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많길래 봤는데 순식간에 정주행해 버렸다”

“이 웹툰 추천해준 벗...사랑한다. 예전에 1화만 보고 지나쳤던 과거의 나.. 반성해라”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 ‘벗들의 웹툰’ 게시판에서 이화인들은 웹툰을 추천하기도, 작품에 대한 서로의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최근 ‘웹툰(Webtoon)’에 대한 인기는 점점 커지고 있다. 웹툰은 웹(Web)과 만화(Cartoon)를 합친 단어로, 웹에서 연재되는 만화를 뜻한다. 대표적인 웹툰 플랫폼 ‘네이버웹툰’은 2019년 6000만 명이었던 월간 이용자 수가 1년 만에 6700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웹툰이 드라마, 영화 등으로 재창작되며 관심은 더욱 커졌다. 웹툰 시장이 커짐에 따라 다양한 서사를 가진 작품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여성서사를 다룬 ‘네이버웹툰’의 세 작품을 소개한다.

 

왜 립스틱은 다 빨간색인가요?

‘화장 지워주는 남자’ - 이연 작가

“대학 가면 다 예뻐져.”

여학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말일지 모른다. 대학생 김예슬 역시 그런 말을 들으며 대학에 들어온 평범한 사진과 학생이다. ‘대학 가면 예뻐진다’고 했지만 마법이 일어나듯 저절로 예뻐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이에 예슬은 메이크업샵을 찾아가게 되고, 우연히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 천유성을 만난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국내 최대 메이크업쇼, ‘페이스 오프 신데렐라(페오신)’에 자신의 모델로 같이 나가 달라는 것.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는 평범한 대학생 예슬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유성이 ‘페오신’에 출전하면서 겪게 되는 사건을 그린다. 페오신은 경선마다 다른 주제가 주어지는 서바이벌 메이크업 화보쇼다. 출전팀들은 주제에 맞는 화장으로 화보를 찍고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여야 한다. 예슬과 유성은 매 회차 새로운 화장과 퍼포먼스를 통해 메이크업의 ‘정상’과 ‘사회적 미’의 기준을 깨부순다.

‘레드(Red)’라는 16강 주제를 준비하던 어느 날, 다른 참가자가 이들의 붉은색 화장품을 모두 망가뜨리는 일이 발생한다. 붉은색 없이 어떻게 ‘레드’를 표현할지 곤란해하던 중, 사진을 전공한 예슬에게 번뜩 참신한 아이디어가 스친다. 예슬은 초록색 립스틱으로 진하게 입술을 칠한 뒤 사진을 ‘흑백’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묻는다. “여러분들은 저 입술이 무슨 색으로 보이시나요?”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 28화, 흑백 화보 속 예슬. 출처=캡처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 28화, 흑백 화보 속 예슬. 출처=캡처

 

“사실 저 입술은 붉은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입술을 ‘붉은색’이라고 생각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게 가장 보편적이니까요. ... 메이크업이 정말로 개성을 표출하고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거라면 이 화보의 입술이 붉은색으로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화보의 입술은 무엇보다 강렬한 붉은색입니다.” (예슬) (28화 中)

‘화장 지워주는 남자’는 메이크업의 보편성과 화장의 자기만족,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압박을 그린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아름다움이 권력이 될 수 있는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젠더란 무엇인지’라는 다소 심오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웹툰의 또 다른 주인공, 인스타그램(Instagram) 스타 ‘주희원’ 역시 페오신에 참여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아간다.

 

희원은 알고 있다. 권력이 없다고 했지만 아름다움엔 권력이 따라붙는다는 걸. 물론 그 권력은 진정한 것이 아니고, 결국 권력을 누가 부여하는지도 알고 있다. 왜 그녀는 그 권력이 진짜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름다움을 놓지 못하게 된 걸까. 그녀, 자신의 모순을 외면하면서. (11화 中)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권력은 달콤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눈앞의 아름다움을 좇는다. 잘못된 건 자신이 아닌 사회임을 알지만, 오랜 시간 차고 있던 굴레를 벗어던지긴 쉽지 않다. 사회적 미는 개인을 끊임없이 재단하고, 개인은 기준에 맞지 않는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한다.

자기검열에 지쳐 굴레에서 벗어날 힘조차 없을 때,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는 다소 통쾌하게 그리고 신선하게 우리의 굴레를 부숴준다. 현실 속 지친 우리에게 예슬과 유성, 그리고 희원의 모습은 ‘화장 지워줄’ 용기를, 한 번 더 ‘목소리 낼’ 용기를 전한다.

 

여성국극의 대스타가 될 거요!

‘정년이’ - 서이레, 나몬 작가

1956년 8월 목포. 뙤약볕에 조개를 팔던 윤정년은 시장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민요 ‘남한산성’을 쩌렁쩌렁 부른다. “노래를 부르면 조개를 다 사가겠다”는 손님의 말에 시작한 정년의 노래는 시장 사람들의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킨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전라도 소녀. 16살 윤정년이 제일 자신 있는 건 ‘소리’다.

조개를 내다 파는 어머니를 도우며 사는 정년은 ‘목소리 하나로 돈을 왕창 벌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친구의 제안으로 정년은 목포에 공연을 온 여성국극단 ‘매란국극단’의 공연을 보게 된다. 판소리가 모태인 국극은 노래, 춤, 연기로 이뤄진 종합예술로, 남녀 구분 없이 모든 배역을 여성이 소화한다. 이러한 ‘여성국극’의 매력에 빠져버린 정년은 국극단에서 대스타가 돼 부자가 되리라 다짐한다.

