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밥약 프로젝트’ 동행

후배 간 만남이 활성화되고 있다. 사진은 게시판을 통해 만남을 가진 A씨, 전하영씨, 김성신씨(왼쪽부터).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14일 오전11시 경 학교 정문 앞.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이화인 3명이 모였다. 올해 3학년이 된 ‘선배’ 김성신(커미·16)씨와 ‘새내기’ 전하영(기후에너지·18)씨, A(자율전공·18)씨다. 몇몇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뒤 그들은 한 퓨전 양식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속 학과도 다르고, 같은 동아리 소속도 아닌 이들은 커뮤니티 사이트 에브리타임(everytime.kr)의 ‘선배와의 밥약’ 게시판을 통해 처음 만난 선후배 사이다.

  최근 학과나 학부에 상관없이 초면인 재학생과 새내기가 만나 식사를 하며 친목을 다지는 모임 문화가 재학생 사이에 퍼지고 있다. 이른바 ‘선배와의 밥약’ 프로젝트. 밥약은 ‘함께 밥을 먹는 약속’의 줄임말이다.

  이 프로젝트는 허예현(국교·17)씨가 작년 11월2일 에브리타임에 올린 글에서 시작됐다. 글의 내용은 ‘학부로 입학한 정시생들이 학교에 소속감을 가지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 새내기들이 행복한 1학기를 보낼 수 있도록 밥약 모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는 것. 이 글이 큰 호응을 얻자 허씨는 7일 ‘선배와의 밥약’ 게시판을 개설했다.

  허씨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벗들이 좋은 인연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캠퍼스에 아는 얼굴이 보이고 서로 인사하기 시작하면 소속감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밥약은 ‘선배와의 밥약’ 게시판에서 성사된다. 선배가 간단한 본인소개와 함께 식사 가능한 시간을 적어 글을 올리면, 새내기 또는 재학생 후배들이 댓글로 신청해서 약속을 정하는 식이다. 선배의 예상보다 신청자가 많으면 선착순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글을 작성할 땐 이화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본인 학생증 사진을 첨부하는 등 나름의 인증 절차도 거친다. 7일 게시판이 열린 뒤 16일 현재까지 약 10일간 밥약 신청, 후기, 문의 등을 포함해 100건 이상 글이 올라올 정도로 관심과 참여가 높은 편이다.

  이렇게 성사된 식사 자리는 새내기에게는 학교생활에 관한 소소한 ‘꿀팁’을 얻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김씨, 전씨, A씨 등 세 명의 선후배가 만난 밥약 자리에서도 학교생활에 대한 질문과 조언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올해 자율전공으로 입학한 A씨가 “1박2일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던 오티가 하루만에 끝나고, 소속도 없어 아쉬웠다”며 고충을 토로하자, 선배인 김씨는 “학생이 소수인 학과와는 달리 대형 학과는 확실히 친구들을 사귀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며 “학과 동아리를 하면 그래도 친한 친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1학년 때 스펙 쌓겠다고 당시 활동하던 공연 동아리를 뒷전으로 했던 게 아쉬워요. 1학년 때는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많이 해 봐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김씨의 진심 어린 조언에 두 새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기도 했지만 대화가 끊기지는 않았다. 이들은 헤어지기로 약속한 시간인 오후12시30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날 식사비용은 김씨가 냈다.

  전씨는 “학교에 아는 선배가 한 명도 없어 약속 잡을 일이 없었는데, 에타에 게시판이 생겨서 기뻤다”며 “다음에는 언니에게 소개받은 맛집에 가볼 생각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선배와의 밥약’ 게시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홍숙영(방영·13)씨는 “학교나 학생회가 아닌 학생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나서 언니 동생처럼 교류한다는 점에서 이화만의 독특한 ‘자매애’를 엿볼 수 있는 훈훈한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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