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성 문제 있지만 개인간 동질감, 자기 확인 경험 등 이유로 인기 얻어

“MBTI ‘붐(Boom)’이 일더니 어느샌가 친구들끼리 모이면 MBTI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보통은 자기 성격 유형을 설명하고 상대방과 비교해요. ‘나는 P라서 계획을 잘 못 세우지만, F라서 공감 능력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넌 어떠냐’고 말하는 식이죠.”

MBTI 성격 유형 검사(MBTI 검사)가 학내에 유행이다. MBTI 검사는 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어로 사람을 16개의 성격 유형으로 분류한 심리 검사다. 본교 커뮤니티 사이트 이화이언(ewhaian.com)에는 MBTI 검사 관련 글이 올해 약 900개 이상 올라왔다. 같은 성격 유형끼리 온라인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일도 잦아졌다.

2일 재학생 90명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설문조사 한 결과, 조사 인원의 74%(67명)가 MBTI 검사가 유행이라 느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82%(74명)가 자신의 성격 유형을 알고 있었으며, 석 달 이내에 MBTI 검사 관련 대화를 한 비율은 80%(72명)였다. 이들에게 MBTI 검사를 즐기는 이유를 묻자 ‘성격과 잘 맞는다’, ‘공통의 이야깃거리를 찾게 된다’, ‘같은 유형끼리 동질감을 느낀다’, ‘나를 아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MBTI 성격 유형은 MBTI 검사 사이트 'www.16personalities.com'에서 발췌함. 

 

MBTI 검사는 열풍을 넘어 일반적인 스몰 토크(small talk) 주제가 됐다. 김수빈(약학·17)씨는 “이제는 많은 사람이 상대방도 이 검사를 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다”며 “처음 만난 사이에 어색함을 이겨내는 대화 소재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 유형을 이야기하면 상대방도 내 성격을 짐작하고 이해하게 돼 좋다”며 “운이 좋아 상대방도 같은 유형이라면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수단으로 이를 이용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MBTI 검사가 심리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성격은 16가지로만 분류할 수 없고, 재검사 시 점수의 일관성이 낮다는 이유다. 올해 발표된 미국 심리학회 학술지 ‘Trust in Name Brand Assessment: The Case of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유명한 평가의 신뢰성: MBTI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4주 후에 조사 참가자들의 MBTI를 재검사하자 3분의 1 이상의 실험 참가자는 성격 유형이 바뀌었다.

상담심리학 분야를 강의하는 안현의 교수(심리학과)는 MBTI 검사는 심리측정학의 기본 가정을 위배한 검사며, 성격은 연속적 차원이지 이분법적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MBTI 검사는 외향-내향(E-I) 지표, 감각-직관(S-N) 지표, 사고-감정(T-F) 지표, 판단-인식(J-P) 지표 등 각 성격 유형 지표가 일직선 양극에 놓여 검사 상 둘 중 자신의 성격과 가까운 지표로 성격이 결정된다. 예를 들면 외향-내향(E-I) 지표에서 외향성보다 내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 사람은 I라고 평가된다.

여기서 문제는 지표의 중간 지점이다. 지표가 놓인 일직선이 –10에서 10까지 범위면, 그 중간 지점은 0이다. 안 교수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0이라는 속성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각 지표가 나타내는 성격이 강하거나 약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성격이 없을 수는 없다는 의미다. 이런 식의 MBTI 측정 방식을 따르게 되면 정규 분포 종 모양이 두 개 생성돼 심리 측정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된다.

안 교수에 따르면 MBTI 검사가 이토록 유행하는 이유는 마케팅이다. 일반적으로 심리 검사는 심리학과 대학원 석사 이상부터 강의가 가능하다. 하지만 MBTI 검사는 심리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특정 교육을 거치면 강사로 일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은 MBTI 검사가 더욱 확산되도록 도왔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자신의 MBTI 성격 유형이 실제 성격과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측정 방식과는 달리 검사 문항 자체는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유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성격이라고 느낄만한 해석본도 영향을 미쳤다고 안 교수는 설명했다.

안 교수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이 검사가 만약 학문적으로 신뢰성과 타당성이 있다면 학계에서 교과 과정에 넣어 가르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논문이 적은 이유도 연구를 할만큼의 학문적인 가치가 없고, 비과학적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문항은 잘 만들었지만 측정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전반적인 성향을 알아볼 때 이용하는 것은 괜찮으나 상담실에서 심리 치료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 MBTI 연구소 안범현 교육부장은 심리학계가 MBTI 검사를 심리 측정 도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지만, 매뉴얼을 통해 그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인터넷 카페 등에 모여 MBTI를 공부하는 경우가 늘어났음을 알고 있다”며 “이 검사는 칼 가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유형론을 근간으로 하고, 신뢰성을 입증하는 방대한 매뉴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설문 결과 학생들은 신뢰도와 상관없이 MBTI 검사를 즐겨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학적인 검사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다. ‘검사가 심리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아냐’는 질문에 MBTI를 즐겨 한다고 명시한 인원의 40%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학문적 신뢰성은 없으나 성격과 잘 맞는다’, ‘재미있다’, ‘지금의 나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차지윤(사회·17)씨는 “개인화된 사회에서 나와 비슷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 MBTI 검사를 해왔다”고 밝혔다.

올해 대동제에서는 MBTI 검사를 비판하는 심리학과 교수의 눈을 피해 심리학과 학생들이 몰래 MBTI 유형별 스티커를 팔다가 결국 교수가 알게 된 웃지 못할 사건도 벌어졌다. 김유정(심리·17)씨는 “심리학과 학생들은 <심리학의이해> 수업 시간에 MBTI 검사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을 배우지만 여전히 MBTI 검사를 좋아한다”며 “MBTI 유형별 스티커도 일찍 완판됐다”고 말했다.

<문화사회학>을 강의하는 김성윤 강사(사회학과)는 학생들이 MBTI 검사의 문제점을 감안하면서도 빠져드는 이유가 4가지 효용점 때문이라고 예상했다. 재미, 자기 확인의 경험, 자기 고민의 객관화, 인간관계를 위한 실용적 지침이 그것이다. 김 강사는 “이런 현상은 현대인의 위기감과 관련이 깊다”며 “미래를 전망하기 어렵고, 자아정체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는 사회에선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자아 정체감에 대한 질문이 실존적 차원이 아닌 MBTI 검사라는 편의적 차원에서 제기되고 풀이되는 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MBTI 검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애초에 궁금했던 ‘나’와 ‘나의 미래’가 아니라, 나에 대해 더 알게 된 것 같다는 위안과 대인관계를 잘 맺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뿐이기 때문이다. 김 강사는 “개인화된 사회에서의 동질감이 왜 하필 MBTI 검사라는 유사 과학으로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인지 현대인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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