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손에 끌려 ‘순결 검사’를 받으러 가는 랄리(맨 오른쪽)와 자매들. ‘무스탕: 랄리의 여름’의 한 장면 출처=왓챠
삼촌 손에 끌려 ‘순결 검사’를 받으러 가는 랄리(맨 오른쪽)와 자매들. ‘무스탕: 랄리의 여름’의 한 장면 출처=왓챠

‘여성 감독,’ ‘여성 원탑 주연’은 여전히 영화 기사 제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어다. 굳이 ‘여성’이 들어가는 이유는 아직 남성 위주의 서사가 극의 기본값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여성 인물의 욕망을 집요하게 그려낸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무스탕:랄리의 여름’(2015),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레이디 맥베스’(2016)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을 뿐 아니라, 자기 삶에서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유, 권력, 사랑을 위해 투쟁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무스탕: 랄리의 여름소냐와 셀마의 결혼식에서 부둥켜 안는 자매들. 랄리와 언니들이 함께할 수 있던마지막 장면이다. 출처=네이버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
소냐와 셀마의 결혼식에서 부둥켜 안는 자매들. 랄리와 언니들이 함께할 수 있던마지막 장면이다.
출처=네이버영화

△너무도 당연한 그것을 위해, ‘무스탕: 랄리의 여름’

“여성들의 꿈을 거세하는 말은 “시집이나 가라”라는 워딩인 것 같아요. 여성 유명인을 비난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 중 하나라는 점에서부터 알 수 있어요. 한국 사회의 모든 사람은 이미 여성에게 ‘결혼’이 얼마나 억압적인 기능을 하는지 알면서, 다들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요.” (김지연, 커미·17)

랄리는 언니인 소냐, 셀마, 에체, 누르와 할머니, 삼촌과 같이 터키에서 사는 여자아이다. 영화는 이슬람 문화권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여성이 겪는 삶, 그리고 여기서 탈출하려는 욕구를 그려낸 영화다. 2015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21세기에 저런 일이 있다고?”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큼 답답한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랄리가 여름 동안 잘 따랐던 딜렉 선생님과 헤어지며 울먹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랄리의 학교가 있던 작은 마을에서 이스탄불로 떠나기 때문이다. 언니들은 훌쩍이는 랄리를 달래며 바닷가로 데려간다. 랄리는 바다에서, 풀밭에서 뛰놀며 선생님을 떠나보낸 아쉬운 마음을 금세 잊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자매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할머니의 불호령. 남자아이들과 물놀이를 했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순결 검사’를 받는다. “몸을 헤프게 굴리면 결혼을 못 한다”는 것이다. 감독 데니스 겜즈 에르구벤 (Deniz Gamze Erguven)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장면이 탄생했다고 한다. 한바탕 소동 이후 자매들은 집에서 갇혀 생활하게 된다.

 

“눈 깜짝할 새 모든 게 변했다. 평온했던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랄리)

 

언니들과 노는 것 말고는 축구 경기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인 랄리. “슈퍼리그 8강전을 보러 가고 싶다”고 삼촌에게 말하지만, 학교에 가는 것도 금지당한 상황에서 삼촌은 “순 남자들 틈인데 어딜 가냐”며 반대한다. 그러던 중 랄리와 언니들은 ‘훌리건 난동으로 경기에 여자 관중만 입장할 수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되고, 삼촌이 없는 틈을 타 탈출해 축구 경기를 보러 간다.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온 랄리는 남성만의 문화로 여겨졌던 운동장에서 소리 지르며 응원하고, 헹가래를 치면서 전에 없던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TV 중계로 자매들이 집을 나간 것을 발견한 할머니는 집의 담을 높이고, 신붓감 경연을 하듯 자매들을 이웃들에게 ‘선보인다.’ 랄리는 이 상황에 “집은 더 지옥 같아졌다”고 말한다. 머지않아 소냐와 셀마는 삼촌 손에 이끌려 결혼을 하게 된다. 셀마의 결혼식 날 밤, 신랑의 부모는 그를 병원에 데려가 “아들이 결혼했는데 며느리가 출혈이 없다”며 병원에 데려가 검사해 달라고 한다. 에체는 집안에 갇혀 활기를 잃어가다 결국 하기 싫은 결혼을 앞두고 자살한다.

