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대를 막론하고 이상세계를 꿈꾸며 살아왔다. 이상세계는 사람들의 신분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현됐고 다양한 예술작품의 주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박물관)은 14일(수)~7월31일(목)까지 인간이 꿈꿔 온 이상세계에 대한 전시인 ‘미술과 이상’을 개최한다. ‘미술과 이상’전에서는 이상을 주제로 한 동아시아의 전통미술과 한국 현대미술을 ‘동아시아 미술 속의 이상주의’와 ‘현대미술, 이상을 담다’라는 두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본교 박물관 소장품뿐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Leeum, 고궁박물관 등에서 대여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기획전시관과 근현대미술전시관에 걸쳐 이상세계를 나타내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전시를 총괄한 오진경 관장은 “이번 전시가 과거와 현재의 공간을 초월해 이상향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먹으로 그린 옛 선인들의 이상세계

  기획전시관에 마련된 ‘동아시아 미술속의 이상주의’전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일본, 중국, 티베트 등 동아시아 국가의 전통미술 속에 묘사된 이상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전시에서는 동아시아 국가에서의 전통적인 이상세계를 ▲왕조의 번영과 평화를 염원하는 군주의 이상 ▲학문과 예술에 대한 선비의 이상 ▲종교에서 제시한 이상으로 분류해 보여준다.

  군주의 이상을 보여주는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과거 임금이 집무 시에 입던 붉은 곤룡포가 전시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국왕의 집무 공간을 장식했던 병풍과 서예작품, 의례에 사용됐던 용품과 왕의 행사를 담은 기록화 등의 예술작품을 통해 군주가 원했던 태평성대의 이상을 느낄 수 있다. 황제가 각국의 사신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장면을 그린 ‘왕회도병풍’은 본교 박물관 소장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조선은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건국했으나 외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는 국가의 번영을 꿈꾸며 가상의 현실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 외에도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 등을 그린 ‘일월오봉도 육곡병풍’, 왕이 성균관 유생들에게 강의하는 광경을 그린 ‘성균관친림강론도’ 등을 볼 수 있다.

  선비의 이상을 담은 제2전시실에서는 산수풍경이 그려진 각종 도자기와 회화에서 고결한 선비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매화를 부인으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는 북송 시대 인물 임포를 다룬 ‘고산방학도’는 임포가 학을 놓아주는 모습을 담았다. 학을 사랑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선비의 자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중국 송나라 학자인 왕진경이 소동파를 비롯한 유학자, 승려, 도사를 서원에 초대한 모임을 그린 ‘서원아집도’는 자연 속에서 음악을 즐기며 토론하는 선비들의 이상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다.

  제3전시실에 들어서면 도교의 복식인 도교 사제복이 전시실 중앙에서 화려함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신성, 낙원에 깃들다’는 주제를 가진 제3전시실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세계인 극락과 도교의 이상세계인 선계를 주제로 한 회화가 주를 이룬다. 이 전시실에서는 도교에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열매와 동물이 그려진 선계를 담은 ‘십장생도병풍’과 아미타여래가 그려진 ‘아미타설법도’등을 통해 불교에서 원했던 이상세계를 볼 수 있다.

△현대적 요소로 재해석된 현대인의 유토피아

  이상세계를 향한 열망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미술전시관에서는 현대인이 꿈꾸는 이상향을 담아낸 ‘현대미술, 이상을 담다’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는 이상향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열망을 표현한 한국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전통과 현대를 혼합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서은애 작가의 ‘청산은거유락도’는 옛 선인들의 이상이 담긴 전통 산수화를 현대인들이 꿈꾸는 낙원으로 재치 있게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는 사람이 현대 산업의 산물인 로봇에 올라타 산수를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어 이상향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외에 색색의 레고를 캔버스에 붙여 산수풍경을 표현한 황인기 작가의 ‘플라 마운틴 12-21’은 현대적 조형 요소로 전통적 이상세계를 그려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제2전시실로 통하는 전시실 통로에는 특별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윤애영 작가의 ‘시간 정원’은 통로 전체에 푸른 빛 작은 전구를 전시한 설치 미술이다. 관람자는 온몸을 에워싸는 푸른빛 정원에서 다른 세상에 온 듯 몽환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시간 여행을 하듯 통로를 지나면 영상, LED조명 등 현대 기술이 접목된 작품들로 구성된 제2전시실이 나온다.

  전통과 현대가 합쳐진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제1전시실과 달리 제2전시실에는 현대적 조형 언어가 구현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제2전시실에 들어서면 LED조명을 사용해 재미있게 이상세계를 표현한 작품인 문지연 작가의 ‘카이로스’가 눈길을 끈다. 문 작가는 하나의 화면에 두 개의 시공간을 공존시켰다. 이 작품은 캔버스의 앞면과 뒷면에 모두 아크릴 그림이 그려져 있고 캔버스 안쪽에는 LED조명이 설치돼 있다. LED조명이 꺼졌을 때는 전봇대와 전깃줄만 보이던 삭막한 풍경이 조명을 켜는 순간 노을이 지는 지평선에 나무와 사슴, 새가 있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뀐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아름다운 찰나의 이상향이 겹쳐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거대한 이상세계가 아닌 작가 자신이 원하는 자기만의 이상세계를 구현한 작품도 있었다. 원성원 작가의 ‘Dreamroom-Seoungwon’은 한 사람이 열대우림 속에 집을 꾸며놓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앉아있는 독특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 준다.이 작품은 현실 공간인 기숙사를 배경으로 열대우림, 시원한 음료수 등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대상을 정해 수천 컷의 사진을 촬영해 합성해 제작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독일 유학시절, 좁은 기숙사 방에서 추위와 싸울 때 열대우림의 나무로 우거진 숲 속을 상상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했다. 작가는 기숙사에서 추위를 견디던 창작 당시의 현실과 대조적으로 작품에서 푹푹 찌는 더위에 지쳐 민소매에 짧은 바지 차림으로 냉장고에 기대 시원한 음료수를 들이킨다. 작품 속의 작가의 모습을 통해 그가 추운 기숙사에서 꿈꿨던 이상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Dreamroom-Beikyoung’은 수영을 하지 못했던 친구를 모티프로 원 작가가 만든 작품이다. 친구의 방과 바다 사진을 합성해 친구가 방에서 수영하는 상상의 공간을 담았다.

  한편 본교 박물관 기증전시실에서는 본교에 28년간 재직한 오용길 교수의 기증 작품들을 토대로 오용길 기증특별전 ‘마음이 머무는 풍경’전도 진행된다. 이 전시는 오 교수가 본교 박물관에 기증한 31점 중 약 20점의 회화 작품을 제작 시기와 작품 주제 별로 선별해 그가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28년 간 이화에 몸 담으며 이화교정의 풍경을 정감 있게 묘사해낸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된 작품 중에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본교의 운동장이나 건물을 그린 회화도 찾아 볼 수 있다.

  오용길 기증특별전 ‘마음이 머무는 풍경’전은 14일(수)에 개막해 내년 1월31일(토)까지 열린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