가 자연과 사회를, 더 나아가 문명과 시대와 역사를 향할 것이다. 나는 미디어라는 외부의 자극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에서 나의 사고를 기반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동적 존재로 성숙할 것이다.

책 읽는 당신이 아름답다. 책 쓰는 당신은 더 아름답다.

임석재 건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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