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한 자매애…그 토대가 된 익명성, 이화인 단결력 높이다

  본교 시위에는 여성 연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이처럼 대규모의 여성이 한 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내는 풍경 자체가 그만큼 생경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본교 시위는 곧 여성 시위라고 볼 수 있을까. 혹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본교 시위는 어떤 관계를 가질까.

  19일 만난 홍찬숙 서울대 여성학과 교수는 본교 시위를 일반적인 여성 시위라 칭할 수는 없다고 봤다. 시위 주체가 모두 여성이긴 하지만, 운동을 진행하는 근본적인 목적과 주제 자체가 여성인권보다는 학생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 홍 교수는 그러나 이대 시위에서 드러난 끈끈한 단결력은 참가자 모두가 여성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혼성집단의 경우 최근 대학가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남녀 간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해 장기적인 결집이 어렵습니다. 시위를 위해서는 집단 내부 구성원끼리 똘똘 뭉쳐야 하는데 이미 그 집단 안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죠. 이에 반해 이대 시위의 경우 시위학생 모두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내부 갈등이 일어날 여지가 없고, 상호간 신뢰형성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본교 시위에서는 언니 왔다’, ‘언니 또 왔다등 다른 학교에서 볼 수 없던 내용의 문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두 번에 걸친 재학생·졸업생 총 시위에서 졸업생이 피켓에 적은 문구다. 또 재학생의 본관 점거를 지지하는 졸업생들의 심리적·물리적 지원도 남달랐다. 이처럼 자매를 강조한 표현과 연대의 배경에는 이화 고유의 페미니즘적인 분위기가 자리한다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과거에 대부분 남녀공학 학교가 정치사상으로서의 여성학을 연구해왔다면, 이대는 오래 전부터 페미니즘적인 자의식과 정체성이 매우 강했습니다. 학생들이 여성의 관점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던 셈이죠. 이런 페미니즘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이대생들이 동일한 감성을 토대로 단결하면서 자매애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언니 왔다와 같은 문구를 떠올려 활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페미니즘적 문화를 바탕으로 한 유별난 자매애는 본교 시위를 오래도록 지속케 하는 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립의 위험도 지니고 있다.“자신들의 연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켜버린다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 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그는 사태의 일반화를 강조했다. 지금의 사태가 본교만의 특수한 문제라는 지엽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논의의 프레임을 이화여대에서 사회로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대 사태에서 거론된 문제점은 비단 이대만의 특수한 사건이 아니에요. 대학교육과 학벌, 시장논리 등의 요소가 복잡하게 얽힌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죠. 교착 상태에 빠진 지금 상황을 더욱 발전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면, 학생과 대학 당국 간의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여기에서 나타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여기에 이번 시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해요. 조금은 문제 상황을 일반화시키고 틀을 확대해서 정서적인 대응을 하는 등 '()사회메시지를 전달할 때, 보다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고 이것이 또 다른 동력이자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시위 익명성, 주인의식과 자발성 유지 효과 낳아

  본교 시위의 중요한 키워드는 서로를 특정하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는 본교생 간 특유의 문화와 그 속의 익명성이었다. 사회심리학 서적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의 저자인 심리칼럼니스트 박진영 씨는 23일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익명성이 이대 시위에서 단결성을 촉진시킨 주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익명성의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는 책임감을 비교적 덜 수 있다는 점입니다. 행동의 결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은 행동을 시작하는 비용과 진입장벽을 많이 낮춰주죠. 또한 리더가 없고 대다수가 익명인 상태에서는 영웅적인 특정 개인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거나 공이 돌아가는 일도 없어서, 모두 자신이 이 일의 주인공이라는 주인의식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국 행동에 대한 책임을 공평하게 나눠 참여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시위 안에서 또 다른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막고 각자의 자발성을 유지시키는 효과를 얻었죠.”

  주동자가 없는데도 수천 명의 학생이 하나로 모여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박 씨에 따르면 익명성을 통해 개인으로서의 부담을 덜어낸 학생들은 ‘함께’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시위 초기 불안해하던 학생들이 점점 여럿이 모이는 과정에서 ‘이러한 형태의 시위도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하면서, 초기의 불안감을 극복하고 ‘함께’라는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위를 함께 진행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느낀 정서적 카타르시스나 ‘함께 싸우는 이화’ 등의 이미지로 새롭게 형성된 집단 정체성을 공유하는 경험 모두 단결을 촉진시키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더 나아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 낮은 진입장벽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개인이 비교적 쉽게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었고 그 의견에 열린 태도를 견지했기에 시위 참여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비교적 적었을 것”이라며 “이러한 시위 방식이 집단을 이루는 학생들로 하여금 많은 공감과 참여, 하나의 목적의식 등을 이끌어낸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칼럼니스트는 지금의 시위 방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지금은 앞으로의 시위 방향을 위해 더욱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시위가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지치게 되고, 그만큼 갈등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과 시위 모두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고 지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계속 시위를 장기전으로 갈 것인지, 장기전으로 갈 경우 구성원이 피로해지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의사결정 과정이나 실제 시위 방법 등에 있어 지금의 형태를 유지할 것인지 혹은 또 다른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갈 것인지 등에 대해 의사 결정과 방향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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