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눈먼 자들의 도시」, 「에브리 맨」 번역가 정호영 교수와의 대화

“번역은 알사탕의 껍질을 바꾸듯이 기계적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의미는 알사탕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있지도 않으며, 게다가 더운 여름날 녹아버린 것처럼 껍질에 들러붙기도 한다.” 「(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中)

자기 일의 고뇌를 이토록 문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람이 있다. 통번역대학원 정호영 교수(필명 정영목)다. 필명의 뜻을 물어보자 “오래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웃는 정 교수. 1991년 「미스터리 걸작선」을 시작으로 알랭 드 보통(Alain deBotton), 존 그리샴(John Grisham),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같은 작가의 글을 꾸준히 옮겨온 그는 우리나라의 ‘믿고 보는 번역가’다. 현재 연구년을 지내는 중임에도 필립 로스(Philip Roth)의 「Sabbath’s Theater」를 번역하고 있다는그를 지난 4일 교정에서 만났다.

“저희 때는 영문과만 가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해 기사 번역 아르바이트 같은 게 들어왔어요. 우연히 지인이 출판사와 연결해줘 책 번역을 하게 됐죠.” 정 교수는 30년의 활동 기간 동안 100권이 훌쩍 넘는 책을 독자에게 전달했다. 이 정도면 편집자의 ‘무한 신뢰’를 받는다고 할 만한데 그는 스스로 “논란이 많은 번역가”라고 칭한다. ‘잘된 번역’에 대한 그의 철학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 투’라는 단어가 욕처럼, ‘번역하지 않은 글 같다’라는 말이 칭찬처럼 쓰인다. 정 교수는 이렇게 가독성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번역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은 것일까요? 외국어를 우리말로 깔끔하게 보여주기 위해 깎아내린 부분 속에 많은 의미가 들어있어요. 언뜻 보면 어색해 보이는 문장에서 두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게 흥미로울 수 있거든요.” 그는 두 언어의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간극을 굳이 장애물로 보고 없앨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원작은 오리지널이고 번역은 파생품’이라는 생각을 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어요.오리지널은 완전하다는 오류죠. 하지만 텍스트는 읽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미가 형성되기 때문에 유동적인 실체예요. 원작 텍스트가 고정된 정답이고 번역은 이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하는 과정으로 보면 많은 문제가 생겨요. 원작도 결국 ‘언어’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기성품이나 정답이 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정 교수는 언어가 길을 건너오면서 생기는 여러 흔적을 잘 보여주고, 원래 언어가 표현하고자 했던 방향을 살리는 것이 더 풍부한 번역이라고 말한다. “번역이 굳이 걸림 없이 잘 읽히라고 하는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통번역대학원 정호영 교수.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통번역대학원 정호영 교수.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정 교수는 번역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능력이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 말한다. “번역에 있어 언어 감각은 반드시 필요한데,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거나 학식이 깊다고 얻는 능력은 아니에요. ‘말맛’을 잘 안다고나할까요. 쭉 읽다 보면 같은 ‘pain’이라도 어느 정도 강도의 고통인지, 어떤 성격의 고통인지 파악하는 능력인 거죠. 문장에 나와있지 않아도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듣는.”

정 교수는 셀 수 없이 많은 문장을 마주한 베테랑 번역가지만 아직도 매 문장이 고민이다. “모든 번역은 자기가 납득하는 만큼 나온다고 생각해요. 번역하기 위해 영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느 순간 언어의 기술적인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의미의 바다에 들어온 것이죠. 여기서부터는 번역가가 얼마나 깊이 들어가서 의미를 긁어 오는지가 관건이에요.”

그는 이토록 모호하고 어려운 문학 번역의 매력을 “규범과 비규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김소월)’ 혹은 ‘서으로 가는 달처럼(서정주)’이라는 표현을 보면 비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죠. 문학어의 핵심은 그거예요. 그 둘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우리말의 쾌감과 풍성함을 만드는 거죠.” 그는 문학 번역은 재미와 고역이 함께 있지만, 텍스트를 읽는 일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다.

번역가마다 자신만의 방식이 있지만, 그는 글을 옮기며 마주하는 해석과 의미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다. “저는 원작 작가와 많이 교류하는 편이 아니에요. 예전에 한 미국 작가의 책을 번역하는데, 제가 읽으면서 소설 안에서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작가가 실수했나 싶었죠. 그래서 고민하다가 작가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돌아온 답이 이랬어요. ‘당신 손에 있으니까 당신이 해석한 대로 써라.’” 글이 작가의 손에서 떠난 후에는, 그 의미를 작가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 교수는 이를 계기로 작품의 뜻을 이해하고 파악해 전달하는 것 또한 번역의 단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작가와 독자를 잇는 다리 역할에서 그는 늘 부담감에 짓눌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번역에 대한 논의가 ‘정확성’이나 ‘가독성’이라는 제한된 주제로만 이뤄지는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언어의 기술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태가 번역가에게 주는 속박, 이것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언어 자체의 의미와 차이를 좀 더 즐기면 좋은데, 기술적인 것만 논의하다 보니 이 다리가 현수교인지 아치교인지 들여다보거나, 그 다리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않는 것 같아요."

원고지에서 PDF 파일로 번역 방식이 바뀌어온 긴 시간 동안 번역을 했음에도 그 일의 의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정교수. 그는 아직도 자기 일을 설명하며 설레는 표정을 짓는다. “‘잘 된 번역’에 대한 하나의 기준에 자극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요. 번역가로서 목표는 항상 똑같아요. 번역을 잘하자는 거죠.(웃음)” 언어의 다름이 섞여 풍부함을 선사하는 그의 작품처럼, 자신의 사명을 설명하는 정 교수 뒤로 빨강, 노랑, 주황의 단풍이 한데 섞여 교정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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