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석조 부도·조선시대 돌 호랑이 등 역사적 가치 높은 유물 많아

작년 3월 이미현(중문·2)씨는 국제교육관 옆에 있는 호랑이 모양의 돌조각 위에 책을 올려놨다가 박물관 담당자에게 혼이났다.

“보물과 같은 유물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어떻게 해요?”라며 꾸짖는 담당자의 말에 이미현씨는 깜짝 놀랐다.

‘우리 학교 교정에 그렇게 귀중한 유물이 있다고?’ 학교 곳곳에 있는 많은 돌조각들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전통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물이다.

우선 보물로 지정된 가치 높은 석조각이 있다.

총장공관 뜰에 있는 보물 351호 석조부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총장공관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남산에 있는 정원의 나무를 인수하던 중 딸려온 것으로, 그 후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

939년(고려태조 22년)에 건립된 8각 사리탑인 석조부도는 경기도 양평 보리사터에 있던 대경대사의 사리탑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국가적 유물도 있지만 조선 시대 이름 없는 민중들의 작품도 여러점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한국 미술사에 있어 그 예술성이나 역사성을 기려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중 이미현씨가 단순한 돌조각으로 알았던 한 쌍의 돌 호랑이는 조선시대 유물이다.

이 돌 호랑이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다.

단종의 어머니였던 문종 비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와 단종을 죽인것을 원망하자 세조는 현덕왕후의 묘인 소릉을 폐릉시켰고, 그 능을 지키던 돌 호랑이만 남았다고 한다.

후에 도굴꾼들이 이를 발굴해 밀반출하려다가 문화재 관리국에 압수당한 것을 우리 학교 박물관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 소장하게 됐다.

현재 돌 호랑이는 이화교 복개 공사로 인한 손상을 우려해 천에 쌓여 있어 볼 수 없지만 내년 봄 박물관 증축 공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전시한다.

또 다른 민중 작품은 왕릉과 사대부의 묘역을 지키던 무인석·문인석이다.

박물관과 국제교육관 사이에 있는 무인석·문인석은 돌 조각상으로 개성이 장대한 석인에서부터 수더분하고 자그마한 석인까지 다양한 모습을 조각했다.

이 유물 또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시 발굴한 후 도굴꾼들이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압수된 것이다.

이후 경복궁 뒤에 방치하고 있다 석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우리 학교 박물관이 학교로 옮겨와 관리하고 있다.

이외에 대강당 주변에서 민중들의 생활에 쓰이던 우물 뚜껑, 석등개석과 범자문 7층 석탑 등의 유물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학교 곳곳에는 유물들이 숨어 있다.

그 동안 이러한 유물들을 단순한 ‘돌멩이’로 여기고 지나쳤던 이화인들, 내일부터는 학교 안의 돌조각을 눈여겨 보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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