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영업 종료... 마지막까지 이어진 이화인 발걸음

▲ 이화사랑김밥의 영업 종료 소식을 들은 학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매장을 방문하여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앞으로 8명만 더 받을게요, 김밥 이제 없습니다!”

  1월17일 오후3시45분, 평소 마감시간보다 이른 시각 이화사랑의 마지막 김밥이 팔렸다. 길게 줄을 섰으나 김밥을 사지 못한 이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자타공인 이화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했던 이화사랑이 문을 닫았다. 2002년 3월 이화·포스코관(포관) 지하1층에 문을 연 지 약 16년 만이다.

  영업종료 소식이 알려진 후 이화사랑은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몰려든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연일 붐볐다. 은예솔(경영·11년졸)씨는 “대학생 때 미팅 가기 전에 이화사랑에서 김밥을 먹고 파우더룸에서 단장했던 일, 공강 시간에 혼자 와서 빨간 소파에 앉아 책상에 엎드려 잤던 일, 김밥 먹으면서 컴퓨터 했던 일 등 추억이 정말 많다”며 “의자, 전등 하나까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기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이제 볼 수 없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그간 이화사랑은 학생들 사이에서 ‘포관의 안방’으로 불릴 만큼 이화인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었다. 사회대 수업을 중심으로 여러 강의가 열리지만 쉴 공간이 마땅치 않은 포관에서 이화사랑은 김밥과 함께 휴게공간이 제공돼 인기가 많았다.

  특히 이화사랑 대표 메뉴인 ‘참치김밥’은 이화인 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먹으러 올 정도로 유명했다. 과거에는 밥보다 참치가 많은 김밥에 마요네즈를 듬뿍 뿌려 먹을 수 있어 줄 서지 않으면 맛볼 수 없었고, 타대생과 외국인까지 많을 땐 하루 평균 1000명이 방문하기도 했다.

  이상규(의류·12년졸)씨는 “이화사랑에서의 재밌는 추억은 김밥을 먹는데 한 테이블에 앉은 네 사람이 모두 모르는 사람이었다”며 “많은 추억을 담고 있던 이화사랑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이화사랑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놀라 본교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는 김민주(교공·17년졸)씨는 “작년 불매운동 후 발길이 뜸했지만, 이화사랑의 개선을 위한 것이었지 추억마저 사라지기를 바란 건 아니어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화사랑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건 재학생과 졸업생만이 아니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온 한 교환학생은 “이화사랑은 처음으로 나를 이화인으로 느끼게 해준 곳”이라며 “재작년 이화에 온 첫 학기부터 이화사랑 김밥의 단골이 되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돼 무척 아쉽다. 이렇게 사라질 줄 알았으면 더 자주 들를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지난해 3월부터 벌어진 불매운동을 영업종료의 한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이화사랑 측은 내부 사정이라고 알릴뿐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화사랑에서 5년간 근무했다는 한 관계자는 “영업 종료의 이유는 복합적이라 한 가지만 꼽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2002년 단돈 1000원으로 시작했던 참치 김밥은 2014년 2500원으로 올랐다. 재료값이 오르다 보니 가격상승과 함께 참치 양도 줄어들었다. 예전보다 확연히 참치가 줄어든 김밥을 보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건 참치김밥이 아니라 ‘참치 향’ 김밥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불만이 이어지자 학생들은 “이화사랑이 초심을 잃었다”며 급기야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학생들은 가격 상승에 비해 품질이 저하됐다는 이유로 불매를 통해 개선을 촉구했고 이화사랑은 큰 타격을 입었 다. 당시 김밥 원재료 주문량이 평소의 3분의 1로 줄었을 정도였다.

  한편 이화사랑이 나간 자리가 어떤 공간으로 대체될지 관심을 끄는 가운데, 학교 측은 아직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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