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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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5·18)에 참여했던 한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계엄군이 폭도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학살했던 1980년 5월의 날들 속에는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여성이 있었다. 장갑차처럼 역사가 밟고 지나간 광주민주화운동 속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 책 3권을 소개한다. 

 

△여성이기에 더 가혹했던 그날들    

  5·18 관련 피해자들을 조사하고 있는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안진 교수는 당시 여성들이 겪은 피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5·18을 다룬 영화 중에 ‘꽃잎’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계엄군 말단 병사들에게 집단 성폭력, 강간 등을 당한 여성의 이야기인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예요. 또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 중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이란 표현도 실제 피해 여성을 모티브로 쓰인 가사고요. 당시 광주의 여성들은 구타 이외에도 성폭력까지 감수해야 했기에 남성들이 당한 피해보다 훨씬 심각하고 가혹했으리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5·18 당시 많은 여성이 단순한 폭력 외에도 성폭력이라는 이중 피해를 당했다. 안 교수의 설명처럼 1980년 5월 무참히 짓밟혔던 여성들의 삶의 단편은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공선옥, 창비 출판, 20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시대 광주에 살던 주인공 묘자와 정애를 비롯한 여성들은 역사의 희생양이 됐다. 
  “정애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온몸을 달달 떨었다. 속옷이 벗겨져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숙자는 정애가 군인들에게 변을 당했다는 것을 직감했다.”(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p.115)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고 묻던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내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하고 묻던 여자의 노래는 어디로 갔을까. 여자가 남긴 노랫소리만이 빗물에 젖고 있었다. 노래에 빗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빗물은 노래와 한 몸이 되어 어디론가로 흘러갔다. 빗물을 타고 노래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묘자는 한참 동안 빗속에 있었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p.260)
  저자는 시대의 폭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회고하며, 아무 죄 없이 살았음에도 가장 많은 벌을 받았던 그들에게 용순의 입을 빌려 미안함을 전한다. 
  ‘내가 너한테 면회를 오는 것은, 너한테 속죄하고 싶어서란다. 내 생각에 너나 정애는 아무 죄 없이 살았지만 가장 많이 벌을 받는 것 같아서, 내가 사람들 대표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란다.’(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p.246)

 

△그럼에도 그들은 맞서 싸웠다

  1990년, 5·18이 일어난 지 10년 뒤에야 학자와 법률가, 시민단체 활동가들로 구성된 오월여성회는 여성 피해자들의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 나온 책 <광주민중항쟁과 여성>(5월여성 연구회, 민중사 출판, 1991)에는 광주항쟁으로 인한 육체적·심리적 피해와 후유증, 여성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 가정과 사회의 억압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계엄군의 시내투입 직후에는 공수부대가 시내 곳곳에서 닥치는 대로 여성들에게 무차별적 폭행을 가하거나 대검으로 찌르고 강간을 범하는 등 여성피해자들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다.”(광주민중항쟁과 여성, p.3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교수는 여성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참여에 주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많은 여성이 모든 분야에서 활약했어요. 동네 아주머니들은 커다란 솥을 걸어 밥을 지으면서 식사를 책임지고, 도청에서 앞장서서 행동한 여성들도 많고. 무엇보다 그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일반 시민들의 구술 녹취 증언을 들어보면 시민들이 대동단결해서 싸우게 하고, 정신적으로 지지하는데 여성들의 매우 큰 기여가 있었다고 해요.” 
  저자는 안 교수의 말처럼 광주항쟁 당시 수많은 여성이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 전면에 나섰음을 객관적인 고증을 통해 보여준다. 
  “가부장제와 성적 차별이 여성들의 삶을 제한하고 있는 상태여서 광주항쟁 당시의 폭력과 강간, 성적 소문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여성들을 이를 무릅쓰고 자신의 역할을 십분 발휘하였던 것이다.”(광주민중항쟁과 여성, p.5)
  “시위에 참여했던 여성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전반적으로 시위군중의 3분의1 가량이 여성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광주민중항쟁과 여성, p.38)
  “여성은 자연발생적 학생시위부터 전면적인 무장투쟁에 이르기까지 5월항쟁의 거의 모든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였다. 계급모순·민족모순·성모순이라는 3중의 억압에 처해 있는 여성의 5월항쟁 참여야말로 5월항쟁을 민중 주체의 무장봉기로 발전시킨 동력의 일부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광주민중항쟁과 여성, p.118)

 

△영원히 오월에 머물 그들을 잊지 말아야

  5·18 이후 38년이 흐른 현재, 시대에 짓밟힌 피해자들에게 그날의 고통은 아직 진행형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날의 기억을 지나간 역사 정도로만 여기며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한강, 창비 출판, 2014)는 이렇듯 어느덧 그 시절을 잊고 무심하게 5·18 이후를 사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소년이 온다, p.134)
  이어 저자는 여전히 5·18의 트라우마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희생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영원히 각인될 상흔과도 같은 일임을 환기시킨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소년이 온다, p.79)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소년이 온다, p.99)
  안 교수 역시 당시의 비극과 한 발짝 떨어진 채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5·18 광주민주항쟁을 더 이상 덮어두어서도, 잊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하는 존재인데 당시 국가가 다수의 국민을 학살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난 거잖아요. 광주 시민은 인간의 존엄성 및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 있다’는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웠던 거고요. 그것이 다시 일어나고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우리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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