결혼과 출산을 위한 기계로 취급되는 언니들의 삶, 이를 지켜보던 랄리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위해 현실을 박차고 나간다. 자매 중 넷째인 누르의 결혼식, 랄리는 누르에게 “언니, 이 결혼 하고 싶어?”라고 질문을 던지며 문을 걸어 잠그고 아슬아슬한 철창을 넘어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삼촌의 자동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몰래 연습해두었던 대로 시동을 켜고 이스탄불을 향해 달린다.

조윤채(특교·17)씨는 랄리의 탈출을 보며 “여성 간의 연대감은 국가와 언어라는 장벽을 넘어 보편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 종교와 문화 모든 것이 다른 환경의 랄리를 보며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어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당사자처럼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당사자’라는 생각 때문에 랄리의 여정을 응원하고 가슴 벅차 할 수 있었어요.”

결혼식에서 축하의 의미로 허공에 총을 쏘던 랄리의 삼촌. 그 파열음에 맞서듯 랄리는 트럭의 페달을 밟는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랄리의 머리칼이 창문 밖으로 날릴 때, 그가 느끼는 자유의 바람이 관객의 피부까지 와닿는 듯하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궁정에서 사격 연습을 하는 애비게일(왼쪽)과 사라.출처=네이버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궁정에서 사격 연습을 하는 애비게일(왼쪽)과 사라.
출처=네이버영화

△세 여성이 펼치는 살벌한 전쟁,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18세기 초 영국, 앤 여왕은 권력의 꼭대기에 있지만 외모, 열 번이 넘는 유산 경험 등 여러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그 옆에는 항상 앤을 지키는 정치 권력의 실질적인 핵심, 사라가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둘의 오랜 우정과 사랑의 감정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끼어들게 된다. 사라의 사촌이자 몰락한 귀족 집안의 딸인 애비게일이다.

앤의 하녀로 왕궁에 들어온 애비게일은 밑바닥에서부터 배운 삶의 기술을 이용해 앤을 포섭하려고 한다. 다리에 병이 있는 앤을 위해 숲에서 약초를 캐오고, 의도적으로 빈틈을 보이며 사라의 자리를 뺏으려 한다. 귀족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여왕의 친구, 애인으로 살면서 한 번도 좌절을 겪어본 적 없는 사라는 생전 보지 못한 경쟁 상대를 마주하게 된다.

권력과 애정을 위해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는 세 인물을 보고 있노라면 종전의 여느 정치, 느와르 영화보다 더 긴장이 된다. 영화는 극중 욕망의 주체가 여성인 것이 당연한 일인 것 마냥 아무런 설명이 없다. 하지만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가 말하듯 여성이 정치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보기 드문 이야기”였다. 세 여성이 힘의 중심에서 다투는 동안 사라의 남편인 고돌핀, 매셤, 할리경은 웅장한 홀에서 오리에게 달리 기 경주를 시키거나, 발가벗고 토마토 던지기 놀이를 하는 등 한심한 인물로 그려진다. 실존했던 앤 여왕의 남편 조지 공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구성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기존의 여성 인물이 남성 주인공을 위한 대상으로 그려진 관습을 탈피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 캐릭터가 도구, 객체로 소비된 적은 셀 수 없이 많죠. 남성 위주의 정치, 권력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선과 악에 관계없이 굉장히 단편적인 캐릭터로 묘사돼왔어요. 여성 주연 서사나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커진 거죠.”

