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집단 내 이견 있지만, 남성 중심적 사고 벗는데 의의

실천하는 페미니즘 탈코르셋 운동

본교에 재학 중인 ㄱ씨(사회·17)는 이번 여름방학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민낯으로 밖을 나왔다. 그전까진 학교에 가기 1시간 30분 전에 일어나 피부화장, 마스카라, 볼터치 등 풀메이크업을 하고 길을 나섰다. 그는 고등학생 때 청바지에 맨투맨, 셔츠에 바지 입는 걸 좋아했지만 대학생이 되고 오히려 화장하고 예뻐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압박이 원피스, 치마를 사게 했다는 것이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사회가 강요해왔던 여성상에 부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운동이잖아요. 근데 이론으로 배우고 얘기할 줄만 알았지, 내 선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조차 못한다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사회가 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탈코르셋 운동을 하게 됐습니다.”

ㄱ씨는 꾸미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긴 하지만 단지 편하기 위해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번 사회적으로 요구된 화장이나 옷차림이 잘못된 거라고 깨닫고 나니 기존에 내가 하던 화장과 옷이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다”며 “내 가치관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이 심했는데 탈코르셋을 시도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고 좋다”고 얘기했다.

주변 사람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ㄱ씨의 가치관을 알고 있던 친구들은 ‘잘했다’, ‘멋있다’, ‘네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고 ㄱ씨에게 말하기도 했다.

“탈코르셋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자기 선에서 하나씩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머리를 자르기 전에 못 놓았던 것들을 머리를 자르고 나서는 하나씩 내려놓았기 때문에 뭔가 하나라도 실천하다 보면 다른 것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탈코르셋을 강요하지 말라는 말도 모순이 있다고 생각해요. 강요가 아니라 탈코르셋에 같이 동참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면 좋겠다는 거죠. 이미 길거리에 성형외과 광고가 판을 치고 있는 지금 탈코르셋을 동참하기를 권유하는 이들보다 여성이 예뻐야 한다는 것이 더 강요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여성의 모습을 획일화하고 억압하던 제약들을 벗어던지는 움직임이 사회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그들은 화장을 지우고, 속옷을 벗어 던지고, 긴 머리를 싹둑 자르는 등 사회가 요구하던 미(美)의 기준을 벗어난다. 일명 탈코르셋 운동이다.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탈코르셋의 사전적 의미는 ‘그동안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한 외적 기준에서 벗어나자는 의미’이다. 하얀 얼굴에 빨간 입술, 긴 생머리에 날씬한 몸 등 여성에게 강요된 여성성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최근 사회에 급속히 퍼진 탈코르셋 운동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국내에서는 6월2일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10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 페이스북코리아의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였던 것과 탈코르셋이 비슷한 시기에 퍼졌다. 이들은 페이스북코리아가 남성 상의 탈의 사진은 삭제하지 않지만 여성 상의 탈의 사진은 음란물로 규정하고 삭제한 것에 차별을 느끼고 “여성의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페이스북코리아는 삭제했던 사진을 복구하고 사과했다.

이와 비슷한 운동이 외국에는 이미 있었다. 1968년 미국의 미인 대회인 미스아메리카(Miss America) 대회장 앞에선 속옷 태우기 운동이 벌어졌다. 2012년부터 영미권 국가에서는 SNS에서 남성 상의 노출은 허용하면서 여성 상의 노출은 검열하는 것에 반발해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캠페인을 진행했다. 여성들이 SNS에 가슴이 드러난 사진을 올리는 해시태그 운동이었다.

한국의 경우 올해 특히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8일 기준 인스타그램(Instagram)에는 탈코르셋을 해시태그 한 게시물이 약 1만 개에 달했고, 이들은 머리를 자른 모습이나 민낯, 쓰레기통에 담긴 화장품 등의 사진을 올렸다.

본교 내에서의 탈코르셋 물결도 거세지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 에브리타임(everytime.kr)엔 6월16일 ‘우리 함께 탈코르셋’이란 게시판이 신설돼 탈코르셋의 지향점, 탈코르셋 후기 등 탈코르셋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은 여성복의 치수가 지나치게 작다며 지적하기도 한다. 불꽃페미액션은 초등성평등연구회와 함께 유튜브(www.youtube.com)에 여성 청소년이 입는 교복이 비침이 심하고 아동복과 치수가 비슷하다고 지적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교복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다수 올라왔고, 이에 정부가 나서서 교복 개선을 시행하기도 했다. 

