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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링난대학교 남쪽 기숙사 길에 적힌 시위 문구 제공=본인

올해 2학기 홍콩 링난대학교(Lingnan University)에 파견된 황채은(심리·15)씨는 지난 16일 귀국했다. 중도 귀국을 결정할 만큼 심각했던 당시 홍콩의 상황과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고민을 들어봤다.

-파견 교와 시위 현장의 거리는?

링난대는 주요 시위 현장인 침사추이(Tsim Sha Tsui), 조던 역과 MTR(홍콩 지하철)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본교 다른 학생들이 파견된 대학들에 비해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전국적 시위가 열릴 때는 링난대가 위치한 툰먼(Tuen Mun)에서도 시위가 종종 열린다.

-출국할 때 현지 상황은 어땠는가?

홍콩 시위의 위험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출국했다. 8월19일 출국했을 당시는 시위대가 공항 점거 시위를 벌이고 해산한 직후였다. 홍콩에 도착한 후에도 학교 주변은 홍콩외곽에 있어 시위를 체감하지 못했다. 다만 침사추이 쪽으로 여행 갈 때는 시위 일정을 확인해야 했다. 한번은 시위 때문에 MTR이 오후10시 운행을 멈춰 번거롭게 집을 왔다.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는가?

홍콩을 너무나 좋아해 교환학생으로 있으며 시위에 참여하고자 했다. 마침 10월1일 국경절 때 전 지역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툰먼에서 발생한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고, 도로를 구분하는 울타리를 뜯어 경찰 방어막으로 사용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던졌다. 경찰을 피해 좁은 골목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도망쳤다. 도망치며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것을 후회했다. 죽을 수 있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 시위대가 유서를 쓰고 참가하는 게 이해가 됐다.

-최근 홍콩 시위가 더 격화되고 있다.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있었는가?

시위로 인해 교통이 불안정해져 수업 출석이 유동적인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행사가 취소되기도 했다. 캠퍼스 건물 벽에는 학생들이 라카로 ‘FREE HONGKONG’ 시위 구호를 적었다. 청소 노동자들이 지워도 다음 날 원상태로 복구됐다. 대학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아무래도 경찰의 홍콩 중문대 캠퍼스 진압 작전인 것 같다. 이날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는 캠퍼스 안이 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13일 한국인들이 대부분 귀국을 결정했고, 심지어 바로 다음 날 출국하는 학생도 있었다.

-남아있고 싶지는 않았는가?

홍콩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남아있고 싶다’기 보다 ‘남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1년 교환학생으로 홍콩에 왔기에 한국에서 보통의 마음가짐으로 온 게 아니었다.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면서는 한국에 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국제처의 귀국 권유를 받고, 안전의 이유로 귀국을 결정했다. 홍콩에 좋아하는 친구들도 남아있고, 홍콩의 모습을 눈에 다 담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또한, 자유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홍콩인을 두고 떠나는 것에 죄책감도 크다.

-한국인 외 타국에서 온 학생들도 본국으로 돌아갔는가?

중국 학생들은 홍콩 중문대 대치 당일, 혹은 다음 날 대부분 중국으로 갔다. 중국인들끼리 모여 함께 출발했다고 들었다. 이외 다른 국가 학생들은 귀국을 장려하는 정도로 알고 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의지에 따라 아직 남아 있는 학생도 있다.

-학점 이전은 어떻게 되는가?

링난대는 오프라인 수업을 취소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했다. 이 때문에 학기는 온전히 마칠 수 있었다. 국제처에서 학점 이전이 될 것이라는 확답도 했기에 이는 큰 걱정이 없다.

-이화인에게 한마디

학보와 인터뷰하는 것을 듣고, 홍콩 친구가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진실을 보자, 그리고 알리자. 진실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밝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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