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비약을 보관하는 오동나무 약장, 깃무늬와 십장생(十長生) 문양들로 장식된 담배합, 다양한 동식물과 기물들로 장식된 수묵 책거리. 핸드폰을 들면 19세기 조선시대의 물건들이 단숨에 눈 앞에 펼쳐진다. 집에서 사용하던 문방구부터 명성황후의 발인 행렬을 그린 왕실 반차도(班次圖)까지.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박물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2일부터 온라인 전시를 개최한다. 가상현실(VR) 기법으로 전시관을 촬영해 온라인 전시관을 구축한 건 처음이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온라인 전시관(19thscenes-joseon.ewha.ac.kr)에 접속하면 유물 작품과 관련 설명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19세기 조선의 풍경’을 주제로 열렸다. 새 문물이 들어오며 사회, 경제, 외교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던 19세기 조선시대의 풍경을 본교의 소장품 중심으로 구성한 특별전이다. 

 

가상현실(VR) 기법으로 촬영해 실제 전시관처럼

캡쳐=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 홈페이지
캡쳐=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 홈페이지

온라인 전시관을 이용하면 어디에서든 실제 전시관에 들어온 것처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관 전경이 화면에 뜨면 원하는 방향으로 페이지를 밀며 공간을 둘러보면 된다. 유물 옆 말풍선을 누르면 유물 사진이 크게 뜬다. 간단한 작품설명과 함께 돋보기로 해당 유물의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제1전시실에 들어가면 상업이 발달하며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 19세기 중인 계층의 물건들을 만나게 된다. 학문을 추구하는 문인적 면모와 화려한 물질문화를 따르는 세속적 면모가 공존하는 그들의 양면적 취향이 담긴 물건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옆으로 가는 화살표를 클릭해 제2전시실로 자리를 옮기면 당대 처음 등장한 세계 지도와 같은 서양 문물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교류하던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도, 회화, 사진 자료들을 통해 어지러운 국제정세 속 서양과 교류하는 조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증강현실(AR) 및 애니메이션 활용한 특별 전시도 준비

이번 전시에는 증강현실(AR)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영상 관람과 같이 특별한 체험 전시도 준비됐다. ‘책거리’, ‘태평항해도’, ‘해학반도도’, ‘노안도’, ‘화각함’의 경우 AR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핸드폰으로 체험할 수 있다.  

 

증강현실(AR)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 가능한 ‘태평항해도’. 이다현 기자 9421d@ewhain.net
증강현실(AR)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 가능한 ‘태평항해도’. 이다현 기자 9421d@ewhain.net

제2전시실의 그림 ‘태평항해도’는 외교사절단을 보내던 당시 먼바다를 여행하는 관료 3명의 모습을 그렸다. 항해길이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을 반영하듯 관료 셋은 모두 편안한 모습으로 울렁이는 배 위에 타고 있다. 그림을 마주한 상태로 AR 어플리케이션 카메라를 켜면 화면에  보다 선명한 색깔의 ‘태평항해도’ 그림이 뜬다. 그림 안에서 바다와 배가 출렁이고 사람들이 노를 젓는다. 그림을 기반으로 짧은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다만 이 AR 프로그램의 경우 오프라인 전시 현장에 방문해야만 체험이 가능하다. 

제3전시실에서는 세속적 운을 추구하던 당대 사람들의 염원이 반영된 유물들을, 제4전시실에서는 그러한 염원을 담은 그림 ‘요지연도(瑤池宴圖)’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무병장수, 부귀, 출세와 같은 세속적 복을 추구하던 당대의 길상(吉祥) 문화가 19세기 유물들 속에 깃들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공=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
제공=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

제4전시실에 위치한 ‘요지연도’는 중국 신화에서 가장 오래된 여신 서왕모(西王母)가 여는 성대한 생일잔치를 묘사한 그림으로, 3분 30초의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작됐다. 

영상이 시작되면 길상적인 동식물들이 거주하는 환상적인 장소 요지(瑤池)가 나타난다. 그곳에 서왕모가 앉아있다. 영상에는 여러 가지 동식물들과 서왕모가 초대한 손님들이 차차 나타난다. 먹으면 1만8000년을 산다는 반도나무, 서왕모가 타고 다니는 8준마들이 등장하고 잔치에 유일하게 초대된 인간인 주나라 목왕이 서왕모 옆에 앉는다. 팔선과 같은 여러 신선들이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연못을 건너오고 상상의 동물 봉황이 무대 중간에서 노닌다. 영상의 오른쪽 끝에는 장면에 대한 설명이 함께 나온다. 

해당 작품에는 민란과 전쟁이 자주 일어났던 조선 후기, 무병장수를 꿈꾸던 당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이 연구원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 가족과 지인들의 건강과 안녕한 하루가 간절해지고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기는 시기”라며 “무병장수를 꿈꾼다는 점에서 ‘요지연도’가 많이 유행했던 19세기가 지금의 상황과 연결되는 점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제5전시실로 발길을 옮기면 21m가 넘는 명성황후 발인 행차도가 펼쳐진다. 태극기 모양의 군기(軍旗)와 근대식 제복 차림의 군경들의 모습을 통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급변하던 왕실의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 

 

유물보며 느낀 감정 공유하는 기능도,

지속될 가능성 높은 온라인 전시

캡쳐=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 홈페이지

전시관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유물이 있다면 ‘망원경’이라는 효과를 통해 이모지(emoji)를 남기고 갤러리에 저장할 수 있다. 유물을 선택한 후 ‘재미있어요’, ‘궁금해요’, ‘어려워요’ 등 5가지의 이모지 중 하나를 정해 기록을 남긴다. 내 기록과 함께 다른 관람객들이 남겨둔 이모지도 함께 볼 수 있다. 본교 박물관 이정선 학예연구원은 “요즘 시대 관람객들은 SNS를 통해 표현하고 창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관람객들이 느낀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해 만들었다”고 전했다. 19세기 조선의 풍경을 멀리서 들여다본다는 의미로 해당 기능의 이름을 ‘망원경’이라 지었다.

이 연구원은 온라인 전시의 쉬운 접근성을 설명했다. “온라인 전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할 수 있어 좋다”며 “코로나를 계기로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 온라인 전시 문화가 정착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연구원은 온라인 전시를 위해 기존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온라인 전시용 데이터를 따로 편집해야 하고, 현장 디스플레이를 미리 끝내놓은 뒤 촬영도 해야 해 시간이 촉박했다“고 말했다.

큐레이터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인문학을 기반으로, 관람객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킨 전시였다”며 “큐레이터의 새로운 역량을 키워나가는 시기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인해 박물관은 20일부터 잠정 휴관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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