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속의 강인함, 꽃으로 피어나다
한지 속의 강인함, 꽃으로 피어나다
  • 유현빈 기자
  • 승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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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전 김희경 작가

 

'Contemplation No.8'(2014)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Contemplation No.8'(2014)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김희경 작가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김희경 작가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한없이 얇고 부드러운 한지, 그 속의 질긴 생명력을 포착한 작가가 있다. 김희경(조소·79년졸)동문이다. 해움 미술관(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소재)에서 17일까지 진행되는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전에서 김 작가가 풀어낸 한지 속의 강인함을 엿봤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벽면에 걸린 큰 물결로 들어찬 네모난 모양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조 형식으로 조각된 굽이치는 푸른 물결이 프레임 가득 들어차있다. 화면 가운데에 자리 잡은 가장 큰 물결을 중심으로 외곽에 뻗어나가는 파동은 밝은 연녹색의 잔물결로 시작해 깊고 무거운 남색의 빛으로 물든다. 강한 굴곡으로 조형된 ‘Contemplation No.8’(2018)다.

  ‘Contemplation(관조)’ 시리즈는 작업실 앞 저수지를 산책할 때 김 작가의 마음에서 들린 ‘제어하라’는 음성에서 모티브를 받아 제작됐다. 그는 화면에 출렁거리는 물결을 통해 현실세계의 불안하고 불완전한 세계를 표현하는 동시에 프레임 너머로 초월의 세계를 조망했다. 

 

 

 

'Bloom No.58'(2011)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Bloom'(2016)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모든 작품은 폴리스틸렌 등의 합성매체로 조각한 몰드 위에 한지를 꼬아 만든 줄을 하나하나 붙여 만들어진다. 조소 분야에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던 한지를 조소 기법으로 조각한 것이다. 한지는 실의 입자가 다른 종이에 비해 길다. 종이를 이루는 입자들은 주변 입자를 더 많이 붙잡기 때문에 질기다. 한지에 풀을 먹이면 밟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나무처럼 단단해지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면 견고한 조각이 만들어진다.

  ‘Contemplation(관조)’ 시리즈와 함께 전시된 꽃 모양의 작품들은 ‘Bloom’ 시리즈다. 김 작가는 어려운 일을 겪던 중 자연에서 위로를 얻었다. 작은 식물에게서 느껴지는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했고, 그 중에서도 꽃에 집중했다. ‘Bloom’ 시리즈는 생명을 잉태하는 에너지를 담은 꽃의 창조력에 착안해 만들었다.

  김 작가는 한지 속에서 강인함을 느꼈다. 특히 소박하고 수수하면서도 강하고 질긴 종이의 질감 속에서 여성을 떠올렸다. 그를 포함한 수많은 여자들이 약해보이지만 잠재된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Bloom’ 시리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꽃의 에너지와 창조력이 한지의 속성이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이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활용해오고 있다.

 

 

 

 

'Bloom No.58'(2011)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Bloom No.58'(2011)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흰색과 진한 분홍색, 푸른색 등으로 색을 입힌 ‘Bloom’ 시리즈는 만개하는 꽃의 형태와 색감을 닮았다. 김 작가는 “꽃의 아름다운 형상 뿐 아니라 대자연의 에너지, 특히 태양과 대지, 바다에서 오는 넓고 깊은 에너지를 이 시리즈에 담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강렬한 색과 선명한 그라데이션으로 표현돼있다. 한지 작품에 아크릴 물감을 수채화 물감처럼 활용해 아주 엷게 수십 번 먹여 맑고 투명한 색을 냈다. 

  김 작가는 얼마 전부터 먹으로 작품을 만드는 데도 도전하고 있다. 그가 이번 전시 중 ‘Contemplation No.15’를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은 이유다. 김 작가는 먹에서 우주적인 공간감을 발견했다. 먹에서 아크릴 물감의 차갑고 가벼운 색을 넘어선 깊이감과 따듯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먹색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아우르고 품을 수 있는 색”이라고 묘사했다.

 

 

 

김희경 작가의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전시장 전경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김희경 작가의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전시장 전경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먹은 김 작가의 좌우명인 ‘밝고, 맑고, 투명하고, 따듯하게’를 닮은 재료다. 검은 색이지만 그 속에서 맑고 따듯한, 깊이를 가진 색이 표현된 것이다. 그는 먹색을 옅게 바를 때에도 맑은 색감을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는 “앞으로 남은 생을 먹의 활용을 연구하는 데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마음을 비우고 순수한 마음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만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그는 작품을 대하는 그의 자세만큼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맑은 기운을 받아 위안을 얻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길 바란다”고 그의 바람을 전했다.

 

 

 

 

 

'Contemplation No.8'(2014)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Contemplation No.8'(2014)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해움 미술관(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서 17일까지 진행되는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전은 관계적 자연과, 자연의 이라는 촉각 두 섹션에서 김희경, 성민우, 전경선 작가의 생태주의 미학(Ecological Aesthetics)을 보여준다. 전시는 인간과 비인간(non-human)의 구분,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non-living)의 구분에 가치론적으로 접근한다. 탈(脫)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은 자연과 상호 의존하는 존재다. 이는 생태의 감수성을 통한 공동체 회복을 추구한다. 전시에 참여한 김 작가는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미술관과 해외 유수 호텔에 작품이 소장돼있다. 현재 한국조각가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수원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