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11시 학관 레크리에이션홀에서 진행된 ‘여성의몸과창조적움직임’ 실습 수업현장에서 “서로의 공간을 채워보라”는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조별 ‘몸 움직임’ 활동을 하는 모습사진=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16일 오전11시 학관 레크리에이션홀에서 진행된 ‘여성의몸과창조적움직임’ 실습 수업현장에서 “서로의 공간을 채워보라”는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조별 ‘몸 움직임’ 활동을 하는 모습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기존의 틀을 깨고 대안적 가치의 새 틀을 만들고 싶다면

“여성학은 인간 존엄성과 평등 가치를 지향하며 기존 질서와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변화를 촉구하는 일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에 인정보다는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1호 여성학자’ 장필화 명예교수(여성학과)가 2016년 정년퇴임식 고별강연에서 전한 말이다. 이화를 빼놓고는 한국 여성학을 논할 수 없다. 본교는 1977년 국내 최초로 학부 과정에 <여성학> 교양과목 수업을 개설했다. 5년 뒤에는 아시아 처음으로 대학원에 여성학 석사학위 과정을 신설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여러 대학에서 여성학과가 사라졌지만, 본교는 오히려 여성 교육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며 세계 여성 교육의 리더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현재는 본교 연구기관인 한국여성연구원과 아시아여성학센터에서 국내·외 여성학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학부생을 위해서는 연계전공 ‘여성학’ 전공을 개설했다. 이번 학기 개설된 여성학 전공 수업은 19개다. <여성학>, <젠더와역사> 등 전공 자체 개설 강의를 제외하고도 물리학, 미술사학, 철학, 행정학 등 다양한 전공의 수업이 이수학점으로 인정된다. 복수전공생 유채린(심리·17)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본교에 진학해 여성학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유씨는 “개설 수업이 다양해 폭넓은 전공분야에서 여성학적 관점을 배울 수 있다”며 “여성학계에서 권위 있는 교수들이 강의하는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학부에서 여성학을 접한 후 대학원 진학까지 결심한 학생도 있다. 이수빈(여성학 전공 석사과정)씨는 단순한 관심으로 여성학 수업을 들었지만 점점 열정이 커져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복수전공으로 여성학을 택했다. 이씨는 “공부를 하며 세상이 조금씩 변하는 데 희열을 느끼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고민을 놓지 못한다”며 “높아지는 수요만큼 여성학을 학부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업 속으로: <성문화연구>

‘버닝썬 게이트’부터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까지. 연일 언론에서는 성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성매매, 성소수자, 낙태죄 이슈를 아우르는 것이 ‘성문화’다. 우리 삶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에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성문화에 대해 토론하며 여성주의적 분석을 시도하는 수업이 있다. ECC B142호에서 열린 김주희 교수(여성학과)의 <성문화연구> 수업에 16일 직접 들어가봤다.

이날 수업에서는 ‘지구화 시대 이주와 성’을 주제로 한 쟁점 토론이 진행됐다. 가장 먼저 화면에 비춰진 사진은 유모차를 끄는 여성과 옆에서 통화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한 또 다른 여성. “이 사진을 보고 어떤 정보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김 교수의 말을 시작으로 수강생들의 발표 릴레이가 이뤄졌다. 발표자들은 각자가 추측하는 사진 속 상황을 발표했다. 마이크가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수업 참여를 엿볼 수 있다.

“유모차 속 아기의 피부색과 통화를 하는 여성의 피부색이 동일하다고 보입니다. 유모차를 미는 여성의 피부색이 둘과 다른 것으로 보아 돌봄 노동을 하는 보모가 아닐까 싶어요.”

한 학생은 인종을 통해 유모차를 미는 여성이 보모임을 유추했다. 발표를 한 다른 학생들도 이에 동의하며 “단정 짓지는 못하지만 상황맥락상 통화 중인 여성은 사회적 일을 하는 여성 같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전통 사회에서 돌봄 제공자는 줄곧 ‘엄마’의 역할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이뤄지며 돌봄 노동의 관계가 상업화된 것이다.

수업은 돌봄 노동의 문제 외에도 성매매 중개시장의 팽창이 소비 욕구 및 시장 팽창을 가속화시키는 사례를 다뤘다. 본 수업은 가족주의의 재편, 성폭력 문제의 구성 등을 쟁점 토론의 주제로 삼아 열띤 논쟁의 장을 편다.

 

△수업 속으로: <여성의몸과창조적움직임>

“전부 누워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세요. 양팔과 다리를 쭈욱 펴시면서 다리를 들거나 바닥으로 내리셔도 좋고요.”

약 80명의 학생들이 대형 매트 위에 대(大)자로 누워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고 있다. 학생들은 교수의 진행에 맞춰 멋쩍은 기색없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자칫 요가 수업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여성학 수업의 초반 몸풀기 활동이다. 여성학과에서 개설한 교양 수업에는 무용학 전공과 융합해 여성학 이론을 몸의 움직임을 통해 체화하는 수업도 있다.

16일 한혜주 강사(무용과/여성학과)의 <여성의몸과창조적움직임> 수업은 학관 레크리에이션홀에서 실기 수업으로 진행됐다. 월요일 수업은 기존의 이분법적 젠더구성 방식에 대한 여성학적 이슈를 배우고 팀 토론을 진행한다. 목요일 수업은 소매틱 방식(somatic learning)으로 몸에 내재된 자율성을 발견할 수 있는 움직임 원리를 학습하고 학기 말 공연을 위한 팀별 공동 창작작업을 진행한다.

이번 학기 수업은 8개의 팀으로 구성돼 팀별 8~10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이 직접 만든 창작작품 공연을 준비한다. 한 팀에서는 공간 사용과 동선에 대해 열띤 회의를 하는가 하면 다른 팀에서는 우선 일어서서 움직여보는 식으로 작품 구성 단계를 밟았다. 공연 곡을 먼저 선정하기 위해 팀원 모두가 휴대전화 앞에 옹기종기 모여 귀를 기울이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의 몸은 사회적인 논의 주제면서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많은 씨름과 고통을 치루는 현장이기도 해요. 학생들은 이론과 실기 수업을 병행하며 자신의 몸을 재인식하게 되고, 몸의 자율성을 회복하면서 자신을 억압했던 학습된 태도, 행동, 자세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죠. 또 창작작업을 하고 무대에 오르면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하나의 실천방식을 제안해 보게 됩니다.”

수강생들이 준비한 학기 말 공연은 생활관 소극장에서 진행된다. 음악을 사용하는 팀도 있고 때로는 음악 없이 몸에서 나는 소리만으로 공연을 구성하는 팀도 있다. 수강생 류지원(사회·18)씨는 “처음에는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고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생소했지만 이내 몸에 대한 다층적인 인식과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탈코르셋 등 여성의 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시점에서 좋은 깨달음을 준 여성학 수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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