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과·기호학연구소 주최 「프랑스 현대사상 특강」

“야! 그 영화 포스트모던하네”, “네 옷 상당히 아방가르드(avantgarde)적이구나”, “이런 억압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해체해야해” 포스트모더니즘, 탈구축, 해체, 후기 구조주의 등의 용어들을 우리는 퍽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살아간다.

데리다, 푸코, 바르트라는 이름도 문학, 철학, 영화,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주 언급하고들 있어서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의 정확한 파악은 우리를 늘 당혹스럽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들의 이론을 끊임없이 언급하며, 이러한 사상가들과 그 이론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결점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가 6일 (월)~21일 (화) 다섯명의 명쾌한 안내자에 의해 제공되었다.

첫 강연인 강영안 교수(서강대)의 ‘데리다와 헤체철학’은 정리가 잘 된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명료함으로 데리다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데리다는 텍스트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인물이다.

그는 기존의 텍스트를 보는 두 방식인, 텍스트가 담고 있는 내용의 진위에 중점을 두는 ‘형이상학적 읽기’와, 텍스트를 통해 매개되는 현실에 중점을 두는 ‘해석학적 읽기’방식을 거부한다.

대신 ‘수사학적 읽기’라고하여 중심·주체·저자가 없는 텍스트의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

즉 저자는 텍스트의 기원이 아니라 오히려 글쓰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중심주의’를 해체하여 인간의 삶 전체를, 양가성·애매성·비결정성을 지닌 산종(흩어짐)과 차연의 놀이가 지속되는 텍스트로 보자는 사고가 담겨져 있다.

오생근교수(서울대)의 ‘푸코의 담화, 권력, 주체 강연은 그의 저작을 중심으로 푸코의 담론, 권력, 주체의 개념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푸코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지식이나 담론체계와 보이지 않는곳에서 움직이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론이나 지식을 중시하기보다 삶과 현실 자체를 중시하고 거시적인 이론 체계속에 배제되어 있는 미시적 체계의 비중을 높인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그의 사유와 우리의 일상적 관심을 만나도록 해주고 끊임없이 우리를 이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고 소개하였다.

김옥련씨(본교 강사)의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해체주의’는 구조주의오 탈구조주의(해체주의)의 개념을 서구 사상의 뿌리와 연결하여 재조명해 본다.

서양의 사상 체계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두 역점 사이의 왕복 운동으로 파악해본다면, 보편 타당한 객관성을 중시하고 유동적인 의미의 본질을 추구하는 헬레니즘 사상계열에 고전주의 비평·형식주의·신비평·구조주의·기호학이 있고, 다른 한편 다양성·주관성을 중시하면서 현실의 유동성을 회복하려는 헤브라이즘 계열에 낭만주의 비평·현상학·해석학·수용미학·독자 반응 비평·탈구조주의가 위치한다는 것이다.

언어학적 측면으로 볼 때, 구조주의가 기호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로 구분하여 그 기호의 지칭 대상의 현존을 확신했던 반면, 탈구조주의는 기호의 불확실성, 의미의 유보, 해석의 불가능성을 인식한다.

또한 구조주의가 작품을 고정된 생산물, 궁극적으로 도달가능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하나의 닫힌 체계로 보는 반면 탈구조주의에서의 작품은 끊임없이 열려있으며 독자 스스로가 쓰는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생산과정이라는 의미에서 ‘텍스트’로 지칭된다.

흥미로웠던 점은 결론으로, 이러한 이론이 지니는 양극성의 반복운동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흐름인 ‘총체이론’이 시작되고 있다는 짧은 언급이었다.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프랑스 사상의 소개 형식이 그 취지였던 이번 특강은, 문학과 철학이 각자 다른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고, 그것에 대한 성찰을 다시 한번 해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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