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소리의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구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소리의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구나
  • 조윤진 기자
  • 승인 2013.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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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대 강희준씨, 본교 진선아씨, 홍민정씨, 김기리씨, 이새날씨(왼쪽부터) 제공=진선아씨
▲ 홍민정씨가 11월28일 정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관객에게 퍼포먼스 작품 ‘쏘닉 블로썸(Sonic Blossom)’를 선보이고 있다. 김나영 기자 nayoung1405@ewhain.net


  “노래를 선물해드려도 될까요?”

  하늘거리는 검은 가운을 입은 여성이 나무의자가 놓인 전시 공간을 지나던 관람객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관람객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성이 관람객을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그의 눈을 보며 슈베르트의 독일 가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전시관에는 약 4분간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홍민정(성악‧07년졸)씨는 그렇게 대만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인 리 밍웨이(Lee Mingwei) 작가의 퍼포먼스 작품 ‘쏘닉 블러썸(Sonic Blossom)’에 출연했다.

  홍씨는 11월12일~2014년 2월28일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연결-전개(Connecting &Unfolding)’ 전시에서 리 작가와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기리(성악·12), 이새날(성악·09), 진선아(성악·12)도 번갈아가며 노래를 선물하는 여인이 된다. 퍼포먼스로 관람객과 소통하는 이화의 퍼포머(performer, 공연가)를 11월28일 만났다.
 
  인터뷰를 하러 모인 이들은 미술관에서 퍼포먼스를 할 때의 신비로운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네 명의 학생 퍼포머는 검은 가운을 입고 관객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 노래를 선물하던 엄숙한 성악가가 아닌,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으며 3주간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들은 퍼포먼스 작품을 진행할 공연가를 뽑는 오디션을 통해 처음 만났다. 정복주 교수(성악 전공)의 제자인 홍씨가 작년 여름 열린 ‘티노세갈의 작품전’에 참여한 경험을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 측과 연결이 돼 오디션을 진행하게 되면서 ‘작가와의 직접 오디션’을 거쳐 모이게 된 것이다. 한양대 강희준(성악·13)씨를 비롯해 이때 모인 5명의 퍼포머 중 4명이 본교생이었다.

  이번 퍼포먼스 작품은 ‘선물’을 주제로 리 작가가 구상한 것이다. 이때 선물이란 노래로, 퍼포머가 관객과 노래를 직접 선택하고 선택한 관객 한 명만을 위해 노래한다는 점에서 주제를 실현한다.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순간, 네 명의 이화인은 작품이 된다. 이들은 대기실을 나오고 작품 전시 장소까지 걸어가 노래를 시작할 때까지 걸음과 손동작, 표정 하나 하나에 모두 신경을 쓴다. 자신이 해석한 작품의 의미를 관객에게 최대한 전달하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관객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일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퍼포먼스 중 제 행동이 모두 작품이라는 생각에 무게가 느껴져요. 일부러 특정한 모습을 유도하려 해도 어느 순간 제 본연의 모습대로 퍼포먼스를 하게 되죠. 결국 작가의 작품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마저 작품의 일부라 생각해요.”(진선아)

  퍼포먼스는 매순간 달라진다. 현장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 퍼포먼스 특성상 관객의 반응과 퍼포머의 컨디션, 시간 등에 따라 퍼포먼스의 분위기와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특히 관객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다른 감정과 제스처가 나오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의 의외성조차 작품에 의미를 더한다.

  주변 환경에 좌우되는 퍼포먼스인 만큼 돌발 상황도 많았다.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 시간에 전시관에 설치돼 있는 의자와 스피커 거치대를 관객이 설치미술로 오해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반주가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멈출 때면 이들은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극복했다. “휴대전화로 반주를 트는데 어느 날은 배터리가 다 닳아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중간부터 무반주로 노래한 적도 있죠. 정말 민망했는데 원래 무반주인 척 끝까지 태연하게 노래했어요.”(홍민정)

  미술관에서의 퍼포먼스는 네 명의 이화인에게도 선물이 됐다. 학부 생활 틈틈이 퍼포먼스에 참여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인연도 이들이 받는 선물 중 하나다. “퍼포먼스를 하다보면 정말 노래를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보여요. 한 번은 한 혼혈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매 번 다름 사람에게 선물로 노래할 때마다 와서 끝까지 들어준 적이 있어요. 그 모녀가 계속 눈에 밟혀 그들을 위해 노래해주고 싶은 마음에 퍼포먼스가 끝나고 급하게 찾았는데 옆 전시장에서 꽃을 가져다 내밀더군요. 아직까지도 그때 기분을 잊을 수 없어요.”(이새날)

  퍼포먼스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묻자 이들은 ‘노래를 듣는 관객의 표정을 볼 때’라며 입을 모았다. 노래를 기대하지 않던 관객의 표정은 퍼포머가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놀라고 좋아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음악을 선물 받는 관객이 제 음악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네 명의 퍼포머가 기자에게 해준 뜻밖의 말이다. 이들은 관객이 자신의 노래에만 얽매이지 않고 멜로디에 따라 자유롭게 상상에 빠지길 바란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노래와 진심을 선물하겠다던 이 이화인들도 자신의 퍼포먼스를 돌아보며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진 듯 했다.