성인 여성 의류도 마찬가지다. 「성인여성의 인체지수변화 및 표준의류치수에 관한 연구」(송한미, 2017)의 연구 내용에 따르면 11개의 여성복 브랜드 중 거의 모든 브랜드의 베이직 슬랙스, 타이트스커트의 치수가 여성 평균 인체 치수보다 작았다. 가령 2016 제7차 한국이 인체 치수 조사(sizekorea)에 따른 여성 평균 허리둘레는 81.2cm지만, 11개 브랜드의 베이직 슬랙스 기준 허리둘레 치수는 73.5cm~75.6cm였다.

페미니즘 집단 내에서도 탈코르셋 운동을 두고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해서는 탈코르셋을 해야 한다는 입장, 탈코르셋으로 인해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진 것이라는 입장 등이 있다.

함인희 교수(사회학과)는 과거에도 여성의 화장을 둘러싸고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함 교수는 “두 입장이 각각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는 만큼 어느 입장이 옳으냐를 따지기보단 두 입장 모두 인정하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더 활발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이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남성 중심적 사고를 바꾸려 한 데에 큰 의의가 있다. 함인희 교수는 “모든 운동은 사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할 경우 지속할 수 있다”며 “탈코르셋 운동 역시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부터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한 ㄴ씨(사회·17)는 베이비핑크, 레이스, 꽃무늬,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가부장적 구조를 말로만 비판하면서 여성 인권을 증진하는 운동에는 참여를 안 한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던 ㄴ씨는 화장 코르셋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저를 맞췄던 것 같아요. 귀엽다는 게 뭔지 많이 생각했었거든요. 여성에게 귀엽다고 칭찬하고, 아기 취급을 하고,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더 어려져야 한다고 느끼는 거죠. 아기 옷처럼 작은 옷이 프리사이즈라면서 생산되는 것도 이런 취향을 갖도록 강요하는 것 같아요. 지금 시중에 나가봐도 여성 반바지는 다 짧아요. 핸드폰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예요.”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것이라는 ㄴ씨는 탈코르셋을 시도한 뒤 타인을 성별 이분법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연합동아리만 가도 나보다 머리 짧은 사람이 많지 않다”며 “외모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여성성을 제거해서 결국 외모에서의 성별 이분법적 사고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를 가졌던 ㄷ씨(국문·17)는 대학에 입학하고 주변 지인이 쇼트커트(short cut)한 모습이 멋있어 자신도 쇼트커트을 시도했다고 한다. 원래 탈코르셋 운동을 위해 자른 머리는 아니었지만, 지금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 건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머리를 잘랐을 때 아빠가 무척 놀라셔서 왜 머리를 그렇게 잘랐냐고 혼내셨다”며 “앞머리라도 자르면 여성스러워지지 않겠냐고 하셨는데 괜히 반항심이 생겨 앞머리를 자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중화장실에 갔을 때 어떤 할머니께서 저를 끌어내면서 ‘뭐야, 남자 아니야?’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냥 뒷모습을 보고 남자애라고 인식하는 거죠. 그리고 가끔 원피스를 입을 때는 ‘머리는 남자앤데 옷은 왜 여자애처럼 입었냐’고 말해요. 저는 그게 어이가 없어요. 여자냐 남자냐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거잖아요.”

ㄷ씨는 미용실에서 여성커트과 남성커트의 가격이 다른 것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남자가 머리를 자르면 8000원이지만, 똑같이 짧은 머리라도 여자가 머리를 자를 땐 10000원이다. 그는 “왜 가격 차이가 나냐고 물어봤더니 쓰는 샴푸가 다르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지적했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언제 여자가 될 거냐고 물어보는 말이에요. 제가 처음 숏컷을 했을 땐 그냥 주변 사람들을 따라간 거지만 지금은 하나의 탈코르셋이에요. 친구가 저한테 멋있다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감사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 뒤로는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더 짧게 자르기도 해요.”

탈코르셋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ㄷ씨는 “사실 탈코르셋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좀 더 이기적이면 되는 것”이라며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살아도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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