“무조건 부자가 될 거요! 아따 국극단은 돈을 가마니로 번다지라? 부자 되야서 울 엄니한티 보여야 쓰것소.”(정년) (3화 中)

 

정년은 서울로 돌아가는 ‘매란국극단’의 소품 차에 몰래 올라타 연구생으로서 입단에 성공한다. 돈을 좇아 극단에 발을 디딘 정년은 매란국극단의 사람들을 만나며 점차 국극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된다. 주목받는 차기 남역 배우 ‘허영서’, 정년을 도와주는 친구이자 숨은 노력파 ‘홍주란’, 까칠하지만 곧은 성품을 지닌 짝선배 ‘박도앵’과 국극을 연습하며 정년은 더욱 성장하게 된다.

어느 날, 춘향전 속 ‘방자’를 연기하게 된 정년은 우연히 남학생 복장을 하고 심부름을 가게 된다. 정년은 그곳에서 남학생들에게 시비가 걸리게 되고 남장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깔고 위협적인 남자 연기를 한다. 이를 본 남학생들은 후다닥 줄행랑을 치고 정년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남자, 여자 고것이 참말로 별것 아니여!” (정년) (18화 中)

 

웹툰 ‘정년이’는 광복 후 성행했던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다. 여성국극은 ‘춘향전’ 같은 유명판소리,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같은 고전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다. 1950년대, 여성국극단의 인기는 그야말로 지금의 아이돌 못지 않았다. 기마대를 동원해 팬들을 저지하기도 했다는 일화는 나라를 들썩였던 그들의 인기를 보여준다. 이름을 날렸던 남역 배우 조금앵은 한 여성 팬의 부탁으로 가상의 결혼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웹툰 ‘정년이’. 여성에게 자유가 허락되지 않던 시절, 매란국극단 안에선 성별과 관계없이 실력으로만 경쟁하며 꿈을 꿀 수 있었다. 남자의 역할을 연기하던 인물들은 ‘과연 성별의 경계는 무엇으로 정해지는가’라는 금기된 질문에 돌을 던지기도 한다.

작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1950년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2020년 지금 우리에게 전한다. 갖은 구박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정년이. ‘여성들끼리의 공연은 천박하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국극을 이어가는 단원들. 그들의 삶에 대한 열정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뜨겁게 다가온다. 까무잡잡한 피부, 대충 묶어 넘긴 머리카락, 진한 눈썹을 가진 정년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주변에서 뭐라혀도 니는 니 길을 가면 된다 이말이여!”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아기낳는만화’ - 쇼쇼 작가

출산: 아이를 낳음.

출산의 사전적 정의는 참 간단하다. 이 간결한 정의처럼 미디어는 임신과 출산을 짧고 단순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에서 ‘몇 번의 입덧’, ‘땀에 젖은 산모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그렇다면 10개월간의 긴 임신 기간은 어디로 갔을까. 태교 음악을 들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지나가는 일상인 걸까.

웹툰 ‘아기낳는만화’의 작가 ‘쇼쇼’와 남편 ‘포포’. 출처=캡처
웹툰 ‘아기낳는만화’의 작가 ‘쇼쇼’와 남편 ‘포포’. 출처=캡처

귀여운 그림체의 ‘아기낳는만화’는 작가의 ‘임신과 출산’을 그린 일기형 옴니버스 만화다. 작가는 임신 중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상황과 질병, 스트레스를 그림으로 담았다. 입덧, 소화불량에서 오는 육체적 고통과 호르몬 변화로 일어나는 각종 피부트러블, 기형아 검사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감,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 등 임신 중 산모가 겪게 되는 상황은 수도 없이 많다.

임산부 용품을 검색하던 작가는 ‘D라인 원피스’를 발견한다. D라인이 무엇인지 궁금해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자 ‘아름다운 D라인’, ‘D라인 미모 여전’, ‘만삭의 D라인, 미모 클라스’라는 제목의 기사들을 보게 된다. 기사에서 사용된 D라인은 ‘배를 제외한 나머지 신체 부위에는 살이 찌지 않는 몸매’를 뜻했다.

 

“임신 중에도 완벽해야 해..? 언제는 임신은 축복이고 아름답다더니...!!! 본인들의 ‘아름다운 임산부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아 주세요!” (25화 中)

 

임신과 출산이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도대체 어떻게 힘든지, 일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기를 낳으면 좋다’는 말만 반복하며 산모의 고통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사회에 작가는 의문을 느꼈다. 그는 작품 후기에서 “무엇보다도 임신, 출산이 생명과 관련 있는 일이라 신성시된 나머지 ‘힘들다’ 또는 ‘싫다’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내비치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다소 진지한 내용을 다루지만, 그림체는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에 나올 것처럼 동글동글하고 편안하다. 작가는 귀엽고 간결한 그림체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독자들의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보여준다.

작가가 만화를 그리며 가장 많이 받은 오해는 “비출산을 장려한다”였다. 이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누군가 ‘인간관계 너무 힘들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래서 인간관계 한다고 만다고?’, ‘은둔형 외톨이 장려하는 거니?’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는 꼭 출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비출산이 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 후기 中)

 

작가 역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는 것은 ‘대단해’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출산을 겪게 된 작가는 느꼈다. 분만만 힘든 것은 ‘절대’ 아니라고. 임신 중에도 힘들고 아프다고. 그는 이 경험을 꼭 기록하리라 다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임신과 출산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다. 이 웹툰은 출산 예정인 여성들, 출산을 겪은 여성들에게만 필요한 내용이 아니다. 비출산을 결심한 여성도, 신체 구조상 직접 출산하지 못하는 남성도,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태어났는지 더 잘 알 필요가 있다. 일상적으로 일어난다고 해서 과정까지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웹툰 ‘아기낳는만화’는 생명의 시작과 그 구체적인 과정을 과장 없이 친근하게 알려준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