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년 홍콩 체류 시기의 장아이링
▲ 김일성 사망 소식을 알리는 신문을 들고 있는 장아이링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여류작가 장아이링(張愛玲, 1920-1995)은 죽기 1년 전인 1994년 6월 『대조기(對照記)―옛 앨범을 보다』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작가가 보관하고 있던 옛 사진을 골라 편집하고 거기에 설명을 덧붙인 자전적 성격의 사진첩이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사진첩에서 창조력을 유지하며 강인함과 고집 그리고 긍지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초판본 『대조기』의 마지막 문장은 장아이링의 이러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일생을 압축하여 표현해주고 있는 듯하다. “영원히 살 것 같은 길고도 긴 어린 시절은 상당히 유쾌하게 하루를 일 년처럼 보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 동감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후 굴곡 많은 성장기 역시 아득히 머나먼 길에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온통 황량함만이 가득하였으며, 단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부인연만이 색채가 선명하여 내게 큰 만족을 주었고, 그래서 여기에 비례가 맞지 않은 편폭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 후 시간은 속도를 더해 빨라지고 빨라져서 번현급관(繁弦急管)이 급관애현(急管哀弦)으로 바뀌었고 급경조년(急景凋年)이 벌써 멀찍이 내다보인다. 한 줄로 연이어진 몽타쥐는 아래로 이어지면서 점차 엷어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유년기, 성장기, 중년과 말년 시기를 요약하듯 서술하면서 독자들에게 자기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 자화상을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엷어지는 ‘몽타쥐’로 비유하였는데, ‘기울어져가는 조락의 말년[急景凋年]’에 이르면 ‘몽타쥐’의 끝자락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그런데 1994년 말 『대조기』의 재판본을 펴내면서 장아이링은 거기에 「발문」을 덧붙이고 새로 사진을 하나 더 실었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 실은 이 마지막 사진이 북한의 김일성 사망 소식을 알리는 헤드라인뉴스의 신문을 들고 찍은 작가 자신의 사진이라는 점이다. 이 사진은 원래 타이완(臺灣)의 『중국시보(中國時報)』로부터 문학상을 받을 때 신문사에 보냈던 작가의 근영(近影)이었다. 작가는 ‘주석 김일성이 어제 갑자기 사망하다’라는 뉴스를 표제어로 인쇄한 중국어 신문을 말아 왼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진 속의 작가는 흰색 망사 조끼를 입고 겉에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꽃무늬가 있는 양모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다. 스웨터는 목이 V자로 크게 패이고 목둘레와 소맷자락에 흰색테두리를 둘렀으며 그녀의 희끗희끗한 곱슬머리는 풍성하게 부풀어 있다. 그리고 그날 발행된 예의 중국어신문을 말아 왼손에 들고 오른쪽 어깨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놓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사진은 광고를 찍듯이 작가가 스스로 연출한 것이 분명한데, 검은색과 흰색이 배합된 옷차림, 죽음을 알리는 신문을 말아 들고 있는 모습 등을 고려할 때 스스로 저승사자로 분장한 것이 아닌가!

  작가는 가까이 다가온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일까? 작가는 「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분과 함께 동일한 헤드라인 뉴스를 보니 ‘하늘가에서 이 시각을 공유하는’ 즉각감(卽刻感)이 든다. 신문을 손에 들고 있으니 마치 유괴범이 유괴 당한 가족에게 보내는 사진처럼 그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작가는 억지스런 비유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지은 짧은 시를 한 수 인용했다. “사람은 늙으면 누구나/ 시간의 포로가 되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은 나를 아직 잘 대하지만――/ 언제든지 인질을 죽일 수 있다./ 일소(一笑)할 뿐이다.” 장아이링은 이 사진을 통해 독자들과 동일한 시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동시에 김일성 사망이 ‘1994년 7월 8일’이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그 사진을 찍은 날짜를 확정해주고 있다. 더욱이 갑자기 전해진 김일성 사망 소식에 시간의 포로인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깨달았을 때, 그녀 자신에게도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인생의 화려함도 지나가버렸고 인생의 창량(蒼凉)함도 경험한 바 있는 그녀로서는 칠순이 넘은 이 시점에 욕망도 미련도 없이 어느새 다가온 죽음을 담담하게 마주한 것이다. 장아이링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그러면서도 언뜻 지나가버리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쌀쌀한 가을 저녁 해질 무렵, 바닥에 온통 생선 비린내와 회백색의 갈대 껍질과 찌꺼기로 가득한 시장 안으로 한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실력을 뽐내며 손잡이에서 손을 떼는 묘기를 부리며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말 못할 경이로움에 사로잡힌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어쩌면 그처럼 손을 놓을 때가 아닐까?”(「옷을 갈아입다」) 그런 생각이었기에 김일성의 죽음 역시 ‘일소(一笑)’에 부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진은 작가가 독자들과 동일한 시간을 공유하며 현재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고, 동시에 시간의 포로인 인간의 비극적 운명과 그에 대한 달관을 표현하고,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감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가 스스로가 저승사자로 분장한 것이라면,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작가는 왜 굳이 김일성의 죽음을 알리는 저승사자로 분장한 것일까? 1952년에 사회주의 중국의 대륙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홍콩을 거쳐 미국에 정착함―장아이링에게는 북한 체제를 이끌어온 김일성의 죽음이 예사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장편소설 『적지지련(赤地之戀)』을 창작한 바 있는 그녀로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냉전체제하의 극한적 이념대립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때, 그 당사자의 한 사람인 김일성의 죽음은 그녀에게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었다. 