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들에게 ‘사회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의 문제’는 늘 접하면서도 내 삶으로 끌어들이기 힘든 존재다.

하지만 이화는 ‘세계인·전문인·이화인’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불공평한 대우에 당당히 맞서는 여성이 되기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남성중심사회에서 ‘주변인이 아닌 또 하나의 주류로서 새틀을 짜기 위해’여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문제에 몸을 담그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지난 22일(금) 여성민우회 윤정숙 공동대표, 조혜련(대학원 여성학과 박사과정)씨, 박이윤미(대학원 여성학과 석사과정)씨와 함께 ‘이화 안의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들의 공간으로서의 이화 조혜련(조):여성으로서 사회에 나가서 가장 많이 고백받는 문제가 성희롱이예요. 이화 안에서는 성희롱의 범위를 확장하는 쪽인데 남녀공학은 그런 것을 흡수하는 쪽이라 좀 느려요. 이번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친구가 있는데, 노래방에 갔더니 남자들이 자기를 껴안고 노래를 부르더래요. 대학이 무슨 진보의 상아탑이예요? 학회같은 곳에서도 성희롱은 많이 일어나요. 자신의 주장을 펴야 할 곳인데, 전혀 말이 안 통해요. 이화에는 그런 것을 나눌 수 있는 공감대가 있다는 거죠. 윤정숙(윤):내가 이대 출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분명히 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학교에서 현재의 삶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주류사회에 어떻게 도전할지. 너무 당위만 얘기하는 것은 문제예요. 옛날에 ‘이화인이여 민족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어머니가 돼라’는 정의숙 총장님의 말이 있었어요. 물론 다 좋은데 이제는 그런 모래성같은 자부심을 넘어서 남성주류사회에 인간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현실을 얘기해 줘야 해요. ▲이런 이화를 보는 사회의 태도 조:많은 여성들이 모여있는 이 공간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위협이 되는 것 같아요. 여성들의 상징으로 채워진 이대 앞, ‘내가 이대를 몇번 가봤는데 말이야∼’등의 발언이 왕년에 어떻게 놀았다라는 식의 표현이 되는 것들의 기저에는 미혼 여성들이 한 곳에 몰려있다는 상징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 공간을 최대한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새로운 판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다만 상품화는 되지 않았으면 하구요. 내 삶에서 나를 돌아봤을 때 그 삶에 녹아야지 유행으로 여성학을 듣고 마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여성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부담일 거예요. 내 삶은 이렇지 않은데, 그렇다면 싸워야 하는데, 한편으로 여성성도 가지고 싶으니까 왜곡된 여성성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나는 여성적 의식도 있고 평등의식도 있어’란 식으로 편한 위치에 있으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윤:이대는 분명 페미니즘을 만들어 나가는 곳이지만 양면성도 있죠. 그러니까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 이면을 왜곡시켜 치사한 방법으로 공격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대를 비판하고 여성부를 비판해요.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남성중심적이예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아카데믹하지 않고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조:이건 일종의 마녀사냥 같은 거예요.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고대사건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게 내가 4학년 땐데, 그것에 대한 언어를 만들어 간다는 게 여성들의 힘이예요. 1학년 때부터 대동제를 봐왔는데 그 때마다 기분이 나빴어요. 그래서 사람들과 얘기을 해봤더니 이건 성폭력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성기 삽입이나 신체적 접촉만을 성폭력으로 보기 때문에 그게 성희롱이라는 걸 몰라요. 성폭력의 개념규정부터 다른 거죠. 그 사건 처리 과정에서 학교가 많은 힘이 됐어요. 학교 선생님들도 여성이기 때문에 동력이 돼주실 수 있었죠. 원하는 만큼으로는 안풀렸지만 몇 명이 방학 중 유기정학을 받고, 사과도 받았어요. 사회적으로 성폭력의 개념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박이윤미(박이):이화에 대한 담론이 형성된 것이, 이화인 자체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여성이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뭔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남성들의 사우나 문화, 군바리 문화 이건 그냥 군집이예요. 하지만 남성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단합이라고 보죠. 여성들의 수다는 비생산적인 것으로 보면서 자신들이 정치 얘기 하는 것은 생산적이라고 생각하죠. 이런 것들이 여성 공간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막아요. 평생을 살면서 말 못할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면서, 그 여성들이 나를 공감해주는 것을 느끼면서 그런 것조차도 가슴 깊은 곳에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남성들은 수다나 떤다고 막아버리면서 여성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고 연대를 끊어요. 조:가부장제를 혼란시킬 수 있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니까 그것을 지키려는 남성들이 폭력적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90년대 들어 운동의 영역이 다양해졌는데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을 이기적이라고 말하지만, 해방돼야 할 여성이 자기를 위해 운동한다면 그건 나쁜 게 아니예요. 다만 이화에 대한 섭섭함이 있는데, 이화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은데도 이슈 중심으로 얘기한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비정규직은 거의 대부분 여성들인데 비정규직 문제에서 여성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거죠. 이화에는 자기 존재로부터 시작하는 운동이 없어요. 박이:자보를 보고 느낀 것은, 성폭력을 묘사하는게 너무 선정적이었다는 거예요. 옷이 어떻게 찢겨지고 벗겨지는지…. 같은 여성이 썼을텐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이화의 여성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조:연대의 힘, 자매의 힘이었으면 좋겠어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의 얘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여성운동이라든지 페미니즘 등 이미 규정지어져서 검열 당하고 있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것에 힘을 소진시키게 되니까 과감히 떨쳐버렸으면 좋겠어요. 윤:여성학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의 학문이라는 말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실천하고 변화시켜야 할 것들에 대해 여성학이 좀더 개입을 했으면 좋겠어요. 여성학이 비주류 학문이라는 것은 여성학에 대한 고정관념이예요. 제가 여성학을 한다니까 왜 여성학을 하냐는 분들이 많더군요. 여성학은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을 따와서 독자적인 연구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여성학이 또 하나의 주류로 영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해요. 조:덧붙여서, 지금의 경쟁 사회에서 자꾸 중심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 중심이 과연 누가 만든 것인지를 묻고 싶어요. 때로는 중심보다 주변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어요. 내가 주변에 있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언저리로서 활동했으면 해요. 박이:저 같은 경우 처음 여성운동을 시작했을 때 접한 사건이 연세대 익명게시판 성폭력 사건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후에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자보가 붙여지면서 감동 받았어요. 이런 걸 통해서 대중들에게 말을 걸고 연대 익게가 잠정적으로 폐쇄됐었거든요. 비록 내가 죽도록 운동을 해도 가부장적 사회가 언제 깨질지 모르지만 작은 것인데도 변화시키고 사과를 받아내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감동과 그 충만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좀더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자기가 불만을 느끼는 작은 것부터 싸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 길담배를 피우다가 뺨을 맞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그런 이화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진행·정리:보도여론부 /사진:홍정은 기자 cecil112@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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