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행복을 위한 선택지가 되다
비혼, 행복을 위한 선택지가 되다
  • 임유나 기자
  • 승인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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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삶, 여성 혐오·범죄, 젠더 감수성, 과반수 넘게 비혼을 택한 이유

“비혼 한다는 사람이 가장 먼저 결혼하더라.”

박지연(통계·20)씨가 비혼에 대해 느낀 사회적 인식 중 하나다. 이외에도 비혼은 ‘결혼 못해서하는 것’, ‘밀레니얼 세대의 일시적인 트렌드’,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라는 시선이 뒤따른다. 비혼은 가벼운 결심으로, 때로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겨져 왔다.

비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달리, 비혼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3월30일 통계개발원(KOSTAT) 계간지 'KOSTAT 통계플러스'의 '혼인 이행과 생애 비혼의 동향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1974년생 여성 중 만 40세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비율은 12.1%이다. 1944년생 여성이 40세까지 초혼 경험이 없는 비율이 1.2%인 걸 고려하면, 30년 동안 비혼율이 약 10배 증가한 셈이다.

3월19일 통계청 '2019년 혼인·이혼 통계'에서는 작년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따지는 조(粗)혼인율은 4.7건이다. 이는 1970년 통계작성 이후 최저 기록이다. 연령별 혼인율에서 여성은 20대 후반(25~29세)이 전년 대비 11.6% 줄어 전체 연령 중 가장 크게 감소했다.

본지는 비혼에 대한 본교생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3월29일~31일 3일간 구글 설문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에는 이대학보 온라인패널단 ‘학보메이트’ 102명이 참여했다.

‘비혼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에 ‘예’를 선택한 학생이 99%(101명)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응답자 중 단 한 명만이 비혼을 모른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유튜브(Youtube) 영상, 책, 신문 등 비혼과 관련된 콘텐츠나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비혼을 접했다. 정유정(전자전기·16)씨는 “친구들과 비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며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하나의 선택으로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혼을 결심했다고 답한 사람은 응답자의 과반을 넘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81.4%(83명)는 ‘비혼을 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여러 이유와 고민 끝에 비혼을 택했다. 최지원(교육·20)씨는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데 결혼은 하나의 방해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결혼과 출산을 하면 여성들은 직장을 잃고 육아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며 경력단절 현상을 지적했다.

한태경(경제·19)씨 역시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 비혼을 택했다. 한씨는 “혼인 시 여성은 경력단절, 육아와 가사노동 전담 등 부담이 많다”며 “누군가의 아내로 살기보다 사회 속에서 지위와 꿈을 가진 '나'로 살고싶다”고 전했다. 류연주(뇌인지·18)씨도 같은 의견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며 여성 스스로가 주체성을 갖기 시작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결혼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생각해요.”

강남역 살인사건, 버닝썬 게이트, 소라넷, 그리고 n번방 사건까지. 여성 혐오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사건·사고 역시 비혼의 이유로 거론됐다. 김화연(행정·17)씨는 “당장 n번방 사건만 봐도 여성은 영유아에서 노인까지 성적 착취, 정복이 가능한 도구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전반적인 성인지 감수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혼인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연애 중인 진효빈(의류산업·16)씨는 “여러 여성 혐오 사건들로 인해 남성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어졌다”며 “현재 애인과 헤어지면 새로운 연애에 시간과 노력을 쏟을 바에 비혼을 할 것”이라고 결심했다. 이어 “차라리 혼자 살거나 비혼주의 여성들과 공동체를 형성하는 게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부장제가 여성의 젠더 감수성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로 꼽혔다. 응답자 ㄱ씨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기존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평등한 성별 위계관계,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어머니의 경력단절 등을 보고 자란 여성들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ㄱ씨는 “페미니즘이 부상해 그동안 감춰졌던 남성에 의한 성차별적 문제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라며 “결혼 자체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은(경영·20)씨는 본인과 젠더 감수성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할 의향이 있다. 그럼에도 비혼주의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이 현실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최씨는 “젠더 감수성이 풍부하더라도 남성이 여성의 일에 본인의 일처럼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그 간극에서 오는 불화를 극복할 자신이 없고, 불화가 생길 것을 알면서 결혼을 시도할 생각도 없다”고 단언했다.

비혼율 증가에 대해 백경흔 교수(여성학과)는 사회가 변하며 생긴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백 교수는 “나 하나 돌보기도 힘든 사회에 다른 누군가를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하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후기 근대 사회에 접어들었음에도 남성과 여성의 젠더 질서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백 교수는 “근대화 사회에서는 남성이 생계 부양의 역할을, 여성은 돌봄을 담당하는 젠더 질서가 형성돼 있었다”며 “후기 근대 사회에 접어들며 여성은 생계 부양의 영역으로 진출했지만 남성은 돌봄의 영역 진출이 더뎠다”고 설명했다. 남성의 돌봄 영역으로의 진출이 지연돼 돌봄 공백 및 위기가 생겼고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비혼 경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