뿌리는 중국 대륙이지만 그곳을 떠나왔고 타이완을 왕복해왔지만 거기에도 안착할 수 없었던 장아이링에게 미국 이민자의 실향민적 정서가 더해지면서 북한 체제를 이끌어온 김일성의 사망 소식은 이념대립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다시금 불러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념추구의 허망함을 드러내고 극한적 이념대립의 종식을 기대하면서 스스로 저승사자로 분장하여 김일성의 죽음을 알리는 전갈을 들고 나타난 것은 아닐까. ‘일소(一笑)’는 표면적으로는 시간의 포로인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달관의 태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이념추구의 허망함을 일깨우고 이념대립을 극복하려는 작가의 내면적 기대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장아이링은 자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을 서술하면서 “그들은 비록 연약한 범인(凡人)에 지나지 않아 힘을 가진 영웅에 미치지 못하지만, 바로 이런 범인이 영웅보다 이 시대의 총량을 대표할 수 있다고 믿는다”(「나의 문장」)라고 말한 바 있다. 역사와 영웅의 서사를 거부하고 일상과 범인의 서사를 추구했던 그녀의 문학적 주제에 비춰볼 때 김일성의 죽음은 자신의 문학적 주제를 방증하는 구체적인 실례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김일성이 아무리 북한 체제 내에서 영웅처럼 떠받들어져왔다고 하더라도 시간의 포로로서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으니 그는 범인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장아이링의 이 마지막 ‘몽타쥐’ 사진은 인간의 비극적 운명과 작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감, 더 나아가 영웅서사의 거부와 이념대립의 극복에 대한 기대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은유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장아이링이 당시 타이완의 국민당정부나 중국 대륙의 공산당정부 모두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그녀의 일관된 탈정치적 입장과 선악의 이분법적 대립을 부정하는 그녀의 문학적 주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1976년 자전적 작품 『소단원(小團圓)』을 집필하고 있을 때 더딘 진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은 참고할 만하다. “국가주의의 제재(制裁) 때문에 줄곧 쓸 수가 없어요.……제가 타이베이(臺北)에서 천뤄시(陳若曦)와 한 대담은 국민정부에 대한 나의 생각이 줄곧 유녀시절과 청년시절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지, 결코 친공(親共)은 아닙니다. 근래에는 단일민족주의(monolithic nationalism)가 좀 느슨해지고 있다고 느껴져서, 예컨대 영화에서 영미 스파이가 애국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마음에 품고 있던 한 가닥을 표현했던 것인데,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소단원·머리말』) 국민당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이 곧바로 친공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장편소설 『적지지련』(1954년)에서처럼 반공의 이미지를 그려낸다고 해서 곧바로 국민당정부를 승인하는 것도 아니다. 장아이링에게 글쓰기의 곤혹은 현실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국가주의와 같은 정치적 이념에서 유래한다. 정치적 이념에 대한 거부가 원초적 본능처럼 작가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에 이념대립의 극복이나 그 초월에 대한 기대가 『적지지련』의 작품에서도 어둠속의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것이다. 중국 지원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소설 속 주인공 류취안(劉?)이 반공 포로로 분류되지만 결국 사회주의 중국 대륙 행을 결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반공 포로가 돌아가면 분명 비참한 보복을 당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동안 잘 배운 덕에,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군중에게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한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지만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장아이링이 기대하는 이념대립의 극복은 어떻게 시적 표현으로 형상화될 수 있을까? 그녀의 「낙엽의 사랑」이라는 시를 보자. “큼직한 노란 낙엽이 떨어지네./ 천천히, 바람을 스치고,/ 맑은 푸른 하늘을 스치고,/ 날카로운 햇살을 스치고,/ 회색빛 양옥집의 속된 꿈을 스치네./ 떨어지다 중도에야,/ 알아차렸으니 낙엽은,/ 자기 그림자에게 입맞춤 하려는 것을./ 땅 위의 그림자는,/ 맞으러 튀고 또 튀어 오르고,/ 너울거리며 춤을 추듯이./ 낙엽은 최대한 속도를 늦추어,/ 중년의 초연함을 가장하는데,/ 하지만, 바닥에 닿는 순간,/ 금빛으로 물든 손바닥이,/ 조심스레 검은 그림자를 감싸네,/ 마치 귀뚜라미를 잡는 듯이―/‘아, 여기에 있었구나!’/ 가을 햇살 속/ 시멘트 바닥 위에,/ 조용히 함께 잠드네,/ 낙엽과 그의 사랑이.” 장아이링은 이 시를 짓고 나서 무척 만족해했는데, 낙엽이 자기 그림자와 완전히 조우하여 자기동일성을 완성하는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장아이링 문학에서 드물게 보이는, 현실의 대립이 화해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장아이링은 “더럽고, 복잡하고 말로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중국의 낮과 밤」) 속에서 잠시나마 대립의 극복과 화해가 달성되는 순간을 ‘낙엽의 사랑’으로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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