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M(Female-to-male) 트렌스젠더 박정한(가명)씨가 무지개 팔찌를 차고 있다. 박씨는 본교 입학 후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했다.민경민 사진기자
FTM(Female-to-male) 트렌스젠더 박정한(가명)씨가 무지개 팔찌를 차고 있다. 박씨는 본교 입학 후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민경민 사진기자

“저는 더 이상 이대생이 아닌 걸까요?”

본인을 남성으로 정체화한 본교생 박정한(가명)씨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꺼낸 말이다. 그는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격적인 게시글이 올라오는 걸 보며 절망했다.

최근 첫 트렌스젠더 직업군인 고(故) 변희수 전 육군 하사(23)가 세상을 등졌다. 편견에 맞서 싸운 변 하사의 부고에 혐오로 뒤덮인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본교에도 트랜스젠더가 존재한다. 여대라는 환경과 성 정체성의 충돌은 이들에게 어떤 고민을 빚어낼까. 본지는 트랜스젠더 박씨를 수소문 끝에 만날 수 있었다.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에서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는 익명 게시글에 쪽지를 남겼고 박씨와 연락이 닿았다. 쪽지를 받고 고민했지만 그는 ‘나 같은 사람도 이화에 존재한다는걸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다. 16일 저녁, 수업이 끝난 후 고요해진 ECC에서 그를 만났다.

박씨는 FTM(Female-to-male) 트랜스젠더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 그는 본교 입학 후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어릴 적 박씨는 게임에서 남성 캐릭터를 골랐고 드라마를 볼 때 남자 주인공에 본인을 대입했다. 2차 성징에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의 성별 정체성에 관해 깊게 고려하지는 않았다.

“성 정체성이라는 개념조차 몰랐어요.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그냥 난 남들과 좀 다른 것 같다 정도로 느꼈죠.”

그러나 본교 입학 후 박씨의 세계는 바뀌었다. <성의사회학>, <젠더와역사> 등 여성학 관련 수업을 들으며 성별 이분법적 사고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이를 바탕으로 성별 정체성을 고민하게 됐다. 여성학 수업은 그에게 많은 물음을 던졌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여성성에 대한 거부감에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일까? 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러한 이유만으로 정체성이 설명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여성으로 인식되는 것이 낯설었다. 박씨는 ‘언니’, ‘누나’와 같이 성별에 따른 지칭을 들을 때면 이질감을 느꼈다.

연애를 할 때도 스스로를 남성으로 인식했다. 그는 “대학에 들어와 상대방의 성별에 관계없이 교제했다”며 “여성과의 연애에서 뿐만 아니라 남성과의 연애에서도 내가 남성이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평소 박씨는 에브리타임 내 퀴어 게시판에 자주 들어간다. 퀴어 정체성을 가진 다른 학생들의 글을 보고 소통하며 그들에게서 성소수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발언이 담긴 일부 게시글을 보며 자신이 게시판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학교 밖 사회에서는 변 하사 사망 이후 트랜스젠더 사안을 둘러싸고 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학교 안에서 이런 글을 보면 괴리감을 느끼죠.”

게시판 내 몇몇 학생들은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졌다. ‘자신을 남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왜 여대에 들어왔냐’, ‘그러면 나도 내일부터 남성으로 살 수 있는 거냐’는 글이 올라왔다.

박씨는 “나를 나로 봐달라는 것에 무슨 논리적 근거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나와 같은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가 증명”이라고 말했다.

벗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을 보며 좌절했다. 그는 “이화인과 나 사이에는 여성으로 자라오며 느낀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같은 공간에서 공부한 경험 등 많은 공통점이 있다”며 “하지만 내 성정체성을 밝히면 ‘이화공동체’로부터 퇴출당하겠다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바라보며

학내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말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박씨에게 이화는 ‘소중한 모교’다. 그가 정체화 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가 이화에서의 배움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다른 학교에 입학했다면 정체화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화였기에 성별 정체성에 대한 많은 고민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본교에서 많은 고민을 거친 끝에 박씨는 본인을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정체화 과정보다 정체화하고 나서부터가 저에겐 더 지옥인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로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죠. 트랜스젠더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가 상상이 안 가요.”

그는 막막함을 느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가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박씨는 “변 하사를 비롯해 먼저 용기 낸 성소수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지정 성별을 벗어나는 순간 사회 모든 곳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박씨는 결국 본인의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기로 했다.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를 거쳐 본교에 진학한 그는 “남성으로 법적 성별 정정을 진행하는 순간 모든 학력을 잃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성별 정정을 하게 되면 채용 과정 등에서 학력을 제출했을 때 원치 않게 트랜스젠더임이 밝혀질 우려가 있다. 주민등록상 남성으로 성별을 정정해도 학력 표기 시 여자고등학교, 여자대학교 등의 명칭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 채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나만 나를 포기하면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법적 성별 정정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박씨에게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 물었다. 그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고 답했다.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는 이유로 포기하는 것이 없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성별 정정부터 주변 지인에게 고백하는 일 모두 하나씩 포기하고 있어서 그런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럼에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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