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0일,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이 본교에 도착했다. 미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호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의 전 세계적인 연구 성과 수준을 논의하고, 서로의 연구에 대해 설명을 주고받았다. 이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본교에 위치한 양자나노과학연구소(QNS)를 방문해 자문을 주기 위함이다.

본교에 위치한 QNS는 기초과학연구원(IBS)과의 협약을 통해 2017년 1월 설립됐다. 양자나노과학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안드레아스 하인리히(Andreas Heinrich) 석좌교수(물리학과, 기초과학연구원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연구소장)가 이 곳 QNS의 단장을 맡고 있다. 그 밑에는 양자역학 관련 연구주제를 수행하는 4개의 소그룹이 존재하며, 학생과 연구원이 한 팀이 돼 활동한다.

QNS의 연구 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학생과 연구원은 소속된 그룹 장의 지도를 받으며 연구 과정을 상의한다. 연구를 위해 개인적으로 논문을 읽기도 하고 세미나나 워크숍과 같은 특별 일정이 공지되면 참여한다. 저학년 대학원생의 경우 연구와 수업을 병행해야 하지만, QNS의 모든 일정은 오로지 학문적인 탐구와 실질적인 연구 위주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과연 어떤 연구가 진행될까. 연구소 소속 채중성 박사에 따르면, 그 동안 수행된 연구는 ‘미시세계에 대한 탐구’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물성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류가 어떻게 흐르는지를 측정하거나, 빛에 물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는 것 등이죠. 그러나 물질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물질을 이루고 있는 기본입자인 원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QNS에서는 원자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여러 파생 연구들을 수행합니다.”

안드레아스 하인리히(Andreas Heinrich) 양자나노과학 연구소장<br>​​​​​​​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안드레아스 하인리히(Andreas Heinrich) 양자나노과학 연구소장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기초적 학문기반을 닦기 위해 수행된 양자역학 연구는 양자컴퓨터라는 실용범위로 확대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기술이다. 각국 연구기관이나 대학뿐만 아니라 구글과 IBM,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정보기술(IT) 기업 역시 양자컴퓨터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QNS는 이런 양자컴퓨터 분야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기관이다. 하인리히 교수는 2017년 3월 홀뮴 원자 1개로 1비트를 안정적으로 읽고 쓰는 데 성공해 이론상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저장매체를 선보였다. 그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양자컴퓨팅이 실용화된다면 현재 하드디스크의 메모리 용량이 1,000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고, 작은 USB크기의 저장장치에 50만 편의 영화를 담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고 조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원자는 눈으로 보기도 힘들뿐더러, 작은 진동에도 쉽게 움직이곤 한다. 때문에 성능 좋은 장비와 실험에 최적화된 실험실은 연구에 있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소속 연구원들은 필요한 연구 장비를 직접 구축하곤 한다. 필요한 사양에 맞춰 상용장비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한 장비는 연구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구축한다.

“저희가 구축하고 있는 장비 중 극저온 주사형터널링현미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열역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저 온도인 절대온도 0K를 가장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장비예요. 이 장비를 사용하면 원자 조절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다만 냉장고와 STM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냉장고 가격만 해도 11억이라 나머지 부분은 저희가 따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전도체 탐침을 샘플에 접촉시켜 나타나는 양자효과를 측정하는 ‘주사터널링현미경’<br>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전도체 탐침을 샘플에 접촉시켜 나타나는 양자효과를 측정하는 ‘주사터널링현미경’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이어, 장비를 자체 제작하는 장점에 대해 채박사는 “연구 목적에 맞게 장비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다”며 “장비를 사용하는 연구자는 관련 기술도 익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에 최적화된 실험실 역시 곧 완성될 예정이다. 오는 2019년 2월 완공 예정인 연구협력관에는 연구소를 위한 장소와 시설이 마련된다. 이곳에 들어설 시설은 국내 최고이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조건을 갖춘 최첨단 연구실이다. 연구협력관을 설계하는 전 과정에는 연구소장 하인리히 교수가 참가했다.

“에어 스프링에 떠 있는 80톤의 콘크리트 블록을 지탱하는 아주 두꺼운 콘크리트 기초를 사용해 무진동 실험실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원자는 진동에 무척 예민하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유리 섬유로 이뤄진 보강용 철근으로 이루어진 콘크리트 블록을 통해 엄청난 정밀도로 표면상의 원자 및 분자의 자기적 특성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구실에는 학생과 연구원이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며 토론할 수 있는 칠판도 구비된다고 하인리히 교수는 웃으며 덧붙였다. 작은 시설이지만, 칠판을 연구실 내부에 신경 써서 마련한 것은 사실 QNS의 이념과 맞닿아 있다.

“모든 구성원은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혼자 몰두한다고 연구가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른 연구 집단이나 기관과 협업해서 연구를 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수행하려면 연구소 내부에서 이야기하는 훈련을 해야 해요. QNS는 본인의 지식과 연구를 많은 이에게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진짜 과학자’를 양성하고자 합니다.”

하인리히 교수는 연구소의 이념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본교에서 양자컴퓨팅과 관련된 새로운 수업을 내년에 개설할 예정이다. QNS와 이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인만큼 본교생에게 연구소에서 다루는 학문을 가르치며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는 것이다. 수업에서는 양자역학과 관련된 물리뿐만 아니라 기술을 다룰 예정이다.

“이대에서 QNS가 하고 있는 연구가 전형적이고 뻔한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학생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이곳 연구소에서는 인류 지식의 지평을 여는 가장 핵심적인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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