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적 성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젠더리스’(genderless)가 MZ세대 주요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ilty)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흐름은 남자와 여자라는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고, 성의 개념을 초월한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젠더리스 흐름에 맞춰 항공사 에어로케이에서는 2020년 6월 젠더리스 유니폼을 내보였다. 모든 승무원의 하의를 바지로 통일하고 구두대신 운동화를 착용하도록 했다. 국내 색조 코스메틱 브랜드 라카(LAKA)의 모토는 “컬러는 원래 모두의 것”이다. 젠더 뉴트럴 메이크업 브랜드를 지향하는 이들은 남녀 공용 립스틱, 블러셔, 아이섀도우 등을 출시했다. 유명 화장품 브랜드 베네피트(Benefit)와 지방시(Givenchy)는 각각 남성 연예인 하성운과 강다니엘을 모델로 발탁해, 짙은 색조화장을 한 화보를 찍기도 했다.

 

내게 맞는 옷으로, 패션도 ‘젠더리스’

“입기 편하고 입으면 행복한 옷이 좋아요.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요”

순소영(정외·19)씨는 1학년때 페미니즘을 접한 후 젠더리스를 추구하게 됐다. 그는 치마도 입고, 정장도 입는다. 남성복과 여성복 사이트를 가리지 않고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른다.

순씨는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이상적인 여대생’의 모습에 본인을 맞췄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기도 하고, 화장법을 열심히 배워 속눈썹을 붙여보기도 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접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숏컷에 운동복을 입으며 사회가 규정하는 ‘남성성’에 맞는 외양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순씨에게 ‘남성성’과 ‘여성성’ 안에 본인을 규정하는 것은 어느쪽이든 숨이 막혔다.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젠더와 관계없이 본인에 맞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젠더리스 문화는 본인이 즐기는 것을 넘어 서로 지향하고 공유하는 방향으로 퍼지고 있다. 젠더리스 의류를 판매하는 달빛상점의 이현민(동양화·20졸)씨가 그 예다. 휴학 중 시작한 ‘달빛상점’은 원래 악세사리를 파는 곳이었다. 그러나 탈코르셋 운동을 접한 후, 불편하고 치렁치렁한 액세서리가 생산성이 없다 생각해, 젠더에 구애없는 의류들을 팔게 됐다. 브래지어 없이 입을 수 있는 나그랑 티셔츠와 실루엣을 강조하지 않는 편한 의류들을 제작한다.

이씨는 “패션은 시대의 사상이나 흐름을 담는것이라 생각한다”며 “여자는 꾸미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많은 여성들을 옥죈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남성 역시 사회적인 ‘남성성’에 갇히지 않고 보다 자유로워지길 바란다”며 성별을 구분짓지 않는 젠더리스의 가치를 알리고픈 마음을 전했다.

달빛상점에서 판매하는 티셔츠 제공=달빛상점
달빛상점에서 판매하는 티셔츠 제공=달빛상점

남성들 사이에서도 젠더리스 트렌드가 성행이다. 연예인 조권은 킬힐을 신거나 짙은 화장을 하는 등 전통적으로 여성의 복식이라 여겨진 복장을 입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ㄱ(20·남·경기 의정부시)씨는 평소 젠더리스 룩을 즐긴다. 기장이 짧은 트위드 자켓을 입거나 핸드백을 메고, 메이크업도 한다. 본인의 스타일을 공유하는 인스타그램(Instagram) 계정을 운영한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서 남성들이 젠더리스적인 아이템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걸 본 후 젠더리스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평소 느끼는 감정을 외관으로 표현할 수단으로 젠더리스를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젠더프리 캐스팅, 새장르를 열다

문화, 예술분야에서도 젠더리스 트렌드를 찾아 볼 수 있다. 홍서연(휴기바·19)씨는 연극, 뮤지컬 계의 ‘젠더 프리 캐스팅’ 작품을 즐겨 찾는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을 말한다.

그는 “여성 서사 연극 등에 관심이 많아지던 때에 젠더 프리 캐스팅을 알게됐다”며 “남성 배역을 여성 배우가 연기한다는게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홍씨가 말하는 젠더프리 캐스팅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젠더프리 캐스팅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맥락을 추가해 극에 흥미를 더한다는 점을 꼽았다.

오펀스 주인공 3인 제공 =오펀스 공식 트위터
오펀스 주인공 3인 제공 =오펀스 공식 트위터

원작 ‘오펀스’는 3명의 남자 주인공들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2019년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상연된 ‘오펀스’는 젠더프리 캐스팅을 진행해 여성배우들도 주인공을 연기했다. 3개의 캐스팅 조합 중 한 조합이 전부 여성배우들로 구성됐다.

고립된 트릿 형제가 해롤드라는 중년 남성을 통해 성장하는 기존 서사에서, 언니인 트릿이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남장을 한다는 맥락이 추가됐다. 홍씨는 “3명의 여성이 용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며 “젠터프리 캐스팅으로 새로운 맥락이 더해지니 그들의 만남이 더 애틋하게 연출됐다”고 전했다.

기존 서사 속 ‘여성성’에서 등장인물이 자유로워진다는 점 역시 젠더프리 캐스팅의 매력이다. 홍씨는 ‘햄릿’(2021)에서 이를 느낄수 있었다. 그는 “공주가 된 햄릿은 왕자 햄릿과 똑같이 행동한다”며 “성별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햄릿이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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