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는 어떻게 개인을 파멸로 이끄는가 … 「1984」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마시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희생과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국 현대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고 특정인 혹은 소수당의 독재를 조장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문민독재와 박정희 대통령에서 노태우 대통령까지 이어진 군부독재를 경험했다. 민중들은 3·15 부정선거, 5·16 군사정변, 유신정권 등의 독재에 대항해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 후 1987년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 요구가 수용되고, 10월29일 현행 헌법이 공포되면서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다. 

  독재, 전체주의가 개인을, 나아가 한 국가를 어떻게 파멸로 몰아가는지를 통렬하게 비판한 고전이 있다. 바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다. 「1984」는 1949년에 발표한 소설로, 전체주의가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1984」의 배경이 되는 ‘오세아니아’의 지배 사상을 가장 집약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세아니아는 당원들에게 ‘빅 브라더’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국가다. 
“자네는 개인이란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겠나? 세포의 쇠멸은 유기체의 활력을 의미하네. 손톱을 깎았다고 해서 자네가 죽는 건 아니잖은가?” (「1984」, p.369)

  “권력은 인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권력자가 원하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뜯어 맞추는 거라네.”(「1984」, p.373)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빅 브라더'가 이끄는 당이 숨통을 꽉 쥐고 있는 전체주의 사회 오세아니아에 살고 있다. 윈스턴은 당과 관련된 매체보도를 허위로 조작하고 재배포하는 일을 담당하는 진리(眞理)부에 소속된 당원이면서도, 그가 소속된 당에 강한 반감을 느끼고 있다. ‘빅 브라더’를 비롯한 상부 지도자들은 당원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걸어둔다. 가상의 적 ‘골드스타인’을 통해 당원들의 억압된 분노를 결집하고, 이를 ‘빅 브라더’를 향한 흠모와 충성으로 전환한다. 개인은 오직 국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없다. 

  ‘빅브라더’의 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기술은 ‘마이크로폰’과 ‘텔레스크린’이다. 집과 거리 곳곳에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이라는 감시 도구가 설치돼 있다. 오세아니아의 모든 국민은 말과 행동을 모두 감시받는다. ‘빅 브라더’의 사상에 반하는 자들은 반역죄로 처형되고 사상범들은 법을 관장하는 애정(愛精)부에 끌려간다. 

  이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건은 1960~70년대 중앙정보부가 한국의 유신정권에 반대해 민주화운동을 한 혁신계 인사와 언론인·교수·학생 등을 북한의 지명을 받은 간첩으로 몰아 간 사건이다. 인혁당 관련자 21명, 민청학련 관련자 27명 등 180명을 구속기소하고, 사형이 확정된 8명에게 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관련자 혐의에 대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데다 조사과정 중 고문 사실까지 밝혀져 민주화운동 탄압을 위한 유신정권의 용공조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1984」에서도 국가가 개인을 사상범으로 몰아 처형한다. 바로 오세아니아의 언어학자 사임의 경우다. 사임은 오세아니아가 당원들의 사상과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착수하고 있는 신어 개발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사임은 단지 그가 오세아니아의 체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된다. 
“머지않아 사임은 증발할 것이다. 윈스턴은 문득 그런 확신을 품었다. 그는 너무 지적인 인물이다. 모든 것을 지나칠 만큼 정확하게 관찰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당은 사임같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는 사라질 것이다”(「1984」, p.77)

△현재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감시사회」

  「1984」속 오세아니아 독재정권은 개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감시하고 억압해 힘을 얻는다. 「감시사회」는 독재나 전체주의라는 단어가 생소해진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우리는 과연 감시에서 자유로운가? 

  「감시사회」의 저자는 기술의 발달로 감시사회가 더욱 견고하고 치밀해졌다고 말한다. 전자주민카드의 도입 시도, CCTV 확대설치, 인공위성을 통한 위치 추적기술의 발전, 페이스북 등 온라인 서비스의 발전은 이런 개인정보 유출과 국가와 자본의 감시를 확장한다.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다. 바로 테러방지법이다. 테러방지법은 국가정보원이 테러 위험인물의 출입국·금융거래 정지 요청 및 통신이용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주요인사 및 국민들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김광진 의원은 2월23일 “테러방지법은 테러 방지라고 하는 것을 빌미로 초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가정보원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책회의의 장(長)이 대통령을 통해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해 심각한 사생활 침해 우려를 자아낸다”고 말했다.

  “기술,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전자감시가 가능해집니다. 감시의 각종 물리적 제안이 극복되죠. 감시가 예전처럼 학교나 감옥, 작업장 같은 폐쇄적이고 고정적인 물리적 공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CCTV를 설치해놓으면 시각적인 한계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감시사회」, p.62)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현시점에서도 감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감시는 대다수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감시의 방향도 과거의 정치적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편리함을 위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심지어는 구글 검색 등 기술의 편리함을 영위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나의 프라이버시를 내비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간에 의한 감시가 위험한 이유는 이러한 감시가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시는 교묘하게 이뤄져요. (중략) 지금은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서 이루어진다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몰라요. 견제를 받지 않은 권력은 횡포를 부리기 마련입니다.”(「감시사회」, p.82) 

△ 참된 민주주의를 위한 지침서 …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대한민국이 실질적 민주주의를 수립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진 샤프(Geen Sharp)의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는 독재사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가기 위해 ‘비폭력’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비폭력 민주주의 운동을 주장하는 저자가 민중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비폭력 행동을 통한 전략적 싸움이다. 저자가 비폭력 민주주의 운동을 중시하는 것은 폭력보다 도덕적으로 더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폭력을 사용해 독재자들에게 맞선 대중은 대다수의 경우 독재자의 야만적 탄압과 대면한다. 저자는 폭력 투쟁이 비폭력 투쟁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작고, 성공해서 민주적 체제가 수립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독재정권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폭력적인 독재자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을 반대하며 “폭력적인 수단을 택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압제자가 우위를 누려온 바로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것”(「독재에서 민주주의로」, p.30)이라고 말한다.

  진 샤프는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건강한 민주사회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화 세력의 지도자들은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한 민주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민주정치 체제가 사람들에게 다양한 전망과 적절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폭력 운동을 통해 얻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지는 장기적 효과는 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앞으로 다가올 문제를 사람들이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민주사회의 대중들은 그들이 앞으로 당면할 수 있는 정부의 권력 남용과 부패, 특정 집단에 대한 박해, 경제적 불평등 등에 대해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는 곧 그들이 독재정권에 시달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행동 방침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건설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투쟁으로 얻은 자유는 항구적입니다”(「독재에서 민주주의로」,p.138)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