‘더 페이버릿’은 김씨가 지적한 기존 영화의 문법을 뒤집어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상처가 많은 앤 여왕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극 초반 사라와 애비게일에게 휘둘리던 앤 여왕은 영화 후반, 비로소 자신의 소신대로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휘그당의 이익만을 위한) 프랑스와의 전쟁을 휴전”한다고 선언한다. 왕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 속에서의 주체성을 찾는 순간 앤의 표정에서는 단호함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총에 탄약 넣는 걸 까먹으면 총소리는 나지만 총알은 안 나가. 재미있지 않아? 가끔 총알을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거든. 착각해서 사고가 날까봐 걱정은 돼.” (사라, 사냥 연습을 하던 중 총으로 애비게일을 겨누며)

 

레이디 맥베스안나(왼쪽)가 캐서린에게 크리놀린을 입혀주고 있다.출처=네이버영화
레이디 맥베스
안나(왼쪽)가 캐서린에게 크리놀린을 입혀주고 있다.
출처=네이버영화

△이 서늘한 공간의 주인은 나, ‘레이디 맥베스’

황량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저택. 캐서린은 17살에 이곳 지주에게 사실상 팔려 온 신부다. “남편이 들어올 때까지 자지 말고 기다리라”는 시아버지의 말에 꾸벅꾸벅 졸며 감시당하고, 술에 취해 들어온 늙은 남편은 캐서린에게 “옷을 벗고 벽을 보고서”라며 마치 소유물처럼 캐서린을 부린다.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자는 것으로 하루가 끝나는 고요한 저택의 권태로운 삶. 캐서린은 남편이 다른 지역에 일을 하러 간 동안, 우연히 마주친 새 하인 세바스찬과의 불륜으로 일탈의 감각을 일깨운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 매일 술을 마시며 방종에 가까운 일상을 보내며 캐서린은 억압과 구속이라는 틀을 산산조각내기 시작한다. 남편이 내리는 명령, 시아버지의 결정, 아침마다 매는 코르셋과 크리놀린의 세계를 떠나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 극이 고조될수록 캐서린은 세상이 정한 금기를 새롭게 규정하는 듯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은 왕의 암살을 앞두고 고민하는 남편에게 나약해지지 말라고 부추기는 인물이다. 원작에서 욕망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맥베스 부인은 자신이 맹세한 일을 위해서라면 “젖을 빠는 아기가 내 얼굴을 보며 웃음 짓고 있을지라도, 그 이 없는 잇몸에서 젖꼭지를 확 뽑아내고 머리통을 박살 낼 수 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맥베스 부인을 뜻하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레이디 맥베스는 따뜻한 영화가 아니다. 차가운 바람 소리가 어울린다. 캐서린은 세바스찬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도 필요가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대상이다. 캐서린에게는 연민이나 동정, 의리나 여성 간의 연대도 없다. 하녀인 안나가 남자 하인들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목격한 안나가 실어증에 걸려도 캐서린은 그를 야단치고 내친다. 현실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캐서린에게 있어 금기사항이기 때문이다.

캐서린의 행동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먼저 짜릿함과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영화를 보며 관객 각자에게 주어진 굴레를 투영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조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구속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나갈 때까지, ‘여자라서 그렇게 하면 안 돼,’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진 일이야’라는 말을 듣고 살아가잖아요. 그래서 체계를 부수려는 캐릭터를 볼 때 쾌감이 드는 거죠.”

사랑도 돈도 인생의 재미도 없던 캐서린이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버리고 오직 자신의 욕구에 따라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이 그를 채운다. 감 독 윌리엄 올드로이드(William Oldroyd)는 스산한 집안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oi)의 작품을 보면서 작업했다며 “그림 속 춥고 밀폐된 방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는 검은 옷의 여성이 영화의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캐서린이 자신을 구속하던 모든 인물을 해치운 뒤 조용히 앉아 관객을 응시할 때, 차가운 방의 공기와 캐서린의 뜨겁고 거친 숨소리가 동시에 느껴지는 듯하다.

 

“일찍 나왔네요”(안나)

“개들 산책시키려고. 너무 오래 묶어두면 안달을 해서”(세바스찬)

“그렇긴 했죠. 너무 오래 묶어뒀다고요.”(안나)

 

◆엘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영화산업에서 여성 인물의 낮은 비중과 편향적인 소비방식을 인식해 고안한 영화 성 평등 테스트. 이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다음의 세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 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대화 내용에 남성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